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책읽는도시 김해

문화평론가 정윤수가 2009년 8월 22일자 한겨레에 게재한 '정윤수의 문화 가로지르기'. '책읽는도시 김해'를 다루고 있다. 제목은 "책 읽는 김해, 그 기적의 축제".

 

 책읽는도시 김해의 정책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다. 정윤수는 오늘날 여러 도시들이 펼치고 있는 축제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우선 지적한다. "문제는 그 많은 축제들이 나름대로 그 지역의 특산물에 기반하였으되 차별화된 콘텐츠나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풍물장터로 방문자를 질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넉넉지 않은 예산을 빠듯하게 아껴 서야 하는 지자체가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고 그에 걸맞은 내실을 착실하게 가꾸어왔다는 데 대하여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 칼럼도 그런 연대의 표현이리라. 다만 기적의도서관이 오는 10월에 개관 예정이 하였는데, 내년 10월이다.

 

----------------------------------------------------------------------------------------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무려 1천여개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하루에도 서너 건씩 열리는 셈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떠들썩한 마당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많은 축제들이 나름대로 그 지역의 특산물에 기반하였으되 차별화된 콘텐츠나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풍물장터로 방문자를 질리게 한다는 것이다. 차분한 산책이나 여유 있는 나들이를 생각한 방문자로서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이나 안내 방송 때문에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경남 김해도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가락문화제와 단감축제를 비롯하여 대여섯 가지 축제가 열리는데, 다른 지역과는 다른 각별한 노력이 있어 이를 눈여겨보고자 한다. 김해가 내걸고 있는 강력한 대표 이미지는 ‘책 읽는 도시’다. 책 읽는 도시라, 그것도 넉넉지 않은 예산을 빠듯하게 아껴 써야 하는 지자체가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고 그에 걸맞은 내실을 2년여 동안 착실하게 가꿔왔다는 것은, 오늘날 여러 도시들의 번잡하고 맥락 없는 ‘화장발’에 비하여 깊은 연대의 마음을 갖게 한다. 김해는 인구 5만명당 공공도서관 1곳 건립을 목표로 하여 2015년까지 작은 도서관 100곳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선 인프라를 확실히 세우고 더불어 콘텐츠를 풍부하게 채워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오는 10월 개관 예정인 ‘기적의 도서관’을 비롯하여 권역별로 어린이 전문도서관을 짓는가 하면 공원 화장실이나 일반 사무실에 ‘미니도서관’을 세우고 버스 승강장 같은 곳에도 ‘참 작은 도서관’을 조성하는 등 온 도시를 책과 그 문화로 채우겠다는 갸륵한 발상을 우선 격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무엇보다 콘텐츠다. 크고 작은 도서관의 건립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채워질 장서의 성격과 그것을 매개로 하여 어떻게 지역 주민과 진정한 지식의 배움과 나눔을 이룰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이 점에서도 몇 가지 ‘특이 사항’이 있어, 이거 무슨 지자체 홍보냐 하는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선 내 눈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외국인을 위한 도서관 계획이다. 김해시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공업화되면서 인구 50만명을 바라볼 정도로 팽창했다. 자연히 공단과 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들도 늘어 1만5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낯선 나라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책이 필요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김해시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안에 8개 국어 5천여권 장서의 다문화도서관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 올 10월이면 개관하는데, 이 점만으로도 김해시의 정책적 시선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아쉬운 대로 얼마든지 ‘벤치마킹’을 할 만한 일이다. 일종의 사회적 육아 프로그램인 ‘김해 북스타트 운동’은 관내 모든 신생아에게 책 꾸러미를 배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러 오면 그림책 2권과 독서 지도를 위한 북 가이드 그리고 손수건을 선물한다. 이렇게 책과 더불어 태어난 아이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그림책과 더불어 세상을 익히게 되고 좀더 커서는 현재 진행 중인 ‘청소년 책 프로그램’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책과 더불어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는 것이다.

김해시는 오는 10월30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31개 학교의 37개 팀이 참여하는 ‘제1회 청소년 인문학 읽기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입시에 찌든 중고생은 물론 이 나라의 여러 대학들도 그 무슨 ‘국가 경쟁력’ 타령으로 책을 읽는 일이나 인문적 소양 다지는 일을 일제히 배척하는 마당에 김해시의 이러한 실험은, 그것이 비록 아직은 ‘대회’라는 제목을 걸고 있기는 해도, 당연히 관심을 둘 만한 일이다.

장차 김해시는 최고 수준의 북페스티벌이나 국제 심포지엄 그리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 추진에도 나설 예정인데, 사실 이런 장쾌한 계획은 아직 귀에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 지자체로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책 실천이긴 하겠지만, 좀더 낮은 자리의 섬세한 책 읽기 문화 확산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너무 거창한 계획보다 하루하루의 근면한 문화 확산이 더 요긴해 보인다.

역사의 우연이겠지만, 이 지역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종간 현 시장 모두 고졸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로 말 그대로 ‘책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가난하여 서럽고 배고팠던 시절, 그들에게 책은 컴컴한 밤하늘에 뜬 보름달이었을 게다. 지금이라고 해서 모든 사정이 나아졌겠는가. 많은 아이들이 책 속에 파묻혀 성장하고 그 책들이 권하는 진지한 삶의 태도와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증에 의하여 이 세상을 더욱 깊고 따스하게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김해시는 ‘책의 수도’인 것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