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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7일 금요일

'책맹' 시대의 독서

<대구일보> 2010년 5월 6일자 인터넷판, 신재기(문학평론가, 경일대 교수)의 칼럼이다. 제목은 '책맹' 시대의 독서. 신재기 교수는 "독서는 디지털문화의 과잉 섭취로 말미암은 인간정신의 기형적인 변화를 바로잡은 수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서에 대한 관심이 광풍처럼 불고 있다. 올해 들어 독서 관련 서적의 출간을 보면 놀랄만하다. 독서론, 독서방법론, 독서체험기, 독서일기, 독서지도론, 독서치료론 등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그 저자도 독서 전문가에서부터 정치가 및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인 차원에서 운영되는 독서프로그램도 새롭고 다채롭다. 자녀교육 차원에서 학부모의 독서에 대한 관심도 진지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스쳐가는 봄바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문화적인 흐름이다. 환영할 일이다. 너무나 가벼워진 삶의 여건 속에서 우리의 황폐한 삶에 대한 반성적 자각 현상이 아니겠는가?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것은 우리가 독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 같다. 문맹이라서 책을 못 읽는 것이 아니다. 문자를 해독할 수 있으면서 책을 읽지 못한다. 이를 ‘책맹’이라고 한다. 들여다보면 우리 주위에 책맹이 의외로 많다. 신문을 읽지 않고 못 읽는 것도 책맹이다.


책맹은 텔레비전 리모컨에 손만 닿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고, 컴퓨터 전원만 켜면 희한한 가상 세계가 유혹하는데 신문의 문자를 따라가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논리를 편다. 책이나 신문의 문자로부터 자극되는 세계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세계가 우선은 달콤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시대다. 매체의 대세는 문자에서 영상으로 넘어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영상 이미지를 생산한다. 이미지는 직접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편하다.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귀찮다. 영상 매체의 대세에서 문자 매체의 지주인 책의 몰락은 거스를 수 없는 문화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인데 왜 책인가. 왜 책을 내세우는가.


오늘 우리의 문화 현실은 문자 매체에서 영상 매체로 중심으로 변환했다. 해답은 여기에 있다. 영상 매체 시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문자 매체의 의의가 재확인되기 시작했다. 책의 중요성은 영상 매체시대에 대응하는 문자 매체의 자기 변신이고 적응이라 하겠다. 책의 효용이 재확인되고 있다.


‘책맹’ 현상이 가속화될수록 독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오늘의 독서 열풍을 단지 문화적인 유행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책의 의의와 그 정체성이 새롭게 정립되는 시점이다. 현재 영상 문화로의 쏠림에 대한 우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방식이다. 이제 독서는 누구나 해야 할, 잘 할 수 있는 평균적인 교양 영역이 아니라 전문성을 띠게 될 것이다. 책맹이 확대되는 시대에서 독서는 더욱 전문적인 능력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독서의 중요한 부분이 정보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통로는 다양해졌다. 정보를 입수하는 통로로서 책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책은 이제 새로운 역할과 의의를 지니는 매체로 전환될 것이다. 따라서 독서의 의미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책읽기는 이제 계몽의 품목이 아니다. 교양을 쌓고 정보를 구한다는 독서 목적은 수정되고 있다. 이미지 중심 문화에 영향으로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현대인의 병적인 부분을 치유해주는 것이 독서다. 독서는 디지털문화의 과잉 섭취로 말미암은 인간정신의 기형적인 변화를 바로잡은 수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어제의 상식에서 독서를 권유하거나 지도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유효하지 않다. 책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지 못하는 ‘책맹’의 시대에서 독서는 그 자체가 능력의 전문 영역이다. 독서 방향은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독서는 디지털 시대에 대항하는 골수의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이다.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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