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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2일 금요일

어느 영화인의 분노

               *사진출처: <네오이마주>

 

백건영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편집장의 분노에 찬 목소리. 

 

시네마테크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저 필름으로 고전걸작을 상영하기만 하면 시네마테크라는 명칭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곳은 영화의 역사가 배어있는 공간인 동시에, 켜켜이 쌓인 시네필 저마다의 추억과 고유의 공기와 풍경이 스며들어 마침내 만들어진 공간이다. 누구보다 이러한 무형의 자산 가치를 인정해야 할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가 이룩한 지난 8년간의 무형적 콘텐츠와 가치를 전혀 무시한 채), 시네마테크를 단지 임대료나 대주는 공간 정도로 여겨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제 61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숀 펜은 기자회견장에서 “영화의 마음을 듣고자 한다. 영화의 마음을 보고자 한다. 우리는 영화의 진정한 가치와 다양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68년 5월, ‘영화가 돈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영화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외쳤던 고다르와 트뤼포의 선언을 40년 만에 되살려낸 것이다. 그러니까, 1968년 5월 18일 고다르와 트뤼포가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페퍼민트 프레페>가 상영되던 극장을 덮쳐 스크린을 끌어내리고 상영을 중단시킨, 전쟁을 제외하고는 사상초유의 영화제 보이콧이 이뤄진 그날의 사건 말이다. 그렇게 상영이 중단됐던 <페퍼민트 프레페>는 40년의 세월을 거슬러 2008년 칸에서 다시 선보이게 된다. 이처럼 영화의 역사는 반복되고 회귀되며 어떤 것은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돌면서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산업과 첨단기술의 범주 안에서 교환가치로써의 효용성에 집착하는 집단이 영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한, 언제나 위태로운 ‘사냥꾼의 밤’을 맞이하겠지만, 그것들을 극복하는 매순간마다 더해지는 견고함과 무언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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