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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양희규 선생

'간디학교' 설립자인 양희규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 <경향신문> 2010년 5월 26일자, 김희연 기자가 금산으로 양희규 선생을 찾아가 인터뷰한 것. 기사 제목은 '마음을 통하여 ‘입시의 짐’ 덜어내니 아이들의 가슴에 ‘파란 꿈’이 움텄다'  그 기사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

 

ㆍ대안학교 첫 졸업생 배출 후 10년… 간디학교 설립자 양 희 규 교장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 언제나 그랬듯 ‘교육’과 관련한 공약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교육의 미래가 어느 한순간 누구나 인정하는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주장과 제도로 싸울 때,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꿔보려는 한 축의 노력들이 있어왔다. 그중 ‘대안학교’는 남다른 상징성을 갖는다. 올해는 대안학교 첫 졸업생들이 세상에 발을 내디딘 지 꼭 10년 되는 해다. 덕분에 우리는 교육의 다양성에 대해 얘기할 ‘살아있는 보고서’가 생겼다.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다’는 대안학교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해온 양희규 금산간디학교 교장(51)을 찾아 충남 금산군 석동리로 갔다. 그는 1997년 세워진 국내 첫 대안학교 간디자유학교의 설립자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오늘과 미래는 무엇일까. 마침 22일에는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의 1학년 25명이 교사들과 함께 한 달 예정으로 국토여행을 떠나 교정이 조용했다. 학생들의 국토여행은 보통 방학에만 가능한 것으로 여겼는데 대안학교는 그 시간표마저 다를 수 있음을 알려줬다. 이틀 전 필리핀 출장에서 돌아온 양 교장은 전날에는 아이들과 축구시합을 하느라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먼저 한 일도 e메일 확인이었다. 심각한 고민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교장 선생님에게 털어놓는 학생들의 상담 e메일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법을 깨닫기까지 7~8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싫어하는 거 안 시켰으니까 ‘좋은 사람’ 정도는 됐겠죠. 그러나 친구는 아니었어요. 이제는 운동장에서, 화장실 앞에서 부딪힐 때는 물론이고 수시로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놔요. 내면의 꿈을 얘기해옵니다.”

대안학교가 가장 바탕에 두는 것은 이와 같은 관계 회복이다.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소통의 패러다임을 체득한 것이 대안학교의 성장을 말할 수 있는 근거라고 했다. 원활한 소통으로 통제가 필요 없고 교실에선 교사와 학생간 협력이 이뤄진다. 이 학교 학생들의 시간표는 제각각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중심으로 시간표를 짠다. 교사들은 공부를 도울 뿐이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와 일, 삶을 알아나간다.

“이곳 아이들도 진로는 일반 아이들처럼 다양해요. 입학 당시 성적도 바닥권의 아이부터 최상위권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예능 쪽에 관심있는 아이들도 많고요. 졸업할 때 보면 학생들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70~80%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 같아요. 자신을 관리하는 능력도 갖추게 되고요.”

초창기 대안학교는 부적응자, 문제아 학생들을 위한 곳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성격의 대안학교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소비자’들의 인식도 변화했다. 입학을 신청하는 그룹들을 보면 남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부모에서부터 자녀가 제도권에서 별 승산이 없다고 여기는 부모, 자녀의 인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부모까지 제각각이다. 또 대안교육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 학교에서는 신입생 선발 때 부모 소개서와 부모 면접을 본다. 해를 거듭할수록 대부분의 부모가 학교가 바라는 대답을 준비해오기 때문에 변별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학생들과의 면접을 통해 역으로 그들 부모의 진심을 읽는다.

“자녀에 대해 잘 안다고 확신하는 부모들도 실은 자녀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만 돼도 이미 가면을 쓰고 부모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해요. 부모가 자신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지 않으니까 진정한 대화를 안 하는 거죠. 이곳에 오는 부모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대화할 때도 이미 원하는 대답을 갖고 그쪽으로 유도하거나 압박하는 식이죠.” ‘대학 안 갈 거냐’ ‘대학 안 가면 뭐하고 먹고 살 거냐’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와 순수한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존중하면 아이 스스로 자기 인생에 대해 더 고민하고 책임감을 갖게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간디학교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다.

“교육은 인생의 행복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없애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뛰어나다’는 것이 꼭 행복의 중요조건은 아니잖아요. 가정환경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고, 성공하려 노력해도 안되는 일도 있고요. 다수가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다수가 행복할 수는 있다는 믿음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죠.”

95년 간디농장으로 시작한 그는 97년 간디자유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이미 고1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꿈을 꿨다. 자신이 수용소 같은 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 이후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없어지고 학도호국단이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 없어졌어요.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죠. 학생회 부활을 위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자퇴를 권고받았죠. 자퇴를 거부하자 학교에서는 조용히 졸업해주기만을 바라는 분위기였어요.”

그는 계명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CNN 뉴스를 접한 뒤 마음이 급해져 교수로 살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94년 귀국했다. 당시 CNN에서는 입시경쟁에 내몰린 한국 청소년들이 한 해 수백명씩 자살한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아이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대안학교를 만들 당시와 비교해 지금의 입시경쟁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때는 중·고등학생에 국한됐는데 이제는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대안학교를 통해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같은 입시 위주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고, 국가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300여개의 대안학교들이 생겨났다. 특성화학교로 인가를 받은 곳도 있다. 농촌형에서 도심형으로 형태가 다양해졌고 개중에는 엘리트교육을 중시하는 귀족형도 있다. 다양한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부실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대안학교가 대안학교만으로 존립할 것인가, 주류가 될 수 있는가 역시 우리 사회의 남은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공교육 현장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2000년 폐교 위기에 몰렸으나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합쳐 ‘작은 학교’로 살려낸 남한산초등학교처럼 관행을 깬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으로 새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학교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학교 단위에서 인성교육 등 공교육의 가능성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사교육시장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하지만 사실 교육의 핵심기능은 학교에서만 가능합니다. 이젠 대안학교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갖춘 학교들이 많아요. 요즘 학부모들을 교육시켜달라고 저를 찾는 학교가 많아졌어요. 학부모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뀝니다. 학부모들도 입시경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책도 읽고 리포트도 쓰고 공부도 해야죠.”

현재 간디학교는 경남 산청·충남 금산·충북 제천 세곳에 있다. 문화적 교류를 할 뿐 교육과정도 다르고 각자 방식대로 운영된다. 그중 금산간디학교가 가장 자유로운 공부방식을 택하고 있는 편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려다보니 때론 국내에 마땅한 전문가가 없을 때도 있다. 이때는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전문가를 모신다. 물론 이 또한 학생들이 방법을 먼저 찾아내고 교사가 돕는다. 금산간디학교는 내년부터 필리핀 국제학교를 개설해 1년간 이전학습(현지학습)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만들 예정이다.

“토익 점수 잘 맞고 스펙을 쌓아서 하버드대에 가려는 그런 차원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도 건강한 국제시민으로서 역할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영어와 현지어를 배우는 건 소통을 위해서인 거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가치를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가려는 겁니다.”

그는 올해 대안학교 졸업생들의 그간 삶을 연구해볼 계획이다.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아, 타협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제자들을 만날 때면 보람을 느낀다. 이 아이들의 발자취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에 큰 물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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