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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 월요일

10월의 하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제안이 만든 ‘기적’

ㆍ트위터가 이룬 ‘재능 기부’
ㆍ소도시·읍·면 29곳서 열강

지난 30일 오후 2시 울산 울주도서관. 작은 강의실이 울산과학고 학생 등 고교생들과 대학생, 시민들로 북적였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의 ‘뇌, 세상과 연결되다’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쁘게 펜을 놀렸다. 정 교수 강연에 앞서 김승환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은 ‘복잡계 과학-함께 만들어요’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울주도서관 관계자는 “도서관 건립 이래 정 교수나 김 총장 같은 ‘석학’을 모시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경남의 진영도서관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 이사 이승주씨의 마취통증에 관한 강의가 진행됐다. 이씨는 ‘신약 발굴’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했다. 이날 울주와 진영도서관 외 전국 29개 지역 도서관에서 69개의 강연이 열렸다. 트위터가 만들어낸 ‘전국 동시 강연기부’라는 기적이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정재승 교수가 지난 9월 초 자신의 트위터(@jsjeong3)에 ‘과학자의 작은 도시 강연’을 제안한 것이 출발(경향신문 9월10일자 9면 보도)이었다.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읍·면에서는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중에서 강연 기부를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라는 글이었다.

정재승 KAIST 교수가 지난 30일 울산 울주도서관에서 진행한 ‘뇌, 세상과 연결되다’라는 주제의 ‘기부 강연’을 학생과 시민들이 경청하고 있다. 울주도서관 제공


기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정 교수의 트위터로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10시간 만에 300여명이 답장을 보내왔다.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나고 실제 69명의 강사가 강연 기부에 동참했다. 이날 강연 진행을 도운 ‘진행 기부자’까지 포함하면 80여명의 사람들이 ‘재능 기부’에 나선 셈이다.

도서관마다 2∼3명의 연구기관 연구원과 의사·교수·대학원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강연에 나섰다. 일부 도서관에서는 공연 기부를 펼치기도 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청소년에게는 수천권의 과학도서가 전달됐다.

트위터를 통해 강연 실시간 중계도 이어졌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강의 소식과 사진을 보며 “감동적”이라는 소감을 쏟아냈다. “계속 눈물이 나서 눈가가 따갑습니다. 저는 웃고 있는데 말이지요. 오늘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누어진 강연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 될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해져요.”(@el_camino80).

이날 강연 기부에는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7년 10월 어느 날 미국 탄광촌에 살던 한 소년이 당시 소련에서 인공위성이 발사됐다는 뉴스를 보고 로켓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고 마침내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가 된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 제목 <10월의 하늘(October Sky)>에서 따왔다.

정재승 교수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실감이 안 났는데 막상 전국 곳곳에서 강연이 시작되고 사진 등 상황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보고 감동했다”면서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먼 훗날 다시 강연 기부자로 나서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 행사를 연례화할 생각이다. 매년 10월 마지막주 토요일을 ‘재능 기부의 날’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년에 364일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돈을 벌고, 단 하루라도 그 재능을 기부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방 청소년 위한 ‘착한 재능기부 실험’

 

ㆍ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트위터 글에 300명 몰려
ㆍ내달 30일 100곳서 강연


지방의 청소년들은 좋은 강연 한 번 듣기 힘들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재승 교수는 5년 전부터 이런 지방 청소년들을 위해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지방의 작은도서관을 찾아 과학 강연을 해왔다. 몸은 하나뿐인데 강연 요청은 늘 많다. 100여곳의 지방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과학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은데 더 도울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정 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jsjeong3)를 통해 ‘과학자의 작은 도시 강연’을 제안했다. “어린 시절 우주와 자연, 생명의 경이로움을 체험한 청소년은 자연을 탐구하는 삶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읍·면에선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중에서 강연 기부를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오는 10월30일을 ‘과학재능 기부의 날’로 정하고 이날 하루라도 아이들에게 ‘과학을 하는 즐거움’을 알려주자고 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30분씩 2시간 동안 재능을 기부하자는 뜻이었다. 정 교수의 트위터에는 10시간 만에 300여명이 과학 지식을 기부하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경기 연천지역 군의관입니다. 생명에 대한 논의와 진화론에 관심 있습니다.’(@thinkingdoctor),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심장과 관련된 동영상 중심의 강의를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듯합니다’(@PiZKorea), ‘신약 발굴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 청소년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KrDrug)…. 변리사·큐레이터·임상심리학자·카피라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꼭 과학도여야만 됩니까.” 인문학도 100여명도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AbsoluteFunn은 “허드렛일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분명 잡일들에 대한 손이 많이 필요하실 거예요”라는 글을 남겼다. 재능 기부 움직임에 고무된 이용자들은 “트윗하며 느낀 감동 중 최고”(@xsishj),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분명 이 세상에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kirisanga)고 썼다.

정 교수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비과학도들의 참여 요청도 많아 10월30일을 ‘과학재능 기부의 날’이 아니라 ‘재능 기부의 날’로 바꿀까 고민 중입니다.”

그는 10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일부 참여자들과 함께 ‘재능 기부의 날’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숙의한다. 정 교수는 “지방의 아이들이 좋은 강연을 계속 들을 수 있도록 재능 기부 움직임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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