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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7일 토요일

백성이 독서할 수 있는 정치를

백성이 독서할 수 있는 정치를

경향신문 1960.10.20 기사(칼럼/논단)

 

백성이 독서할 수 있는 정치를

제2공화국 첫 독서주간을 맞이하여

 

엄대섭

 

빈 밥그릇을 가지고 밥을 먹으라고 외치는 자가 있다면 정신분열증에 걸렸거나 엄큼한 사기한일 것이다. 그런데 과거 이 정권(李 政權) 하에서는 국정만사가 그 판국인지라 도서관 사업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책을 주지도 않고 책을 읽으라고 외쳐온 것이 다름아닌 그것이다. 그로 인한 국민의 무식조장이 해방 십오유년에 아직 막대기선거라는 미개인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무지에서 오는 가지가지 혼란이 오늘날과 같은 민족적 불행을 초래하게 된 것은 아무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20세기를 도서관의 혁명기라고 한다. 과학문화가 고도로 발전하여 인간의 오랜 꿈이 급진적으로 실현되어가는 단계에서 우주적인 생존경쟁에 따르기 위해서는 전국민의 보편적인 지식 향상이 긴요하였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도서관을 도처에 설립하게 된 것이다.

 

선진국들은 도서관법규를 완비하여 지역사회마다 공공도서관을, 관공청, 기관, 연구소마다 전문도서관을, 대학마다 대학도서관을, 초중고등학교마다 학교도서관을 설치하고 대학 또는 대학원 과정의 도서관학과를 전공한 전문직 사서와 사서교사 자격 제도의 확립, 도서관세제도, 중앙정부에 도서관국 또는 과의 설치, 문교부에 도서관 담당 장학관, 지방학무국에 도서관 담당 장학사 제도를, 공공도서관에는 운영위원회 제도를 채택하는 등등 국가의 중요 시책으로 되어 있으며 더욱이 제2차대전 후에는 눈부신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국민에게 봉사하는 공공도서관만 해도 이들 선진국에는 인구 2천명 내지 3천명에 1개 도서관이 있다. 뉴질랜드는 인구 2백만에 319개(국민 1만6천명에 1관), 핀란드 인구 4백만에 3천5백70개관(국민 1,190명에 1관), 스웨덴 인구 7백만명 3천2백26개관(국민 2천3백명에 1관) 동남아의 미개국 마래(馬來, *말레이의 음역, 인용자 주)도 인구 6백만에 1개관(국민 6백만명에 1관)으로 보급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인구 2천2백만에 18개뿐이니 국민 120만명에 1개 꼴이라 도대체 비교할바도 못된다. 그나마도 일정시의 낡아빠진 시설을 명목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 운영실태조차 그 대부분이 당시보다 많이 위축되고 있다. 이십년전 일정 식민지하에서도 남한에 41개의 공공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당시의 실정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정시 1개밖에 없던 대학이 78개로 증가되어 이 가난한 나라의 대학수가 세계에서 몇 째 가는 기관(奇觀)인데 비하여 형편 없는 공공도서관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어 학교수와 도서관수는 아울러 외국인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는 이권에만 현혹되어 있던 이정권의 실정의 일면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현황을 살펴보면 국립도서관의 경우만은 방금 국회에 제출되고 있는 신년도 예산안에서 현연도(現 年度)의 5천9백만환에서 1억3백만환으로 인상되고 있다. 이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예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국립종합대학의 도서관 예산이 현연도의 3배 내외로 인상됨과 아울러 약간의 기대는 가질 수 있으나 매년 1천만환 내지 3천만환의 도서구입으로 정비된 일부 건전한 사립대학을 추구하려면 요원한 감이 있다.

 

인구 2백만의 서울특별시는 인구 40만 당시의 노후한 시설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 안된다. 연차계획으로 구당 1개의 도서관을 설립하는 문제는 서울시 및 교육위원회에서 진지한 토의 안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 5십만의 대구시는 전국적으로도 웅대한 청사가 완성되었는데도 인구 15만 당시에 건립한 소도서관의 절반을 강점당하고 있으니 도서관 꼴이 말이 아니다. 마산시와 예천읍은 모처럼 생긴 도서관을 당국자의 인식 부족으로 기능을 상실하고 있으며 유일한 사립공공도서관인 원주도서관은 재정난으로 폐관 상태에 있다. 이들 공공도서관의 예산이란 조족지혈이라 말할나위도 없거니와 가장 중요한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전문적인 업무에는 사서직을 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반사정으로 무자격자를 담당시키고 있는 예가 많다. 이런 애로들은 당해 도서관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직원들의 조그마한 이해로써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도서관 인사정책의 졸렬로 도서관 업무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끝으로 국민이 독서할 수 있는 정치란 국정 전반에 걸친 것이나 우리 도서관계가 신정부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하루 속히 도서관법을 제정해줍시사 하는 것이다.

 

국민독서는 도서관의 보급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도서관법의 제정 없이는 도서관이 보급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둔다.

 

도서관법의 골자는 첫째로 특별시에는 구당, 도시면에는 1개의 공공도서관을 설치해야 한다. 둘재는 문교부가 인정하는 교육기관은 학교도서관을 설치해야 한다. 셋째로는 도서관의 전문직인 사서자격을 규정한다.

 

여기에 일반이 다소 의문시하는 것은 읍 이상 또는 중학교 이상에는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이나 면과 국민학교에까지도 필요할까 하는 점이다. 또 예산이 마련될 것인가를 염려하나 이것은 도서관이 건물 예산 등에 구애되는 데서 오는 것이라. 사실은 면립은 면회의실에, 국민학교는 창고 구석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 한국도서관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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