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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21일 화요일

새로운 독립국가 탄생을 보며

"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아무리 적은 수의 사람들일지라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 - 동티모르 지도자, 마리 알카티리 -


  
 ▲ 동티모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는 어린이. 사진 출처 : www.etan.org ⓒ  
 

포르투갈의 식민지, 일본군 점령, 인도네시아의 군사지배.
무려 478년에 걸쳐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티모르인들에게 2002년 5월 2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동티모르인들은 수도인 딜리 인근 타시톨로 광장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21세기 새로운 독립국가의 탄생을 전세계에 알렸다.

독립선포식에는 약 2십만 명의 군중이 운집하여 역사적인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1998년의 인구가 88만여 명이니 전국민의 4분의 1정도가 모인 셈이다.
여기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 그리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이홍구 씨가 특사로 파견되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독립을 축하하는 연설을 한 뒤에 통치권을 넘겨주었고, 프란시스코 구테레스 동티모르 제헌의회 의장이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로 독립국가의 탄생을 알렸으며,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연설이 이어졌다.
독립선포식이 끝난 뒤 동티모르인들은 횃불행진을 벌이며 독립을 자축했다 한다.

고난을 상징하는 검은색,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동티모르 국기가 유엔기 대신에 게양대에 걸릴 때, 운집한 동티모르 국민의 가슴에는 갖가지 감회와 환희의 감정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고난과 피와 희망, 이것은 여느 신생국과 마찬가지로 동티모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즉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리라.

  
 ▲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촛불.
사진 출처: www.easttimor.com ⓒ Rusty Stewart
 
 
신생국의 앞날이 반드시 밝지만은 않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우선 동티모르는 빈국 가운데서도 최빈국이다. 파탄 직전의 상태에 몰려 있는 경제를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가.

또한 정치적으로는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이냐 아니면 합병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분단'의 갈등이 남아 있다.
서티모르에는 6만여 명의 티모르 난민이 있다. 이들은 독립을 반대하는 활동을 했던 이들이다.

비록 동티모르 정부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고는 있지만 '분단'의 갈등이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의 역사를 반추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유엔평화유지군도 국경수비와 치안을 위해 2004년까지 계속 주둔하기로 하였다고 하는데, 독립국이라면 국경수비와 치안을 자주적으로 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을, 신생국 동티모르가 껴안고 있는 과제를 잘 해결해 나가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하게 된다.

사실,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히 티모르인들의 독립 열망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세계 인권사회단체의 활동가들과 양심적인 시민의 연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동티모르 연대모임(동연모, Korea-East Timor Solidarity)라는 단체가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주민에 대한 만행을 알리고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세계 각국의 사회단체의 도움은 이 나라의 탄생에 커다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도 동티모르의 평화와 건설에 세계인들의 연대와 지원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서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도,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켜보며 생각하게 된다. 21세기 첫 독립국 동티모르, 그렇다면 21세기 마지막 독립국은 어느 나라가 될 것인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동연모'의 사이트에서 만나게 된 짤막한 시구절을 읽는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강물이 모여서 또 하나될 때,
그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러기에 티모르 사람들이여, 하나 되어라.
하나가 되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거라.

--동티모르 민족시인 다 코스타의 <시냇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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