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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변화는 '발'에서 시작된다

 

이희욱 씨가 '개념있는 시민학교'의 신영복 선생 강연을 요약하여 올려놓았다. 요약이라고 하지만, 잘 정리된 내용이다. 그 글을 읽는다. 함께 읽고 싶어서 여기에 옮겨놓는다.

 

 

 

<강연 요약>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세 주체로 국가, 교육, 대학을 꼽았다. 그의 저서 <대학의 이념>은 국가 권력기관으로부터 대학의 독립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오늘날은 야스퍼스가 상정했던 대학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훨씬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대학은 그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인력도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현재 이야기할 수 없다.

 

저는 학교 체질이다. 계속 학교에서만 있었다. 도중에 겪었던 20년 감옥 생활도 학교로 쳐준다면. (일동 웃음)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저는 학교 사택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학교 사택에서 교실로 내려가 놀았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27살에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1988년 출소한 뒤 89년 1학기부터 또 학교로 들어갔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20년 주기가 있더라.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감옥 이후 20년이다. 지금도 학교에 잡혀 있다.

 

상아탑에 있다보면 오늘날 복잡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열띠게 토론할 입장이 안 된다. 그러나 좀 거리를 두고 근본적 사고를 하는 사람도 사회에 필요하지 싶다. 여러분과 그런 점을 성찰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

 

감옥에 있을 때 ‘주역’을 많이 읽었다. 주역에 ‘석과’(碩果)란 말이 나온다. ‘씨 과실’이다. 오늘은 씨 과실이 숲으로 가는 길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 “씨앗은 숲으로 가는 여행이다”라는 구절도 나온다. 마지막 석과가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상황, 남은 하나마저 뺏길 지 모르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효4′에 보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나온다. 씨 과실은 결코 먹지 않는다. 먹지 않고 씨를 받아 땅에 묻는다. 이듬해 새싹으로 돋아난다.

 

이 씨가 숲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 번째는 잎사귀를 다 떨어뜨려야 한다. ‘엽낙’(葉落)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면 몸체를 드러내야 한다. 그게 ‘체로’(体露)다.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건, 거품을 걷어내고 환상을 청산한다는 걸 상징한다. 추경예산 조기집행하고 4대강 사업 추진하면 경제 위기가 극복될 거라는 환상같은. 그런 환상을 걷어내면 뼈대가 선명히 드러낸다. 한 사회, 한 개인의 뼈대, 가장 근본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정치적 자주권은 있는지, 문화적 자존심은 있는지, 식량과 에너지를 어느 정도 자급할 수 있는 경제 구조가 있는지.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가 굉장히 부당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옷과 패션을 벗으면 알몸이 된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는 게 첫 번째다.

 

다음은 ‘분본’(賁本). 뿌리를 거름해야 한다. 잎사귀들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거름하는 상태다. 한 사회의 ‘본’이 무엇인가. 여기서 정치적 입장이 나뉜다. ‘본’은 인간이다. 한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게 바로 ‘정’(政),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고 지키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게 정치다. 지금은 사람을 따뜻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반대다. 사람을 거름으로 쓴다. 끔찍하다.

 

절망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크게 두 가지 방식의 대응 행태가 있다. 하나는 실사구시다. 사실에 다가가서 참됨을 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있다. 이건 진리(眞理)가 아니라 물리(物理)다. 사실에 다가가 여러 팩트들의 상호관계를 조정하고 순위를 매기고,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장애를 둘러싼 많은 팩트들을 조정하는 게 실사구시다. 이건 물리적 영역이다.

 

그런데 만약 경제가 애로에 봉착하면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구조조정, 노동유연성 식으로 사람을 조정했다. 다른 하나는 경제란 개념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경제가 무엇인가, 왜 경제를 살려야 하는가 하는 근본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게 ‘진리’다. 우리가 익숙한 건 물리적 대응이고, 거기에 합의하는 것은 아닐까. 단기적으로는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 방향과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리 문제에 반드시 부딪힌다. 인간의 근본 문제, 야스퍼스가 지적했듯이 인간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직시가 필요하다.

 

문제는 ‘머리’다

오늘은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머리, 가슴, 발 세 부분으로 말씀드리겠다. 먼저 머리 부분을 가장 문제삼고 싶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은 우리 생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선언했다. 근대 사회의 특징이 이성이다. 중세 암흑기에 비추면 데카르트 선언은 굉장히 혁명적이지만, 그 이성이 정말 합리적인가의 문제가 여지없이 해체되는 게 오늘날 지적 상황이다.

 

중세는 중세의 문맥이 있다. 예컨대 마녀가 있었다. 시대가 마녀를 인정했고, 심지어 처형된 마녀조차 자기가 마녀란 걸 자백하고 처형당한 경우도 상당하다. 지금 보면 어리석은 문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각을 달리해보자. 우리는 문맥에 갇혀 있지 않은가. 냉정히 보자. 뿌리에 해당하는 인간 이해에 있어 갇혀 있지 않은가. 나는 갇혀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이 있다 치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개는 그 사람의 정보를 면밀히 분석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우리 대부분은 갖고 있다. 사실은 A가 B를 잘 이해하려면 B가 A를 잘 알아야 한다. ‘관계’가 있어야 한다. 관계 없이도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성의 오만의 극치다. 둘 사이에 관계가 있으면 반드시 양방향 변화가 이뤄진다. 변화 없이 일방적인 인식이 누적되고, 그 누적된 인식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오만이다.

 

인식을 예전에는 ‘구도’라고 불렀다. 도에 이르는 데는 고행이 수반된다. 고행을 통해 주체가 변화되는 걸 뜻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에 이르지 못한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반짝이는 이성만 있으면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우리가 갇힌 근대 문명은 이성의 주체성에 철저히 매몰돼 있는 사고다. 특히 인간 이해에 있어선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맥은 대단히 많다. 전쟁 문맥도 많다. 아직 한국은 전쟁중이다. 우리나라가 소통이 안 되는 바탕에는 전쟁 문맥이 깔려 있다. 전쟁은 소통 문맥이 아니다. 찬반 양론으로 갈리어 어떻게 소통이 되나. 자기가 변화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 당신이 얘기해보라, 그래 그 얘기 인정하겠다, 하는 게 무슨 소통인가.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은 분석하고 대상화하는 것이다. 상품 문맥도 있다. ‘쌀 한 가마=구두 한 켤레’란 예를 들어보자. 쌀이 상품이라면, 상품은 팔기 위한 것이다. 상품은 등가물로서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상품이 아니면 그냥 먹으면 된다. 사람을 쌀 자리에 놓았을 때 이 사람이 구두 한 켤레와 같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섭섭해할 거다. 그런데 그 사람 연봉이 10억원이라고 하면 섭섭해하지 않는다. 구두 한 켤레든, 연봉 10억원이든 등가물이긴 마찬가지다. 품성이나 매력과 상관없이 인간이 등가물로 표현된다. 다른 말로 ‘등신’이라고 불렀다.

 

나도 등신 노릇 많이 했다. 교도소 목공소에서 일할 때다. 나는 기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톱질할 때 안 흔들리게 나무를 밟고 서 있으라고 하더라. 나도 명색이 대학교수 하다가 감옥 갔는데, 무게와 등가물이 됐다. (일동 웃음).

 

우리 아파트에 유명한 변호사와 별로 미인이 아닌 부인 부부가 있었다. 흔히 말해 어울리지 않는 부부였다. 모든 아파트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파트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 그 부인 집이 부자일 거라고들 했다. (일동 웃음). 루저 파문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키가 작은 남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등가물로 바라보는 거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것이다. 내 돈을 교통비나 밥값으로 쓰면 가치 증식이 아니다. 물건을 사거나 투자하는 게 자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나 단체든, 국가든 자기 가치를 키우는 게 근대사회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고 분석한다.

 

내가 감옥 초년에 깨달은 게 있다. 내가 근대적 사고에 충실한 근대인이구나. 죄수들을 바라볼 때 저 사람이 결손가정인지, 지위는 어떤지 계속 분석하고 대상화했다. 그런 기간 동안은 당연히 왕따였다. (일동 웃음)

 

‘가슴’으로 가는 긴 여정

그래도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하고 듣다보니 납득이 가더라. 20년간 한 곳에 갇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도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생활했다면 저 사람 죄명을 달고 여기 서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이성적인 영역이라면, 가슴은 공감의 영역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전두엽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고 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생각하는 것이다.

 

해 저문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 생각은 그런 거다. 이성하고 상관 없다. 생각은 그 대상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가 참여한다는 뜻도 된다. 강도에게 칼을 맞아 쓰러져 있는 유태인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부축해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보호했다. 그건 유태인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생각한 것이다. 세계는 가슴으로 조립하는 것이다.

 

진리는 어떤가. 불변의 진리? 이것이 근대사회의 문맥이다. 초역사적 불변의 진리는 없다. 진리는 조직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조직하는 것이다. 수많은 지난 사건들 가운데 역사가가 일부를 선택해 조직하는 것이다. 사마천 ‘사기’를 읽는 것은 중국 근대사를 읽는 게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다.

 

생각. 대단히 중요하다. 가슴이 생각하는 게 맞다. 멀리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생각하는 건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와 관계 없는 걸 대상화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냉혹한 근대 이성을 넘어 가슴까지 오는 것, 사람이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이다.

 

공감 단계에 올 때까지 저도 아픈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충분히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단계에 와 있다는 걸 스스로 굉장히 흐뭇해했다. 거대한 여행을 끝내고 무척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감한다는 것, 애정을 가지고 봉사한다는 것, 대가 없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 미덕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동정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동정받는 순간 자기가 동정의 대상이라는 아픈 자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돕는다는 건 그래서 우산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다.

 

집을 그리는 노인 목수 얘기를 책에도 썼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 노인 목수는 집을 주춧돌부터 기둥, 지붕 순서로 그렸다. 그 옆에 앉아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 짓는 순서와 그림 그리는 순서가 같구나. 선생 아들로 태어나 주욱 학교에서 생활한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변화는 ‘발’에서 비롯된다

‘대의’란 이름을 가진 재소자가 있었다. 30대인데도 절도 전과가 서너 개는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딱히 여겨 물었다. ‘네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나?’ 그러니 ‘난 아버지가 없는 고아다’라고 대답하더라. 돌이 채 안 될 때 버려졌는데, 발견된 곳이 광주 대의파출소 바로 옆이라 이름이 대의가 됐다고 했다. 또 충격받았다. 나는 문자가 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구나. 이걸 바꾸려 했다. 가슴에서 발까지 가야 한다.

 

발은 변화를 상징한다. 소통도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소통이 아니라고 말했다.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참 많이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주제가 해체와 변화였다. 나는 사회변혁기에는 감옥에 있었지만, 자기 변혁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사람을 ‘개인’이라 생각하지만 발로 오면 사람은 ‘관계’가 된다.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이 안정화된다. 관계속에 서야 한다. 나도 처음엔 감옥에서 왕따였는데, 관계 단계로 오니 감옥이 정말 든든해졌다.

 

징역 말년에는 상당히 편했다. 원래는 내내 요시찰이었다. 대공분실에서 몇 번 와서 추가 조서 받은 적도 있으니까. 다른 재소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했는지 불시에 방 점검도 많이 당했다. 그래서 내 방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적발되면 당장 압수될 수준의 책 40여권을 이동문고로 돌리고 있었다. 다른 재소자들과 손발이 잘 맞았으니까. 절도, 쓸이범 친구들이 얼마나 잘 하는데. (일동 웃음) 그게 관계였다.

 

그런 관계가 대단히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념적 관계도 아니다. 서로의 치부를 다 공유하는 관계임에도 따뜻하다. 아프다고 하면 몰래 숨겨둔 약을 보내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는 뜨게질한 양말도 나눈다.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 덕분에 감옥을 견디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출소 직후만 해도 나는 개인 개조나 변화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변화도 사람과 더불어 관계맺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알랭 바디우 책을 읽었다. 탈근대의 철학적 담론들이 다 해체인데, 그럼 주체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면서 진리란 기존 진리체계의 바깥에서 사건으로 돌출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천동설이 진리체계였을 때 지동설은 진리체계 외부에서 사건으로 돌출했다. 후사건적 실천이 주체를 형성한다.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은 여러분과 공유하고픈 게 ‘변화’다. 생각은 실제로 변화해야 한다. 이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선 머리부터 가슴, 발까지 길고 먼 여행을 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외부에 대한 사고다. 갇혀 있는 진리체계의 바깥에 사건으로 돌출하는 것. 쇤베르크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구성이나 화음이 원래 아인슈타인의 수학 논리처럼 복잡하다. 그걸 7음계로 나눴다. 그걸로는 미분이 안 되니 중간에 반음을 넣었다. 그러다가 12음계로 바꿨다. 쇤베르크가 고전 음악의 진리체계를 무너뜨리고 음악을 진리체계 바깥에서 돌출했다.

 

파리꼬뮌은 또 어떤가. 1871년에 70일 동안 일어난 짧은 사건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버려진 노동자와 농민이 자기들만의 정권을 꾸렸다. 파리꼬뮌이란 사건이 돌출하기 이전까지는 노동자나 서민의 정치역량에 대해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 정치 권력의 한 축으로 당당히 차지했다. 진리는 그렇게 찾아온다.

 

주변부는 변화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중심부는 완강한 구조 탓에 새로운 사고가 나오기 어렵다. 변화는 바깥에서 나온다. 마이너리티가 돼야 한다.

마이너리티는 양적 관점이 아니다. 양적으로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중심부가 갖는 영향력은 크다. 조중동, 국가, 제도, 법 등 강력한 기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금이 가장 강력한 기제를 발산하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엔 물리적 기제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상대방 동의에 기초했다는 헤게모니 또는 정서 자체를 포섭한 거대한 구조다. 양적으론 소수이지만 파워면에선 반대다. 문제는 중심부가 행사하는 파워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이다. 바로 주변부에서 온다. 피지배자라는 주변부는 다수이고, 지배하는 중심부는 소수다. 다수는 힘이기도 하고 정의이기도 하다.

 

교도소는 우리 사회의 철저한 마이너리티다. 그 언덕에 기대어 저도 변화를 고민할 수 있었다. 마이너리티의 창조성에 주목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상가이자 문장가다. 우리나라 최고의 저서가 ‘열하일기’다. 연암은 16살에 처음 글공부를 했다. 노론 집안이었지만 가난했기에 배움이 늦었다. 장가든 이후 처삼촌이 글을 가르쳤다. 열하일기를 읽어보라. 문장이 아주 뛰어나고 참신하다.

 

다산은 또 어떤가. 그런 시대에 그런 사고를 했다는 게 우리의 위로이기도 하고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다산은 어떤가. 다산초당에 앉아 있을 당시 다산은 철저한 마이너리티였다. 그래서 여유당전서를 쓸 수 있었다. 마이너리티가 되자는 실천적 사고를 한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배워야 한다. 촛불집회 때 보면 사회단체 대표들이 깃발을 들고 주욱 나타난다. 촛불이 이뤄놓은 일정한 성과를 자기 조직을 강화하는 데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대단히 안타까웠다. 그 세대, 그 사고들은 어딘가 서버에 접속해야 한다. 웹1.0 세대다. 촛불은 어디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서버다. 공간공동체란 옛날 관점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사람이 새로운 사고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오늘날 변화된 정서나 상황을 과거의 틀, 공간공동체란 문맥이 아닌 다른 문맥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걸 사회운동하는 분들이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전형을 고민해야 한다. 열심히 뛰어 양적으로 많은 모임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다.

 

감옥에서 네루와 간디를 함께 읽었다. 네루가 쓴 ‘인도의 발견’이란 책이 있다. 결국 인도를 발견한 건 네루가 아니라 간디다. 네루는 근대사회의 인식을 복사해 인도에 인식하려 했다. 간디는 가난하고, 카스트란 사회적 계급구조에 억눌려 있고, 종교란 환상에 젖어 있는 나약한 인도 국민들로부터 식민지 독립을 위한 창조적 동력을 어디서 끌어내야 할 지 꿰뚫어봤다. 그건 ‘비폭력 무저항’이었다. 인도의 현실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항쟁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나는 간디를 종교적 성자가 아닌, 뛰어난 정치전략가라 생각한다. 바이샤 출신의 마이너리티 간디가 가진 자유로움이었다. 결정적인 건,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를 향한 허망한 콤플렉스를 가져선 안 된다. 콤플렉스는 대단히 완고하다. 한 개인의 판단에 최후까지 작용하는 건 자기도 모르는 콤플렉스다. 한 사회 문화구조 속에 콤플렉스가 굳어 있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 가치를 설정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더불어 공감하고 나누는 ‘숲’으로 가자

숲으로 가자. 나무의 완성은 숲이다. 숲에는 서로 공유하는 게 있다. 서로 알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위로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란 책을 본 적 있나.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가 아니라 ‘기쁨’이라니, 한참을 찾았다. 책을 샀더니 쇼펜하우어가 쓴 책이었다. ‘모든 사랑은 아픔’이라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읽은 독자들이 사랑은 이렇게 아픈 것이구나 하고 깨달음을 갖게 된다. 그 아픔이 눈물젖은 아픔이라도 결국 깨달음에 이르고 철학이 되고 지식이 된다. 그래서 고뇌가 아니라 기쁜 것이다, 란 인식이다.

 

숲은 기쁜 곳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우정은 음모다. 주변부를 공유하는 게 우정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 질타당할 때 그 사람 옆에 가서 공유하는 것, 비난을 음모하는 게 우정이다. 숲은 우정과 음모를 키우는 진지가 되고, 사회변화 과정에서는 뛰어나가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자유로운 숲들을 도처에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숲의 개념마저도 새로운 개념으로, 개념있는 시민학교가 고민해야 한다.

 

석과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인생은 공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공부가 지겹지 않다. 시민학교도 공부하는 장소다. 약속하고 격려하는 장소다. 교도소에서 단기수들은 굉장히 괴로워한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걸 매일 체크한다. 하루하루를 버리는 것이다. 목표와 관계없이 과정 자체에 대해 자부심과 가치를 느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먼길을 가는 사람에겐 ‘고진감래’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즐겁고, 우정이 있고, 음모가 있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만이 직선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강아지는 그렇지 않다. 길 곳곳의 특질들을 파악하고 흔적을 남긴다. 시속 100km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100m 앞의 코스모스도 보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일 자체가 보람있고 아름다운 공부여야 한다. 안 그러면 먼 길을 절대 못 간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적 욕망 구조는 만들어진 욕망 구조다. 자기 주체성을 갖고 자부심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먼 길을 견디는 방법은 우선 길 자체로부터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함께가면 좋다. 함께한다는 데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처음 출소했을 때 한 시민단체에서 기금을 마련한다고 붓글씨를 써달라고 해서 ‘여럿이함께’라고 썼다. 한글로 쉽게 액자체로 쓰고 글씨체도 좋은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여럿이함께’란 메시지 속에는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하더라. 그 뒤로는 글 밑에 ‘여럿이 함께가면 길은 뒤에 나타난다’고 썼다. 쉽게 변화하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우리 사회가 가진 완고한 구조, 우리가 갇힌 완고한 문맥속에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그렇기에 자주 만나 우정을, 음모를 돈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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