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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월요일

백화현, <책으로 크는 아이들>

백화현(봉원중 교사) 선생에 대한 기사. 백화현 선생은 최근 <책으로 크는 아이들>(우리교육)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7년째 이어온 가정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다. <한겨레> 2010년 5월 24일자 김청연 기자의 기사, 책은 삶의 여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가정독서모임 7년째 이어온 백화현 봉원중 교사

 

“수능을 위한 딱딱한 학습이 아닌 즐길 수 있는 배움, 자신의 길을 닦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독서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위대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벼리·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년)

“책을 읽은 후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 내 사고의 틀은 이리저리 부딪치며 깨지고 변형되기를 반복했다.”(장은선·건국대 경제학과 3년)

매주 일요일 저녁 2시간. 4년 동안 모두 여섯 명의 학생들이 한 친구의 집에 모여 책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정독서모임이란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책으로 느낀 것들을 글로 옮겨 적기도 하고, 기행도 떠났다. 이 시간 동안, 중학교 2학년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 활동을 마무리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됐다. 아이들을 키운 건 팔 할이 책과 모임의 친구였다. 2007년부터는 이들의 뒤를 이어 여섯 명이 꾸려가는 2기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아이들을 모이게 한 건 장벼리씨와 장한솔(남강고 2년)군의 어머니인 교사 백화현(51· 사진·봉원중)씨였다. 얼마 전, <책으로 크는 아이들>(우리교육)을 통해 가정독서모임 이야기를 소개한 백씨를 만나 책을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7년째 이어진 가정독서모임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 모임이다.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큰아이가 병치레도 잦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선 성적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했다. 교사로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며 살아왔지만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니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근심이 컸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외삼촌이 아이가 쓴 시를 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칭찬을 하셨던 게 내게 큰 충격을 줬다. 내가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오로지 내 틀에서 아이를 봐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이가 잘 못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단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너는 너대로 아름다운 사람이고, 배움은 지겨운 게 아니라는 울림을 주고 싶었는데 그걸 위해선 아이한테 스승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책이었다.”

 

 

교사로서 10여년 전부터 독서운동을 해왔다. 왜 꼭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일단, 나 역시 성장하면서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하고 불안해할 때 책을 통해 질문하고, 길을 찾아오며 살아왔다. 이건 나 한 사람의 체험만은 아니다. 달동네라고 불리던 신림동 난우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엄청난 변화와 희망을 봤다. 그 동네 아이들은 환경 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깊었고, 공부도 못했다. <어린왕자>라는 책을 알고 있는 아이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교과서 없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글을 써도 ‘살’, 즉 내용이나 생각이 없는 글을 쓰는 이 아이들을 보다가 독서운동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전학교 차원에서 정말 대대적인 독서교육을 시작했다.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 전교생 기준 도서관 책 대출 권수가 한 달에 한 권 수준이었다가 하루 80권으로 확 늘어나더라. 성적도 평균 65점 수준이던 아이들이 80점까지 올랐다.

영화, 여행 등도 좋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감성적인 자극을 주지 논리적인 사고력까지 길러주진 못한다. 난우중 학생들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책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다는 거였다. 감성도 자극하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길러줘서 깊이 있는 성찰도 가능하게 해 준다.”

 

독서는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모임’을 꾸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큰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서 성적도 떨어지고 좌절하면서 특히 판타지나 만화에 빠지는 걸 보고 걱정스러웠다. 현실적응력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웠던 거다. 만화나 판타지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편식이 나쁜 것처럼 편독도 문제라고 봤다. 특히 아이가 자기 철학을 가질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책만을 읽다 보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 쉽다. 아이가 독서를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하면서 세상과 만나려면 모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독서동아리 등을 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모임 꾸리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모임 뒤 큰아이는 어떻게 달라졌나?

“큰아이는 감성적인 글을 좋아했다. 논리적인 글은 재미가 없다고 잘 못 읽었고, 토론이나 뭔가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데도 서툰 편이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글에 논리가 생기더라. 그리고 고1 때 안동에 기행을 다녀오고 나서 갑자기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전까지 큰아이의 꿈은 시를 쓰는 농부였다. 나는 공부가 절대적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꿈이라면 굳이 대학을 안 가도 되니 나중에 줄 등록금을 모아 농사지을 땅을 사주겠단 얘기도 했다. ‘시 쓰는 농부를 한다면서 대학엔 왜 가냐, 너무 늦었다’고 했더니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아직은 자신에 대해서 단정하기보단 더 알아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가 고1 겨울방학이었다. 대학에 간다고 말한 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중요한 거고, 그게 큰 변화였다고 본다.”

 

 

<책으로 크는 아이들>을 읽고, 부모가 교사니까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중·고교 부모들은 현실적으로 힘들 거다. 우선 내 책 등을 읽으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서 생각의 폭을 넓혀봤으면 한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는 가능하면 부모들끼리 책모임을 꾸려보고, 책에 대한 감각을 익혀봤으면 한다. 책을 읽고 고르다 보면 자신감이 붙을 거다. 그리고 아이들 모임을 꾸려보는 게 좋은데 나는 모임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나선 너희들끼리 스스로 해보라는 수준으로 참여했다. 부모는 코디네이터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이 활동을 스스로 좋아서 해야 한다는 거다. 이 활동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동기유발을 시키고, 동의·설득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 공감이 없으면 효과가 없다.

또 하나는 인간적인 유대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 유대는 배려와 칭찬에서 나온다. 매일 잘하는 애만 칭찬받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내가 이 모임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나대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 활동을 너무 진학과 공부를 위한 활동으로 엮지 말았으면 한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정량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아이에게 평생에 걸쳐 스스로 즐겁게 공부하고, 자신을 비롯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운영에선 정답이 없다. 책에 소개된 1기 아이들은 여행을 좋아해서 책을 읽고, 기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했다. 지금 운영하는 2기는 탐구, 토론 활동 등을 하고 있는데 구성원들의 성향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는 게 정답이다. 물론 책에 소개된 프로그램들을 참고하고, 일부를 빌려올 순 있을 거다. 뭣보다 중요한 건 부모들이 자신감을 갖는 거다. 독서에 대해 고민 많은 부모들을 위해 온라인 카페를 운영할 예정이다.”

모임을 해보려는 부모들로서는 아이들마다 독서 수준이 다르다는 것도 걱정할 것 같다. 책에 나온 1기 아이들의 수준도 다 다르더라.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준비해두면 된다. 예를 들어 ‘환경’이 주제라고 하면 초등학교 수준의 쉬운 책부터 어려운 환경 철학책까지 수준별로 다양하게 갖다 놓아야 한다.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알아서 골라서 보라고 하는 거다. 모임 아이들 가운데도 한 권 읽은 아이부터 열 권 읽은 아이까지 다양하다. 근데 꼭 성적이 높다고 여러 책을 다 독해하는 건 아니더라. 자기 속도대로 읽으면 된다는 걸 자꾸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상대적인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절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저 친구보다 덜 읽었다’가 아니라 ‘내가 이 모임 안 했을 땐 책 한 권 안 읽었는데 그래도 여기 와서 이거 한 권 읽게 됐다, 고맙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요즘 입시에선 독서가 화두다. 읽고, 쓰는 능력이 평가 부분에서도 강조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어떻게 보나?

“그나마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독서 붐이 일어날 거다. 다만 인증제 등은 반대한다.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단답형으로 체크해보고 평가하는 건 기계적 독서만 부를 뿐이다. 토론 활동, 창의적인 논술 문제 출제, 에세이로 평가하기 등의 평가 방법이라면 찬성한다.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른 길이라고 하잖나. 성적 올리기용, 진학용 등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독서에 접근하면 얻을 수 있는 걸 오히려 놓치기 쉬울 거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좋아하고, 모임에 마음을 줄 수 있게 하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길이 보일 거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건데 아이들에겐 스스로 존재 가치를 높이려는 욕구가 있고, 누구나 한 가지씩 능력이 있다. 빨리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금 늦게 가는 아이도 있다는 걸 부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믿었으면 좋겠다.”

 

책 뒷부분을 보면 학생들이 가정독서모임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적어놨더라. 자존감을 얻었다는 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진학이나 공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부만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에 문제인 거다. <88만원 세대>를 보면 지금의 20대에겐 연대해 싸우라고 하고, 10대에겐 독서를 하라고 한다. 10대에겐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 이 사회에서 검·판사 되는 사람은 5% 정도다. 나머지는 사회 곳곳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살 텐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오래 하려면 먼저 자신을 알고, 자기 분야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임 아이들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서 만족스럽고, 기쁘다. 삶의 여정에서 질문이 생기고, 갈팡질팡할 때 자신을 세워줄 뼈대가 되는 게 바로 책인데 이 아이들에겐 그런 뼈대가 있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힘도 길러졌을 거라고 본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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