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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손가락셈과 백년대계

다음은 월간 <라이브러리 & 리브로> 2009년 11월호의 권두시론, 안찬수의 '손가락셈과 백년대계'이다. 카피레프트의 원고이다. 오늘 문득 미국에서 학교도서관에 최소 1인 이상의 도서관 미디어 전문가를 배치하고자 하는 법률안이 제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내용을 검토하다가 생각나서 올리는 것이다.

 

손가락셈과 백년대계

 

어떤 사람이 매년 일천만 원씩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금리는 전혀 계산하지 않고. 이십조 원을 모으려면 이백만 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88만원 세대'라서 매년 백만 원밖에 저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백만 년이 아니라 이천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국정감사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접하게 된다. 그 보도의 알맹이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우리나라 살림살이의 규모나 실태다. 그런데 나는 워낙 숫자에 어두운 사람이라서, 숫자만 나오면 한참 동안이나 손가락셈을 해보게 된다.

 

국가채무의 규모에 대해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정부에서 밝히기로는 국가직접채무가 2008년 308조원인데, ‘사실상국가채무’는 추산하는 곳에 따라, 추산하는 방식에 따라 거의 고무줄 수준으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688.4~1,198조원(’07)이라고 하는데,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은 1,281.4조원(’07), 한국조세연구원 추산은 986조원(’07), 그런데 이한구 의원은 1,285조원(’07)이라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에 들어갈 예산에 대해서도 논란이 격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라살림의 규모가 훤한데 4대강에 들어갈 예산을 만들려고 하니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부의 손가락셈이다.

 

한때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제위기 하에 괜찮은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여 공공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했을 때, 백만 원의 월급을 백만 명에게 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십조 원이라 주장한 적이 있었다. 복지 부문의 전문가인 이태수 교수는 저출산 사회에서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무상보육에 육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재원도 십조 원이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선진복지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손가락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도서관계에서 꺼지지 않는 이슈인 학교도서관 전담 인력, 사서교사 배치 문제를 떠올렸다. 전국의 초중고 약 만 개 학교에 이천만 원의 연봉을 주어야 하는 사서교사를 뽑아서 배치하려면 이천억 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십조 원이라는 돈은 초중고 만 개 학교에 사서교사를 ‘백 년 동안’이나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말 그대로 백년지대계인 셈이다. 이것이 나의 손가락셈이다. (*)

 

2009년 10월 26일 미국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의 정식 명칭은 'Strengthening Kids' Interest in Learning and Libraries Act. 직역하자면, "배움과 도서관에 대한 어린이들의 흥미를 강화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두음자만 뽑아서 'SKILLs Act".  

 

이 법안의 목표는 뚜렷하다. 어떻게 하면 미국 내 각 학교에 1명 이상의 도서관 미디어 전문가를 배치할 것이며, 그 재원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것도 2010-2011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배치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the State educational agency will establish a goal of having not less than 1 State - certified school library media specialist in each public school that receives funds under this part'./ Each State educational agency receiving assistance under this part shall specify a date by which the State will reach this goal, which date shall be not later than the beginning of the 2010-2011 school year')

 

이러한 법안이 제출되는 사회문화적 근원은 무엇인가. 이 법안에서도 나오듯이, 자라나는 세대가 학교도서관을 통해 충실하게 정보와 지식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와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미디어를 다룰 수 있는, 즉 리터러시라는 능력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 다시 말해 시민적 자질과 인간적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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