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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토요일

"독서, 중요하다고 강제할 것인가"

<학교도서관저널> 2010년 9월호 통권 6호를 넘겨보고 있다. 여러 글들이 있지만 눈에 띄는 글은 정책칼럼이라는 꼭지의 노명완(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글이다. 글 제목은 '독서, 중요하다고 강제할 것인가.'

 

이 글은 "학생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독서이력철' 정책이 제안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독서이력철 정책을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미 5년 전에 이에 대한 정책 연구도 있었고, 공청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점은 이 5년 전의 정책 연구와 공청회에서 노명완 교수는 다분히 독서이력철 정책을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5년 뒤에 씌어진 이 글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놀랍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계기로 노명완 교수의 입장이 선회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런 궁금증이 먼저 일어났다. (5년 전의 정책 연구와 공청회 등에서 노명완 교수의 입장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일까?) 노명완 교수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최근에 접한 뉴스는 그가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의 회장에 취임했다는 소식 이고, 또 조금 시간은 지났지만 '노명완독서종합검사(NRI)'관련된 것이었다.

 

노명완 교수의 '독서, 중요하다고 강제할 것인가'라는 글의 논지를 따라가본다. 우선 노명완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독서는 자율과 창의와 자기주도적인 고등 수준의 사고 활동"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독서가 독자 개인의 자율적인 활동이고, 의미의 창조 과정이고, 자기주도적 판단과 조정의 과정이라면, 이런 성격의 독서는 결코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또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비교되어서도 안 된다. 독서의 강제와 평가와 비교는 자율에 대한 거부이고, 창조에 대한 훼손이며, 자기주도적 판단에 대한 부정이다."

 

이런 언급은 매우 규정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판단이다.

 

사실 5년 전에도 많은 이들이 독서의 자율성, 창조성, 자기주도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다른 입장의 사람들은 독서의 자율성, 창조성, 자기주도성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또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논지로 책읽기의 강제가 필요하다는 불가피성을 논파했었다.

 

또 하나. 독서행위를 과연 평가할 수 있는가. 그리고 평가의 결과를  우리 교육을 일그러뜨리는 대학입학시험 제도와 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이 독서의 자율성과 강제성 다음에 놓여 있다. 독서행위의 평가와 그 평가 결과를 입시제도와 결합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또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입장이 나누어졌다. 독서행위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독서행위의 왜곡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는 입장에서부터, 부분적인 평가의 필요성은 있지만 그것을 대학입학시험 제도와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학입학시험 제도와 연계시킴으로써만이 독서교육의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입장까지. 이런 입장들 가운데 노명완 교수의 입장은 'NRI'란 평가방식이 보여주듯, 독서능력의 향상을 위해 평가가 필요하는 입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에서 노명완 교수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독서는 분명 자율과 창의와 자기주도적인 고등 수준의 사고 활동이다. 그런데 이런 고등 수준의 사고 활동인 독서는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다시 말해서, 읽은 책의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과 교환하고 비교하고 토의 및 토론을 할 때에 독서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에서의 독서 지도는 개인적 독서 권장을 넘어서서 집단적 비교 판단 조정의 활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이 같은 집단적 독서 활동은 결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독서 지도가 아니라 독서 말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독서활동은 'NRI'에 의해 표준화된 읽기 능력 검사의 대상이 되고 학교에서의 '집단적 독서 활동'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독서 활동 자체가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독서능력 평가와 관련하여 그 간 노명완 교수가 표명해온 생각들은 위의 인용문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이 짤막한 정책칼럼에서 노명완 교수는 독서이력철 정책에 대해 "다양화를 지향하는 독서이력철은 결코 비교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책에 대해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구한다. "모든 정책이 다 그러하듯, 독서와 독서교육 정책도 학교와 교사와 학생을 강제가 아닌, 격려와 지원 수준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독서의 개념이요 교육정책이라 생각한다."고 글을 맺고 있다.

 

독서이력철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분이라고 생각되었던 노명완 교수가 '진정한 독서의 개념'과 '바람직한 독서교육 정책'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된다. 한데 그 동안 어떻게 생각의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언급이 덧붙여 있었으면 더 좋았을 터이다. 그랬다면, 나와 같은 독자는 조금 덜 놀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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