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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다시 읽기 위하여--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2016. 11. 10.
노고지리는 어찌하여 고독한가
‘최순실=박근혜=새누리당’ 게이트가 국정을 농락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외면, 위안부 합의, 해운·조선업 붕괴, 한반도 사드 배치, 원전·방산 비리,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패션 외교 등 끊임없이 문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속이 터진다. 뻔한 거짓에 거짓을 반복하는 허깨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을 못할 정도다. 최순실 체포, 박근혜 하야, 새누리당 해체밖에 길이 없을까. 과연 이것만 하면 이 나라가 바로 설까. 이 기간을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1960년 4·19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작가들이 혁명의 성공을 노래했다.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시인은 세 명이었다. 박두진은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 김수영은 1960년 6월 15일 그러니까 4·19혁명이 일어난 두 달 후에 <푸른 하늘을>을 썼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ㅡ 김수영 <푸른 하늘을>(1960.6.15)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 고 하는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는 시작된다. 그 시인이 누군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높이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보고 그저 '자유로이 보이는군. 멋있어'라고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 없는 혁명은 가짜다
‘노고지리’는 ‘종달새’를 말한다. 참새처럼 생겼는데 참새보다는 조금 크다. 등산하다 살찐 참새처럼 보이는 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만한 참새로 보이는, 우리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가 노고지리다. 북위 30° 이북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노고지리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방금 우리땅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그 말이 중요하다.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나 필자도 모두 종달새처럼 흔한 존재다.
이 노고지리가 쉽게 날 수 있을까. 날기는커녕 알에서 나오자마자 들짐승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 종달새 새끼를 씹고 피 묻은 주둥이로 입맛을 다시는 살쾡이도 있을 것이다. 날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파닥이며 연습해야 할까.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뭣 모르고 절벽을 뛰어내린 종달새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만약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라면 더욱 치열한 탈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날기 위해 오랜 시간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래서 한 마리 노고지리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날기 위해, 푸른색과 대비되는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법이다.
혁명은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실패와 배반, 흐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겨우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血]는 신체적인 혈액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더욱 치열하게 고독한 투쟁을 말한다. 비단 신체적인 혈액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각성(覺醒)의 훈련을 뜻한다.
김수영 <푸른 하늘을>이란 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다.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는 『청록집』(1947)에 발표된 작품이고,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1960년 6월 15일에 발표된 작품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김수영이 박두진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두진에게 푸른 하늘은 해방조국이며, 김수영에게 푸른 하늘은 혁명조국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박두진과 김수영 시에서 ‘푸른 하늘’이라는 이미지는 모두 자유의 표상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종달새는 그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인다. 여기서 시인은 너스레 떨지 않고 직언한다. 2연 끝부분과 3연을 보자.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똑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꼬아서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해직당하고, 가족과 이별했고, 고문받고, 감옥에 가고, 자살했고, 죽어갔다. 팬옵티콘 어용 언론의 구축으로 인해 사회는 책임 없는 감시사회로 변했다. 아직 혁명은 아마득하다. 얼마 전 물대포를 맞고 농민 백남기 선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피의 냄새가 넘쳐야 깨달을까. 혁명을 이루고 난 뒤에도,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한 노고지리처럼 피의 결심을 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않는다면 결코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2연 1~3행)은 자유의 냄새에 그 ‘피’가 섞여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피는 ‘고독’과 이어진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지,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 ‘피’와 ‘고독’이야말로 혁명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혁명,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
혁명(革命)이라 하면 흔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떠올린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 ‘리볼루션(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가 어원으로, ‘회전하다’, ‘바뀐다’, ‘반전하다’라는 뜻이다. 잠깐 성공했던 1960년 4·19 혁명,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같은 정치적인 변화만 혁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처럼 새로운 체계가 시작할 때 ‘혁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혁명의 혁(革)이라는 한자는, 죽은 뿔 달린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펼쳐놓은 상형이다. 짐승이 죽었을 때 그대로 두면 금방 썩어버린다. 가죽을 쓰려면 빨리 벗겨내 안쪽에 붙어있는 살을 다 떼어내 물에 잘 씻고 한참 두들겨 부드럽게 ‘무두질’한다. 버릴 껍질을 ‘무두질’하면 쓸 만한 가죽이 되듯이, ‘혁(革)’이란 한자에는 ‘고치다’,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혁명이란 꼭 사회 변화만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변화도 의미할 수 있겠다. 매일 매일 무두질(革)하듯 새롭게 살아가는 삶은 ‘혁명적인 삶’이다. 깨인 의식으로 내 삶을 혁명시켜야 한다. 내 삶과 의식과 제도를 혁명해야 한다.
서양 용어로만 알고 있는 혁명이라는 단어는 실은 고대 중국의 고전인 『주역(周易)』, 『서경』, 『맹자』에도 나온다. 『주역』의 「혁괘편(革掛篇)」은 “바꾸어야[革] 하는 형국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며 한 마음이 될 것이다.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해야 할 때 마무리하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렇게 써 있다.
“천지가 바뀌어 사시(四時; 춘하추동)를 이룬다. 탕과 무가 혁명하여, 하늘 뜻을 따르고 사람에게 응한 것이니, 바꿔야 할 때에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革之時大矣哉)
인용문을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 “천지가 바뀌어 춘하추동을 이룬다(天地革而四時成)”는 말은 천지가 바뀌어(革)하여 새로운 천지를 이룬다는 선언이다. 계절이 새롭게 바뀌듯 혁명의 시기는 새로워야 한다. 흔히 혁명이라 하면 무서운 시간을 생각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계절이 바뀌듯 새롭게 바뀌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했다. ‘하은주’ 삼대(三代)의 정치체제가 ‘변하는(革)' 혁명을 고대 중국인들은 계절 바뀌듯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혁명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국가로 기록되는 주(周, BC1046~BC256)가 세워진다.
둘째,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이 하늘(天)을 따라 정치적인 결단을 한다. 탕과 무의 혁명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었다. 고대 중국, 하(夏)나라에서 은(殷)나라, 은에서 다시 주(周)나라로 왕조가 교체될 때를 소위 ‘은주혁명(殷周革命)’이라고도 한다.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혁명(革命)’을 하려면 이렇게 하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하늘의 명(天命)을 ‘안민(安民)’으로 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서경』에 보면 ‘혁명’을 할 수 있는 자는 ‘하늘의 명(天命)을 바르게 아는 자’라고 명확히 나온다.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 보며(天視自我民視),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을 따라 듣는다(天聽自我民聽).” 
하늘(天)이 백성을 만들었으니(下民), 하늘의 뜻은 백성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 조사나 지지율도 백성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셋째,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응했다.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가들이 인민을 귀히 여겨 ‘안민(安民)’에 힘썼기 때문에 인민들이 혁명 과정에 응하고 참여했던 것이다. 혁명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그 사건이 백성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에서 판가름이 난다.
『맹자』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왕조의 성(姓)을 바꾸는(易) 혁명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임금이 된 자는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與民偕樂)’ 해야 하고, ‘백성들과 함께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 근심(樂以天下 憂以天下)’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잃은 군주는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말하고, 이를 반복하여 듣지 않으면 군주를 바꿔야 한다(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 則易位)’(『맹자』 萬章章句下)고 분명히 써 있다. 맹자는 ‘민’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민’을 위하지 않는 군주를 향해 폭력(暴力)을 가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역성혁명이 가능하려면 군주가 백성과 슬픔이든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여러 번 강조한다.
‘혁명’이란 반란이나 정변이 아니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혁명의 잣대는 백성이 바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고독 없는 혁명은 실패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에서 ‘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피[血]를 말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복본(複本, counterpart)이니까. 요즈음의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졸시<푸른 하늘을>이 약간의 비관미를 띄우고 있는 것은 역시 격려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ㅡ김수영「1960년 6월 16일 일기」『김수영 전집』, 1984, 332면.
인용된 일기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김수영은 ‘정치적 혁명’과 ‘내면의 혁명’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치혁명이나 내면혁명이나 모두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김수영은 외향적 명랑성(정치적 혁명)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내면적 고독)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수영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껍데기만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진정한 혁명은 국민들의 진정한 고독에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혁명 없어 사회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철저히 자기혁명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 타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철저히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일은 하려 하면서 자기 곁의 일은 못한다. 역사혁명은 일으키려 하면서도 가족혁명은 일으키지 못한다. 아프리카 빈자를 도우려 하면서도 집안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지 못한다. 철저히 자기혁명을 이룬 고독한 단독자들의 연대, 그것이 없다면 내면의 혁명이나 외면의 혁명 모두 실패한다. 단독자들의 사유(思惟)혁명에서 비롯된 혁명이 아니라면 또 다른 ‘동물농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몸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고독’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인간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자기희생의 ‘피’와 적폐(積弊)에 썩어 있는 과거와 결별한 ‘절대고독’에서 혁명은 가능한 것이다. 순종적인 신체와 결별하는 ‘피’, 썩은 과거와 결별하는 ‘고독’의 씨앗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4·19 이후에 발표된 김수영의 시 몇 편 중에 나는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가 일기에 쓴 ‘격려의 의미’로 독자인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차분하며 격정의 상태에서 멈추고 있다. 마치 한 방 탄알이 발사되기 직전에 숨을 멈춘 듯 하다.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1967)를 연상시킨다.
혁명이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문제를 떠나, 치열하게 깨달은 단독자들의 역사적 성과인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하게 피 흘리는 심정으로 민주주의를 깨닫고, 온갖 언구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매일 고독한 내면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고투의 피를 흘리는 묵언정진(默言精進), 기억해야 할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고독한 이들의 연대에 의해 진정한 혁명은 가능하다.
혁명은 박근혜 한 명 바꾼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혁명은 하늘 뜻을 따르는 각성한 민심이 한 마음이 될 때 이루어진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깨어 있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모든 적폐(積弊), ‘친일파=친독재=박근혜=공범자’를 몰아내야 한다. 박근혜의 거짓으로 박정희의 적폐를 설명하기 쉬워졌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분노하고 소리지르는 행동 이상으로 고독하게 저 얼룩을 지워야 한다.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는 판단력을 키우며 실천해가야 한다, 그래서 혁명은 고독하다. 혁명은 고독해야만 한다. 혁명이란 고독한 단독자들이 뿌리와 뿌리를 얽으며 이루는 숲이다. 그래서 혁명은 늘 영원한 시작이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필자 소개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

다시 읽기 위하여--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2016. 11. 10.
노고지리는 어찌하여 고독한가
‘최순실=박근혜=새누리당’ 게이트가 국정을 농락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외면, 위안부 합의, 해운·조선업 붕괴, 한반도 사드 배치, 원전·방산 비리,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패션 외교 등 끊임없이 문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속이 터진다. 뻔한 거짓에 거짓을 반복하는 허깨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을 못할 정도다. 최순실 체포, 박근혜 하야, 새누리당 해체밖에 길이 없을까. 과연 이것만 하면 이 나라가 바로 설까. 이 기간을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1960년 4·19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작가들이 혁명의 성공을 노래했다.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시인은 세 명이었다. 박두진은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 김수영은 1960년 6월 15일 그러니까 4·19혁명이 일어난 두 달 후에 <푸른 하늘을>을 썼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ㅡ 김수영 <푸른 하늘을>(1960.6.15)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 고 하는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는 시작된다. 그 시인이 누군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높이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보고 그저 '자유로이 보이는군. 멋있어'라고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 없는 혁명은 가짜다
‘노고지리’는 ‘종달새’를 말한다. 참새처럼 생겼는데 참새보다는 조금 크다. 등산하다 살찐 참새처럼 보이는 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만한 참새로 보이는, 우리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가 노고지리다. 북위 30° 이북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노고지리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방금 우리땅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그 말이 중요하다.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나 필자도 모두 종달새처럼 흔한 존재다.
이 노고지리가 쉽게 날 수 있을까. 날기는커녕 알에서 나오자마자 들짐승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 종달새 새끼를 씹고 피 묻은 주둥이로 입맛을 다시는 살쾡이도 있을 것이다. 날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파닥이며 연습해야 할까.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뭣 모르고 절벽을 뛰어내린 종달새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만약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라면 더욱 치열한 탈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날기 위해 오랜 시간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래서 한 마리 노고지리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날기 위해, 푸른색과 대비되는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법이다.
혁명은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실패와 배반, 흐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겨우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血]는 신체적인 혈액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더욱 치열하게 고독한 투쟁을 말한다. 비단 신체적인 혈액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각성(覺醒)의 훈련을 뜻한다.
김수영 <푸른 하늘을>이란 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다.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는 『청록집』(1947)에 발표된 작품이고,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1960년 6월 15일에 발표된 작품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김수영이 박두진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두진에게 푸른 하늘은 해방조국이며, 김수영에게 푸른 하늘은 혁명조국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박두진과 김수영 시에서 ‘푸른 하늘’이라는 이미지는 모두 자유의 표상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종달새는 그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인다. 여기서 시인은 너스레 떨지 않고 직언한다. 2연 끝부분과 3연을 보자.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똑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꼬아서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해직당하고, 가족과 이별했고, 고문받고, 감옥에 가고, 자살했고, 죽어갔다. 팬옵티콘 어용 언론의 구축으로 인해 사회는 책임 없는 감시사회로 변했다. 아직 혁명은 아마득하다. 얼마 전 물대포를 맞고 농민 백남기 선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피의 냄새가 넘쳐야 깨달을까. 혁명을 이루고 난 뒤에도,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한 노고지리처럼 피의 결심을 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않는다면 결코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2연 1~3행)은 자유의 냄새에 그 ‘피’가 섞여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피는 ‘고독’과 이어진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지,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 ‘피’와 ‘고독’이야말로 혁명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혁명,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
혁명(革命)이라 하면 흔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떠올린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 ‘리볼루션(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가 어원으로, ‘회전하다’, ‘바뀐다’, ‘반전하다’라는 뜻이다. 잠깐 성공했던 1960년 4·19 혁명,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같은 정치적인 변화만 혁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처럼 새로운 체계가 시작할 때 ‘혁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혁명의 혁(革)이라는 한자는, 죽은 뿔 달린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펼쳐놓은 상형이다. 짐승이 죽었을 때 그대로 두면 금방 썩어버린다. 가죽을 쓰려면 빨리 벗겨내 안쪽에 붙어있는 살을 다 떼어내 물에 잘 씻고 한참 두들겨 부드럽게 ‘무두질’한다. 버릴 껍질을 ‘무두질’하면 쓸 만한 가죽이 되듯이, ‘혁(革)’이란 한자에는 ‘고치다’,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혁명이란 꼭 사회 변화만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변화도 의미할 수 있겠다. 매일 매일 무두질(革)하듯 새롭게 살아가는 삶은 ‘혁명적인 삶’이다. 깨인 의식으로 내 삶을 혁명시켜야 한다. 내 삶과 의식과 제도를 혁명해야 한다.
서양 용어로만 알고 있는 혁명이라는 단어는 실은 고대 중국의 고전인 『주역(周易)』, 『서경』, 『맹자』에도 나온다. 『주역』의 「혁괘편(革掛篇)」은 “바꾸어야[革] 하는 형국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며 한 마음이 될 것이다.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해야 할 때 마무리하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렇게 써 있다.
“천지가 바뀌어 사시(四時; 춘하추동)를 이룬다. 탕과 무가 혁명하여, 하늘 뜻을 따르고 사람에게 응한 것이니, 바꿔야 할 때에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革之時大矣哉)
인용문을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 “천지가 바뀌어 춘하추동을 이룬다(天地革而四時成)”는 말은 천지가 바뀌어(革)하여 새로운 천지를 이룬다는 선언이다. 계절이 새롭게 바뀌듯 혁명의 시기는 새로워야 한다. 흔히 혁명이라 하면 무서운 시간을 생각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계절이 바뀌듯 새롭게 바뀌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했다. ‘하은주’ 삼대(三代)의 정치체제가 ‘변하는(革)' 혁명을 고대 중국인들은 계절 바뀌듯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혁명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국가로 기록되는 주(周, BC1046~BC256)가 세워진다.
둘째,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이 하늘(天)을 따라 정치적인 결단을 한다. 탕과 무의 혁명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었다. 고대 중국, 하(夏)나라에서 은(殷)나라, 은에서 다시 주(周)나라로 왕조가 교체될 때를 소위 ‘은주혁명(殷周革命)’이라고도 한다.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혁명(革命)’을 하려면 이렇게 하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하늘의 명(天命)을 ‘안민(安民)’으로 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서경』에 보면 ‘혁명’을 할 수 있는 자는 ‘하늘의 명(天命)을 바르게 아는 자’라고 명확히 나온다.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 보며(天視自我民視),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을 따라 듣는다(天聽自我民聽).” 
하늘(天)이 백성을 만들었으니(下民), 하늘의 뜻은 백성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 조사나 지지율도 백성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셋째,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응했다.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가들이 인민을 귀히 여겨 ‘안민(安民)’에 힘썼기 때문에 인민들이 혁명 과정에 응하고 참여했던 것이다. 혁명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그 사건이 백성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에서 판가름이 난다.
『맹자』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왕조의 성(姓)을 바꾸는(易) 혁명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임금이 된 자는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與民偕樂)’ 해야 하고, ‘백성들과 함께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 근심(樂以天下 憂以天下)’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잃은 군주는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말하고, 이를 반복하여 듣지 않으면 군주를 바꿔야 한다(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 則易位)’(『맹자』 萬章章句下)고 분명히 써 있다. 맹자는 ‘민’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민’을 위하지 않는 군주를 향해 폭력(暴力)을 가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역성혁명이 가능하려면 군주가 백성과 슬픔이든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여러 번 강조한다.
‘혁명’이란 반란이나 정변이 아니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혁명의 잣대는 백성이 바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고독 없는 혁명은 실패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에서 ‘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피[血]를 말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복본(複本, counterpart)이니까. 요즈음의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졸시<푸른 하늘을>이 약간의 비관미를 띄우고 있는 것은 역시 격려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ㅡ김수영「1960년 6월 16일 일기」『김수영 전집』, 1984, 332면.
인용된 일기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김수영은 ‘정치적 혁명’과 ‘내면의 혁명’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치혁명이나 내면혁명이나 모두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김수영은 외향적 명랑성(정치적 혁명)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내면적 고독)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수영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껍데기만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진정한 혁명은 국민들의 진정한 고독에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혁명 없어 사회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철저히 자기혁명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 타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철저히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일은 하려 하면서 자기 곁의 일은 못한다. 역사혁명은 일으키려 하면서도 가족혁명은 일으키지 못한다. 아프리카 빈자를 도우려 하면서도 집안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지 못한다. 철저히 자기혁명을 이룬 고독한 단독자들의 연대, 그것이 없다면 내면의 혁명이나 외면의 혁명 모두 실패한다. 단독자들의 사유(思惟)혁명에서 비롯된 혁명이 아니라면 또 다른 ‘동물농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몸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고독’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인간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자기희생의 ‘피’와 적폐(積弊)에 썩어 있는 과거와 결별한 ‘절대고독’에서 혁명은 가능한 것이다. 순종적인 신체와 결별하는 ‘피’, 썩은 과거와 결별하는 ‘고독’의 씨앗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4·19 이후에 발표된 김수영의 시 몇 편 중에 나는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가 일기에 쓴 ‘격려의 의미’로 독자인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차분하며 격정의 상태에서 멈추고 있다. 마치 한 방 탄알이 발사되기 직전에 숨을 멈춘 듯 하다.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1967)를 연상시킨다.
혁명이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문제를 떠나, 치열하게 깨달은 단독자들의 역사적 성과인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하게 피 흘리는 심정으로 민주주의를 깨닫고, 온갖 언구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매일 고독한 내면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고투의 피를 흘리는 묵언정진(默言精進), 기억해야 할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고독한 이들의 연대에 의해 진정한 혁명은 가능하다.
혁명은 박근혜 한 명 바꾼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혁명은 하늘 뜻을 따르는 각성한 민심이 한 마음이 될 때 이루어진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깨어 있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모든 적폐(積弊), ‘친일파=친독재=박근혜=공범자’를 몰아내야 한다. 박근혜의 거짓으로 박정희의 적폐를 설명하기 쉬워졌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분노하고 소리지르는 행동 이상으로 고독하게 저 얼룩을 지워야 한다.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는 판단력을 키우며 실천해가야 한다, 그래서 혁명은 고독하다. 혁명은 고독해야만 한다. 혁명이란 고독한 단독자들이 뿌리와 뿌리를 얽으며 이루는 숲이다. 그래서 혁명은 늘 영원한 시작이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필자 소개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

다시 읽기 위하여-- [도올 김용옥 특별기고] 민중의 함성이 곧 헌법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 아니, 봄이 오고 있다. 아니, 혁명이 오고 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진실한 혁명! 잔인한 4월보다 더 잔인한 달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너무 슬프다. 우리 조선의 민중이 너무 가슴아파한다. 내가 왜 이렇게 갑자기 먹구름 낀 죽음의 계곡에 갇히어 절망의 탄성을 발하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묵시문학이 말하는 아비규환과도 같은 혼돈 속에서, 나는 기묘하게도 <도올의 로마인서강해>라는 희한한 성서주석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너무도 슬프기에, 너무도 깊은 슬픔을 이겨낼 수 없었기에 나는 유대인 바울이라는 인물의 심정의 심연에 기대어 나의 슬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로마인에게 보낸 이 바울의 서한은 예수라는 인물이 죽은 지 불과 25년 만에 쓰인 것이며, 그 서한이 완성된 후 15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된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국가는 멸망해버렸고 유대인은 흩어져 향후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서글픈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인서>에 새겨진 장엄한 논리는 기독교를 탄생시켰고,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킨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다. 향후 2천년 동안의 찬란한 서구문명의 도덕적 뼈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로마인서>는 인간혁명의 매니페스토였다. 나는 이 조선 역사의 가장 심오하게 슬픈 이 시점에서 바울의 매니페스토를 뛰어넘는 우리 민중의 매니페스토를 선포하고자 했다.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역사”라고 말한 그 뜻을 새롭게 밝히고자 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박근혜 대통령의 두번째 사과 담화를 들었다. 그 담화는 전혀 사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첫번째 사과 담화보다도 더 사악하게 짜인 자기정당화의 변명일 뿐이었다. 자기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변명하는 구질구질한 언사였다. 그 담화를 가장 가소롭게 들었을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령과 박지만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자기 죄악의 유일한 근원으로 공표하는 박근혜는 무의식적으로 최순실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최태민의 사교에 빠진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국민들은 박근혜의 언행 전부를 사교로 간주하고 있다.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대국민 담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은밀한 지지세력에게 “나는 아직 건재하며 굳건하게 버틸 것”이라는 사인을 보내는 일종의 암호였다. 이미 자기의 지지세력이 사라졌다는 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한 영혼이었다. 하다못해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의 내정을 둘러싼 절차상의 하자에 관하여 일말의 반성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병준은 제대로 된 학인이라 말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로고스적 상황 판단이 있어야 하고, 절차적 논리가 있어야 하며, 주어진 상황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그러한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누구라도 이성적 판단력이 있다면, “여야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했어야 했다. 그렇게 현명한 자세를 취했더라면 그는 이 난국을 타개하는 정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석이 아닌 사석(捨石)이다. 그는 입 뻥끗할 때마다 여유가 있어 보이고 단호한 듯이 보인다. 한마디로 고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기회를 탐하기만 하는 갈욕의 노예일 뿐이다. 자진사퇴 있을 수 없다구? 잘해보시게나!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 혼란과 부도덕성 증가시킬 뿐
바울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선포하노라.” 나는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피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원고지 위에 펜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내가 집필하는 서재의 작은 창문으로 노도와 같은 민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느샌가 민중의 틈바구니에 끼어 종로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실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쓰나미였다. 종로 대로로부터 광화문 네거리 주변을 꽉 메운 인파는 1만·2만으로 셀 수 있는 그런 풍류가 아니었다. 20만·30만의 인파가 외치는 함성은, 순간 나의 의식의 장에 저 바이칼호로부터 대흥안령을 거쳐 백두·두륜에 이르는 거대한 광야의 지맥을 연상시켰다. 최근 나는 동북3성의 고구려·발해성을 답사하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맞았다! 그래! 맞았다! 이게 바로 내가 살던 고향이었어! 자동차가 사라진 텅 빈 종로와 질풍노도와 같은 인파의 홍류는 해방된 고조선의 영고·동맹제와도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곳은 억압도, 착취도, 사기도 없었단다! 조그만 밭뙈기 하나 있으면 못살 일도 없었고, 잘살게 해준다고 꼬시는 사람도 없었단다! 내 주목을 크게 끈 천 명 가까운 한 시위대는 바로 중고생 집단이었다. “중고생이 일어났다! 중고생이 분노했다! 박근혜는 물러가라! 사과 말고 사퇴하라! 새누리도 공범이다! 재벌기업 해체하라!”
내가 중고생 시위대 앞에서 같이 종로를 활보하자, 내 주변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기억 못하세요? 고대 농악대 82학번 아무개예요. 저 선생님하고 같이 길거리 데모하면서 최루탄도 무척 함께 뒤집어썼잖아요!” “그래그래 맞다! 너 아무개 아니냐?” 이렇게 저렇게 나는 또다시 30년 전 6월항쟁의 열풍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당시 “왕정이냐? 민주냐?”라는 글을 발표하고 단식에 돌입했다. 대학생 박종철군의 고문살인 조작·은폐로 시작하여 이한열군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치던 민중의 민주화를 향한 절규는 드디어 100만 인파를 이루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향하는 노제의 장엄한 광경을 노정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과 현금의 11월항쟁은 매우 성격이 다르다. 6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폭압적 무단정치의 타도였으며 그 대상은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였다. 다시 말해서 투쟁 목표가 민중 밖에 치립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재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11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가냘픈 여인허수아비를 둘러싸고 놀아난 행정·입법·사법·언론·문화·체육·국방 전반의 국가체제의 부패요, 괴멸이요, 야비한 기만성이다. 그 대상도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가 없다. 최순실이 대상이 아니라, 그 야비하고 비열하고 저속한 이를 국가 최고의 실세로 만들어 놓은 장기간에 걸친 국가권력체제의 농간이요 농단이요 농권(弄權)이다! 투쟁 목표가 민중 안에 거미줄처럼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재적 혁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자발적 각성의 힘에 의하여 민중 스스로를 개혁하고 개벽하는 어려운 혁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험로의 종착역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종착이야말로 진정한 시발인 것이다!
광화문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무대 위로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말도 아주 소박하게 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왔다. 그녀는 말했다. “하야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요. ‘하야’라는 말은 위엄 있는 대통령 인격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말이잖아요? 그러나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에요. 대통령으로서의 위엄과 위신과 인격과 국정수행 능력을 다 상실했잖아요.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는 불쌍하고 외로운 병자일 뿐이에요. 박근혜는 빨리 청와대를 걸어 나와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빨리 박근혜를 입원시켜줍시다.”
11월 항쟁의 투쟁 대상은 국가체제 부패와 야비한 기만성
거대한 찬사의 함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우리 민중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바스티유 감옥은 이미 터졌다! 노론-친일파-친미·반공 세력의 강고한 족쇄는 이미 풀렸다!
나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민중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민중의 함성에 떠밀려 무대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그대들은 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입니까? 최순실-최태민이라는 터무니없는 인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입니까? 이 순간 여러분께서 단상에 서 있는 도올을 바라보는 그 가슴에 뭉클거리는 감정,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모든 일치된 언어, 그것은 바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철학이요, 이 시대의 정언명령이며, 이 시대의 헌법입니다. 헌법은 조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투쟁으로만 획득되는 민중의 양심이며 양식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괘상(卦象)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그 분노의 불길로 우리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를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 존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체제의 압박을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은 정권의 변화를 뛰어넘는 우리 의식의 혁명이며, 제도의 혁명이며, 가치관의 혁명이며,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소망의 혁명입니다. 우리 모두 헌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혁명은 어떠한 정치적 술수나 타협으로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순결한 민중의 순결한 의지의 표출로써만 가능한 혁명입니다. 어떠한 감언이설의 교사에도 속지 마십시오. 명(命)이 혁(革)파될 때까지 조금도 행진을 늦추지 마십시오. 혁명 완수의 그날까지 행진! 행진! 행진!”
이것은 과연 무슨 말인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청와대가 환관으로 득실거리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이 난국을 예언한 것도 나 도올이었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운위한 것도 나 도올이었다(<한겨레> 2014년 5월3일치 1면 세월호 참사 특별기고). 그런데 나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직후에 <시비에스>(CBS) 김현정 앵커와 한 대담에서,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하야를 자유롭게 논하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나는 “하야”에는 반대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그 역설적 논리의 진의는, 쉽게 하야하고 나면 그만큼 박근혜는 쉽게 면죄부를 획득할 것이며, 또한 더욱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박근혜라는 허상을 조장해온 정계, 관계, 재벌, 보수언론, 보수여론주도층이 다 같이 쉽게 면죄부를 획득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사태의 죄악은 모두 박근혜·최순실과 그 주변의 사기집단 몇 명으로만 귀결되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성의 기회를 유실하고 만다. 비록 지지부진하고 더러운 변명의 추태가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존속시키는 것이 오히려 박정희-박근혜 패러다임의 실상을 폭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의 논리는 지금 박근혜의 두번의 사과와 독선적인 신임 총리 지명 사태만으로도 설 자리를 잃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금치산자와도 같은 인물이 되어버렸고,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인 민심이 완벽하게 이반되어버렸다. 이러한 사태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선택은 많지가 않다.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의 혼란과 국민의 분노와 정계의 부도덕성을 증가시킬 뿐이다.
지금 정가에서 나도는 해법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1)하야 (2)탄핵 (3)거국내각. 우선 우리 국민은 하야와 탄핵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탄핵은 현행 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당 간의 합의에 의한 정치적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하야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아닌 초법적인 도덕적 선택이다. 이 도덕적 선택의 일차적 주체는 박근혜라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이 자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도덕적 선택을 자발적으로 내릴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러한 인격체라면 어찌 최순실 게이트의 사태에까지 당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탄핵의 주체가 정당이라고 한다면, 하야의 주체는 국민이 된다. 하야를 하게 만드는 사역자가 국민이라는 뜻이다. 이 국민은 반드시 혁명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각성된 국민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탄핵은 문제가 많다. 정당 간의 합의도 어렵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전 과정은 장기화될 것이며 박근혜는 면죄와 휴식과 도덕적 마비를 얻는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은 국민이 바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강하다. 국민의 소망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실 탄핵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헛수고일 뿐이다.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 국민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거국내각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이 말의 함의를 정확히 깨닫기에는 너무도 많은 역사적 언어가 필요하다. 그 핵심을 말하자면 거국내각이란 국회가 국체의 전권을 쥔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려면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탈당해야 하고, 일체 정무에서 손을 떼야만 가능한 것이며, 특검도 거국내각이 구성한 엄정한 수사기관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실상 거국내각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우며, 그 실제 내용으로 말하자면 하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종 결론은 단 하나만 남는다! 하야! 하야! 하야! 그리고 또 하야!
하야를 강행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힘은 정객에게 있지를 않다.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국민을 위하여 국민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여기 내가 말하는 “평화로운 사태”라는 말의 함의에 모두가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집권자들은 국민의 분노나 항거나 시위를 과소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집권의 야욕을 허심하게 내려놓지 않는다면, 또다시 북한의 위협을 도발시키거나, 혹은 계엄사태를 구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이렇게 케케묵은 수법에 농락당하지 말아야 한다. 군대도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명령이 아닌, 자체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야 할 것이다. 군대는 국가의 군대이며, 국민의 군대이다. 경찰, 군대 모두 폭력적 사태를 유발하는 일체의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제로다!
언론도 국민의 열기를 파생시킬 수 있는 불확정한 사태에 대하여 정의로운 판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미 보수와 진보, 야당과 여당, 지배자와 피지배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직 불행한 사태의 저지를 위하여 박근혜의 하야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사태의 죄악을 죄악으로서 깨끗하게 종결시켜야만 한다. 오늘 이 위대한 혁명의 국면에, 대인의 우환을 지닌 모든 동포들은 민주의 제물로서 모든 아집을 버리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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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9069.html#csidx4ee87a30cf43e9591d495c3657ca7a4 

2016년 9월 7일 수요일

2015년 경기도 31개 시군의 도서관운영 현황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60162.html











경기도 시·군 1인당 도서구입비 1800원, 사서 3.8명 불과
전체 회원수 50만명 고양시 16개 도서관 평균치 가장 열악
경기도의 각 지자체가 공공도서관 건물은 번지르르하게 지었지만 정작 도서 구입과 사서 인력 충원에는 소홀해 도서관이 제구실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6일 경기도의회 이재준 의원(더불어민주당·고양2)이 경기도에서 받은 2015년 31개 시·군의 도서관 운영 현황을 보면, 지난해 경기도의 1인당 도서구입비는 연간 1800원으로 나타났다. 1인당 장서 수는 2.1권으로 경기도 목표치인 2.5권에 못 미쳤다.
특히 사서 수는 총 228개관에서 859명이 근무해 1관당 평균 3.8명으로, 적정인원(5000명)의 1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개 시·군은 법정 최소인원(3명)에도 못 미쳤다.
도서관법 시행령에는 330㎡ 규모 이하 도서관은 사서 3명을 둬야 하며, 초과하는 330㎡마다 사서 1명을 추가로 두고, 장서 6000권마다 사서 1명을 충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군별로는 고양시가 가장 열악했다. 고양시는 공공도서관 수가 16개로 수원(22개)에 이어 도내에서 두번째로 많지만 연간 도서구입비는 1인당 1200원으로 의정부, 안성(각 1000원)에 이어 가장 적었다. 사서 수도 고양시는 2.9명으로 성남, 의정부(각 6.0명)의 절반꼴로, 독서 지도나 책 안내 등 양질의 서비스는커녕 도서 대출·반납 업무만 하기에도 빠듯한 셈이다. 고양시의 도서관 회원 수는 50만6087명으로 용인, 수원에 이어 세번째로 많았다.
고양시의 한 도서관장은 “시에서는 예산에만 의존하지 말고 헌책을 기증받으라고 하는데 장서로서 가치있는 도서를 기증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신간 도서나 희망 도서를 갖추지 못해 이용객들로부터 불만의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석재복 고양시 도서관센터 소장은 “아무리 건물이 좋아도 내용물인 도서가 충분치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예산 배정 때 후순위로 미루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도서관 예산을 현재보다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준 의원은 “고양이나 안산, 시흥, 오산시와 같이 재정력이 충분한 지자체들의 도서관 운영 실태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경기도는 도서관법을 위반하고 치적 홍보용으로 도서관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지자체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내에서 도서구입비와 사서 인력이 가장 많은 곳은 과천시(1인당 4700원, 1관당 9.3명)로 조사됐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