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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일 수요일

Banned Book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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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출처는 미국도서관협회



금서주간--Banned Books Week

 

9월 27일부터 미국도서관협회(ALA) 등이 주관하는 금서주간이 시작되었다.

(관련기사: http://www.ala.org/ala/aboutala/offices/oif/bannedbooksweek/bannedbooksweek.cfm)

 

미국도서관협회의 주디스 크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거나 금서가 된 자료들은 인간이 처해진 어떤 조건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소설이 금서가 된 사건은 '도서관권리선언'의 배경이 되었다.

 

최근 미국의 대선과 관련해서도 이 금서 문제는 큰 이슈다. 왜냐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온  세라 페일린(Sarah Palin) 알래스카 주지사의 '금서' 관련 논란 때문이다.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1996년 와실라 시장 재직 시절, 일부 도서의 열람 및 대출을 금지하려고 했고 이런 조치를 반대했던 알래스카 도서관협회장을 해임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페일린 후보는 미국의 도서관인, 독서인들의 조롱거리고, 비판의 대상이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정치적 공방도 공방이지만, 9.11 이후 미국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검열'이 한층 더 심해져 있는 현실이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국방부의 '불온도서' 선정을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작가는 왜 자기 책은 금서로 지정하지 않느냐고 조롱 섞인 항의까지 제기했다.

 

금서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한상범의 진단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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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 29 marks the beginning of the American Library Association's annual "Banned Books Week," a commemoration of all the books that have ever been removed from library shelves and classrooms. Politics, religion, sex, witchcraft — people give a lot of reasons for wanting to ban books, says Judith Krug of the ALA, but most often the bannings are about fear.

 

"They're not afraid of the book; they're afraid of the ideas," says Krug. "The materials that are challenged and banned say something about the human condition."

 

John Steinbeck's 1939 classic, The Grapes Of Wrath, which chronicles an Oklahoma family's hapless migration westward, is a perfect example. The book was an immediate best-seller around the country, but it was also banned and burned in a number of places, including Kern County, Calif. — the endpoint of the Joad family's migration.

 

Though fictional, Steinbeck's novel was firmly rooted in real events: Three years before the book was published a drought in the Dust Bowl states forced hundreds of thousands of migrants to California. Penniless and homeless, many landed in Kern County.

 

When the book came out, some of the powers that be in the county thought that they had been portrayed unfairly; they felt that Steinbeck hadn't given them credit for the effort they were making to help the migrants. One member of the county board of supervisors denounced the book as a "libel and lie." In August 1939, by a vote of 4 to 1, the board approved a resolution banning The Grapes Of Wrath from county libraries and schools.

 

Rick Wartzman, author of the new book Obscene In The Extreme, says what happened in Kern County illustrates the deep divide between left and right in California in the 1930s.

 

One powerful local player who pushed for the ban was Bill Camp, head of the local Associated Farmers, a group of big landowners who were avid opponents of organized labor. Camp and his colleagues knew how to get a bill passed in the state Legislature — and they also knew how to be physical.

 

"They knew how to work with tire irons, pick handles and bricks," says Wartzman. "Things could get really ugly and violent."

 

Camp wanted to publicize the county's opposition to The Grapes Of Wrath. Convinced that many migrants were also offended by their depiction in the novel, he recruited one of his workers, Clell Pruett, to burn the book.

 

Pruett had never read the novel, but he had heard a radio program about it that made him angry, and so he readily agreed to take part in what Wartzman describes as a "photo op." The photo shows Camp and another leader of the Associated Farmers standing by as Pruett holds the book above a trash can and sets it on fire.

 

Meanwhile, local librarian Gretchen Knief was working quietly to get the ban overturned. At the risk of losing her job, she stood up to the county supervisors and wrote a letter asking them to reverse their decision.

 

"It's such a vicious and dangerous thing to begin," she wrote. "Besides, banning books is so utterly hopeless and futile. Ideas don't die because a book is forbidden reading."

 

Knief's argument may have been eloquent, but it didn't work. The supervisors upheld the ban, and it remained in effect for a year and a half.

 

Still, says Krug, the censorship of The Grapes Of Wrath was a key event in the creation of the Library Bill of Rights, the statement Krug describes as ensuring that "as American citizens we have the right to access whatever information we wish without anyone looking over our shoulders. ... that we have the right to utilize this information once we have acquire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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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40730000431&subctg1=&subctg2=&DataID=2004073014040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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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공화국’으로 명명될 만큼 막무가내의 폭압적인 출판 탄압이 자행되던 시절은 이제 막을 내린 듯 보인다. 그 시절에는 책 한 권 출간하는 일이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립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독자들은 책을 외면하고 출판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무감각해진 상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도 금서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최근 다시 일고 있는 금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금서의 어제와 현주소를 살펴본다.

"한 권의 책에도 인권이 있을 것입니다. 귀중한 정신의 창작인 책을 저 어두운 창고의 구석에 유폐해둘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방해주어야 합니다. 본인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을 기획한 출판인으로서 어두운 창고 어딘가에 유폐되어 있을 그 책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합니다. 한 권의 책은 살아 있는 정신과 지성의 생명체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 500여권을 저희 출판사에 제대로 돌려주는 일은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면서 우리 시대의 고귀한 지성을 존숭하는 상징적인 문화정책의 일환이 될 것입니다.”

 

지난 5월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문화관광부 장관 앞으로 보낸 편지의 끝 부분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계엄령이 선포돼 있는 상황에서 1979년 10월 28일 계엄사와 당시 문화공보부 관계자는 김언호씨를 불러 ‘해방전후사의 인식’ 즉각 회수명령을 내렸고, 김씨는 이튿날 용달차에 500여권을 실어 문공부에 갖다 주었다. 이에 김씨는 최근 다시 이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압수된 책의 회수를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편지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답신은 극히 짧고 간명했다.

“귀하가 서신에서 제기한 사항에 대하여는 두 차례의 실무자 간 유선통화 내용과 같이 구체적 증거 및 자료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에 따라 귀하가 파악 또는 소지하고 있는 구체적인 증거자료 등을 제출하시면 적극 검토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당시 책을 압수해 간 이들이 보관증을 써주었을 리도 만무한 것이고 보면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대라는 것은 난감한 요구이다. 그 결과 김씨의 공개편지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 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금서공화국’으로 불렸던 제5공화국 시절 서점이나 출판사에서 압수해간 수많은 서적들이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아직도 무성하다. 실제로 80년대 ‘창작과 비평사’에서 정보기관과 관계 당국을 상대하는 일선 창구 역할을 맡았던 이시영(전 창작과비평사 부사장·시인)씨는 모처의 관계자로부터 “압수된 책들을 돌려받을 길이 있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금서(禁書)’는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말고도 사실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해온 것이다. 중세 서양에서는 주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들과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들이 교황청이나 각국 정부로부터 금서 처분을 받았다. 시민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18세기 이후에는 근대적 시민사상을 담은 책들이, 계몽주의 시대에는 임마누엘 칸트의 저작조차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들어갔다.

문학에서는 지금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비롯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까지 금서 목록에 끼여 있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자들이 베르테르를 흉내내 자살하는 바람이 일어나 당국이 판매금지 조처를 취했고, 1938년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당시 미국 농민들의 생활을 너무 참담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모든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부터 금서는 존재했다. 조선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 이념에 배치되는 책들이 단골 금서 목록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도참·비결을 다룬 책이 그것이었고, 세조 때는 왕위 찬탈을 소재로 한 ‘사육신전’이나 ‘원행몽유록’들이 금서였으며, 후기에 접어들어서는 유교 성리학에 도전하는 양명학이나 천주교, 동학사상들이 탄압의 대상이었음은 자명하다. 한마디로 금서는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건강도를 재는 척도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러한 ‘금서’들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04 서울국제도서전에 ‘세계 금서특별전’이 있었고,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내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도 한국의 금서 전시회를 열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한상범(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동국대 명예교수가 서양의 금서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이끌리오)을 펴내 세간의 금서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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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1970년대 독재 치하에서 나는 탄압과 속박, 감시와 밀고의 체제에 정면으로 항거하지 못함을 부끄럽고 또 안타까워했다”며 “아직도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하는 독자 여러분께 정성으로 이 작은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한 교수가 수많은 정보와 책들이 넘쳐나는 지금 시점에서조차 ‘아직도’라는 토를 단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금서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이시영씨는 80년대에 출판사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대상이 정보과 형사들이었다고 그 시절을 얘기한다. 그들은 출판사 인근 다방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출간될 책들과 문단 인사들의 동향을 점검했다. 당시에는 문공부에 가제본을 납본한 후 납본필증이 나와야만 책을 서점에 배포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는 ‘긴급조치 9호’라는 악법이라도 명시적으로 존재했지만, 5공화국 시절에는 초법적인 막무가내 수준의 탄압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책 한 권 출간하는 일이 독재체제에 맞서는 심각한 ‘운동’의 의미를 지녔다.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실제 1만부를 찍어 납본필증이 나오기도 전에 서점에 배포했고, 당국에는 2000부만 찍었다고 보고했다. 납본필증이 나오기를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감행했던 거사였다.

결국 이씨는 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구타를 당한 뒤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겪어야 했다. 전국 각지의 서점에 배포된 시집을 강제로 수거한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럼에도 ‘타는 목마름으로’는 독자 대중의 타는 갈증으로 인해 은밀하게 복제되어 지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시절에는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막스 베버의 책이 금서가 되었고, 양성우 시인의 시집 ‘겨울 공화국’은 ‘겨울’이라는 춥고 어두운 계절이 제목에 들어갔다 하여 역시 문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소설 속에서 군인이 조금만 안 좋은 역할을 맡아도 여지없이 검열에서 잘렸다.

이시영씨는 그 시절을 가리켜 ‘비극의 시대’가 아니라 대단히 ‘희극적인 시대’였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금서공화국’에 햇빛을 비춘 것은 1987년 6월항쟁이 그 도화선이었다. 6월항쟁 이후 ‘출판자유화 조치’로 일부 북한 서적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서들이 해금되었다.

한상범 교수가 아직도 금서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다. 이 위원회가 겉으로는 청소년유해도서를 판별하는 데 그 역할을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군사정권 이래 도서 발간과 수입에 대한 사전규제 기구로서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위원회가 그간 활동해온 실적에 관한 정보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한 교수는 공박한다. 금서시대가 연장되고 있는 또 하나의 고리는 경찰청 소속의 ‘공안연구소’들이고, 이들 기관의 검증을 바탕으로 국가보안법에 엄존하는 ‘이적표현물죄’를 걸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금서로 낙인찍을 법적 근거가 엄존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보가 넘쳐나고 통제 불가능한 시대에서조차 금서는 존재한다. 지배세력이 법으로 규정하는 금서뿐만 아니라 이익집단이나 사상이 다른 세력들끼리도 자의적으로 규정한 금서도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9월이면 ‘금서주간’ 행사가 펼쳐진다. 정부의 판금도서가 아닌 각급 학교와 도서관에서 반입과 대출을 금지한 검열도서가 그 대상이다. 미국서점상협회가 도서관협회 등의 후원으로 20여년째 벌여온 이 행사는 표현의 자유와 독자의 읽을 권리 확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스트셀러보다도 오히려 금서가 한 사회의 건강성과 주류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반영하는 투명한 거울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시대와 지배세력이 달라지면 지난 시절의 ‘금서(禁書)’가 거문고와 어울리는 풍류객의 ‘금서(琴書)’로 바뀌는 이치를 단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지적 모험과 그 모험을 통해 성숙하게 하는 아량과 여유가 용인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용호기자/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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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www.segye.com/Articles/NEWS/DIPLOMACY/Article.asp?aid=20060728000876&subctg1=&subctg2=&DataID=200607281410000047

 

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 된 셈이다.

디드로,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해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신앙과 진리는 물론 신까지도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렸으며, 신적 초월성이나 신비감을 자격정지시켰다.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는 영국의 그것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다. 점진적 개선이 아닌 전면적 자유·평등·박애를 위한 혁명을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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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침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끝내 왕정을 무너뜨리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 근대사의 2대 근원인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혁명 주체들은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을 제도화하는 등 오늘날 우리가 만끽하는 민주주의 이념의 씨앗을 심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들의 혁명’이라는 한계로 충분한 자유와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고, 부의 균등분배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전작인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1990)를 완전 개작한 ‘서양 금서의 문화사’는 계몽주의가 발흥하던 ‘앙시앵 레짐(구제도)’ 시대의 프랑스를 무대로 금서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특정한 내용의 출판물 간행을 제한하는 검열과 이를 반영한 금서는 가깝게는 언론의 자유와 연결되고, 나아가서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금서들은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이념이 분출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책은 인쇄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 도서출판법과 검열제도의 자세한 면면, 그리고 이를 위반한 다양한 사례들을 살핀다. 구체적인 금서와 작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가운데, 저자는 글쓰기·읽기·손으로 쓴 글·책을 포함한 인쇄물 등이 당시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앙시앵 레짐의 성격과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일상생활을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계몽주의에 대한 장을 따로 마련하는 등 넓은 맥락에서 금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매년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고문서 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해오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원사료를 통해 프랑스 민중들이 왜 ‘금서’를 생산해 내 읽고, 잡혀가고, 못된(?) 사상에 물들어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앙시앵 레짐은 왕권과 교회, 귀족 계층에 대한 풍문과 중상비방문 등이 ‘책’을 통해 민중에게 퍼져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출판업자들에게 ‘금서’라는 조치로 책을 생산·유통·보급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온갖 추문과 교회의 부정 폭로, 귀족층에 대한 혐오 등 당시의 프랑스는 극한의 양극화가 첨예하게 두드러진 사회였다. 혁명 여론은 그런 와중에 형성되었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민중은 저명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무명인들이 치를 떨며 쓴 수많은 비방문과 금서들이 당시 민중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다. 대부분이 서구학자 연구서의 번역물 일색뿐인 서양사나 서양문화사 틈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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