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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월요일

유럽중심주의 비판

 
유럽문명만이 우월?… '반쪽 사관' 일뿐!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제임스 블로트 지음ㆍ박광식 옮김/
푸른숲 발행ㆍ436쪽ㆍ1만8,000원

이왕구기자 fab4@hk.co.kr
 
왜 그 많은 문명중 유럽문명만이 자본주의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역사의 승자인 서구의 역사가들은 물론,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20세기 들어서야 근대국가를 세운 제3세계 역사가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많은 서구 역사가들이 제시한 해답은 유럽 사회의 '특수성'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과학은 오직 서구에서만 발전단계에 있으며, 체계적인 신학을 끝까지 발전시킨 종교는 기독교 뿐"이라고 저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서문을 장식한 막스 베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럽문명의 '합리성'을 근거로 서구 근대화의 필연성을 주장한 베버 이후 다양한 유럽중심주의 이론들이 등장했다. 삼포식 돌려짓기와 무거운 쟁기사용 등 농업혁명은 오직 유럽에서 성취됐으며 이것이 자본주의화의 길로 이어졌다고 보거나, 야만적이고 약탈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평등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에서만 경제발달을 가능하게 한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이론 등이 그것이다.

남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유럽 식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역사가이자 베트남전 반대운동,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제임스 블로트(1927~2000). 그는 베버로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로버트 브레너, 보수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랜디스에 이르는 8명의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들을 호출한다.

그는 유럽인들은 비길데 없이 창의적이거나, 홀로 독창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거나, 홀로 민주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이 지식인들의 역사서술 인식 태도를 협애하기 짝이 없는 '터널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가령 베버는 지중해의 도시들 같은 교역도시가 유럽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블로트는 인도양이나 남ㆍ동중국해에도 큰 교역도시가 있었고, 비유럽의 문명에 대해 무지한 베버는 지적으로 불성실한 논리를 전개했을 따름이라고 공격한다.

저자는 유럽의 환경이 다른 지역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았으며,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특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발흥의 원인은 오직 다른 지역의 해운 중심지보다 유럽의 그것이 아메리카로 향한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력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명쾌하고 다양한 논거를 사용해 세계적 석학들의 이론적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그의 반론에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은 저자가 탈식민화된 세계사 서술을 위해 기획했던 3부작'식민주의자들의 세계이해'의 두번째 책. 다음 작업으로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대두와 세계화를 설명하는 저술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완결짓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미국지리학자협회는 2000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제임스 M 블로트 혁신적 저작상'을 제정했다.원제 'Eight Eurocentric Historians'(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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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듯 강요하는 강자의 논리
유럽적 보편주의/이마뉴얼 월러스틴 지음ㆍ김재오 옮김/창비 발행ㆍ172쪽ㆍ1만원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인들이 아즈텍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뒤 이 지역 주민들의 노동력을 강압적으로 착취했던 16세기. 에스파냐에서는 폭압적 식민지 경영방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철학자 세뿔베다는 아메리카인들이 문맹의 야만인이라는 점, 우상숭배와 인신공양 관습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점, 이 관습으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참사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 가톨릭 신부들을 보호해 기독교 전파를 꾀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정당성을 옹호한다.

반면 신부 라스 까싸스는 이 논거는 소수의 악행을 정치구조의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 무슨 권리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한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78)은 식민지경영을 둘러싸고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16세기의 '세뿔베다-라스 까사스' 논쟁은 21세기적인 논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세뿔베다의 논리를 문명화된 지역이 비문명화된 지역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근대 이후 강자들의 전형적 논리로 본다.

이는 "이전에 존재한 바 없는 약간의 정의 내지 행복, 지적계몽의 여명, 의무감의 각성을 남겨놓은 것이 인도에서의 영국의 명분"이라며 인도지배를 정당성을 강변한 20세기초 인도총독 커즌경의 말이나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침범하고 시리아, 이란,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과 영국 등의 행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인권옹호와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명제는 거창한 명분과 달리 실상은 근대세계체제의 강자들이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라는 것이 월러스틴의 생각. 그는 이런 가치들을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라고 명명하며, 이 같은 보편적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묻고, 보편적 가치에 은밀히 관여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힘있는 자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적 보편주의는 동양을 덜 진보되고 야만적이고 몰개성적이고 정적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쌍생아다. 현재 우리가 유럽적 보편주의의 시기의 끝에 와 있다고 보는 저자는 따라서 지식인들에게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개입을 위한 근거들을 객관적이고 회의적으로 볼 수 있는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 로 무장한 비(非) 오리엔탈리스트가 되라고 주문한다.

이런 태도는 세계체제의 불평등의 결실을 누리고 있는 강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을 리 없지만,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주의의 싸움은 앞으로 25~50년 사이에 진입하게 될 미래의 세계체제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저자가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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