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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1일 월요일

한국 원자력, 살얼음판 위에 서다 - 일본과 한국, 안전 불감증에 있어 완전히 쌍생아

한국 원자력, 살얼음판 위에 서다 - 일본과 한국, 안전 불감증에 있어 완전히 쌍생아

어제 새벽 필리핀발전소 현장과 우리 석유공사 개발한 베트남 가스전을 돌아 보고 귀국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접한 뉴스는 8천km 떨어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관측소에서 후쿠시마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이었다. 경악했다. 태평양을 건너 방사성 물질이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안전한가? 이 순간 우리가 믿을 것은 바람뿐이라니

그렇다면 우리의 원전은 일본과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안전한가!
지금은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지만, 며칠 지나면 지금 일본의 倉皇失措(창황실조)*마저 새까맣게 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 갈 것이다.   

    * 이 말은 일에 당면해서 허둥대고 당황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서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맡아 전쟁을 치룬 西厓 류성룡이 우리 국민들의 조급증과 지독한 건망증을 지적한 말

오늘의 후쿠시마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의 半의 半만한 원자력폭발이 일어난다면 지난 50년의 우리의 번영과 영광은 쓰나미에 쓸려간 일본 동부의 처참한 모습이 될 것이다. 이번 일에서도 우리가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적어도 우리 자손들의 미래는 없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후쿠시마 원전 건설 당시 배관 전문 현장감독으로 참여했던 히라이 노리오가 쓴 장문의 글을 접했다.(번역문은 풀뿌리시민단체 에너지 전환 '원자력 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죠' 인용자) 그는 1997년 사망하기 전인 95년 고베지진 직후 후쿠시마 원전의 치명적인 결함을 다룬 글을 남기면서, 후쿠시마 원전이 부실공사 덩어리라는 점과 일본의 ‘원전 안전 신화’가 허상임을 생생히 증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국정감사장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김상택 책임 기술원이 우리나라 원자력 공사의 부실을 증언했었다. 원전 사고는 그것이 벌어져 재앙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일본 당국은 히라이 노리오의 95년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전까지 원전의 부실을 은폐했고,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폐로에 들어 갈 원전을 기간 연장했고,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하기는커녕 은폐하고 축소했다. 이 때문에 어제 호미로 막을 일을 오늘 가래로도 막지 못하면서 큰 불행을 불러왔다. 이제 그 재앙은 비가역적이다. 

내가 지금 놀라는 것은 그동안 일본 당국과 전문가들이 해왔던 언동과 행태가 우리의 것과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소위 원전 전문가들의 안전 불감증, 정부의 수수방관이 그것이다. 지난 3월 14일의 국회 상임위의 관계자의 증언은 어쩌면 한 치의 변화가 없이 “문제없고요. 안전합니다” 였다. 천길 절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선 이 기록을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어쩌면 지난 15년 내가 지켜본 원전의 안전에 대한 결론이다.

우리 원전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는 지진에 안전하다’는 편견 위에 놓인 불안한 원전! 정부는 78년 4월 가동된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에 국내 발전소는 물론 플랜트 시설로는 최초로 내진설계가 도입되었고, 현재 가동중인 21기 모두 내진 설계값 0.2g에 지진 강도 6.5까지 끄떡없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원전이 최초 건설된 당시에는 지진에 대한 우려나 현실적인 고민이 전혀 없었다. 히라이 노리오가 증언한 것처럼, 안전에 민감한 일본에서도 그 부실이 드러났다. 우리 원전 현장에서 내진 설계에 의해 시공이 완벽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정부와 관계자들은 내진을 말하지만 적어도 내가 우리나라의 지진 위험성을 제기한 1996년까지 원전의 지진 위험성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지금도 그 위험성은 우리의 사고 밖에 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부추겨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0.2g이니 0.3g이니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96년 초선 국회의원 당시부터 원전 지대의 지진문제를 지적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원전은 활성단층 위에 놓여 있고, 원전 반경 50km 이내에서만 78년부터 현재까지 총 123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고리 원전 주변에서 14회, 영광 26회, 월성 37회, 울진 46회에 달하고, 최대 4.7의 지진이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고리와 울진 원자력을 건설할 당시인 1978년경에 원전의 지진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하필이면 어찌 활성단층인 양산단층 월성단층 경주단층 위에 부지를 선정했겠는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다’라는 예단 위에 우리의 원전은 기획되고 시행되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둘째, 증기 발생기 세관의 냉각수 유출의 문제이다. 이 또한 완전한 인재(人災)!
98년 나는 울진1호기에서 증기발생기 세관의 결함으로 인해 방사능 물질이 함유된 냉각수가 누설되고 있는 점에 예의주시했다. 울진 1호기 증기발생기의 9,990개의 세관 중 17.63%인 1,761개에서 부식으로 인한 결함이 확인됐다. 80년 이후 세계적으로는 부식문제를 개선한 인코넬 690TT를 사용했는데, 우리나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낡은 재질인 600TT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10월 20일 현재 울진 1호기에서 시간당 11.56리터의 냉각수가 누설되고 있었고, 3개의 증기발생기 중 한 곳에서는 시간당 6.38리터의 냉각수가 누설되었다. 제작사인 프랑스 프라마톰사에서는 증기발생기당 시간당 10리터의 냉각수 누설시 발전소 정지를 권고한 상태였다. 한전의 자체규정도 같았다.

냉각수 누설의 심각성을 감지한 나는, 발전소 출력을 낮추거나 운전을 정지하고 보수에 들어갈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의 답변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은 국정감사 기간 내내 되풀이됐다.

하지만, 애초 재질을 잘못 썼던 세관에서는 10월 5일부터 20일까지 15일간 1.33리터가 증가해 시간당 11.56리터의 냉각수가 누설됐는데, 국정감사 기간 중인 11월 8일에는 13.13리터를 기록했다. 채 20일도 안돼 1.57리터가 늘었다. 100% 출력을 강행하면 운전 제한치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울진1호기 출력을 75%로 낮추겠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이후 12월 11일 발전을 정지하고 핵연료교체 및 보수에 들어갔다. 그때 상황을 떠올리니 간담이 서늘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안전 불감증이다. 이 문제에 있어 나는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다 우리는 이런 의식으로 와우 아파트에서 성수대교를 건너 삼풍백화점의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 사례 하나를 보자! 이번에 수소 폭발과 똑같은 일이 1998년에도 일어날 뻔했다. 98년 9월 이후 울진 2호기 주발전기에서 수소가 누설되기 시작해 1.9㎥/일(日)씩 증가하고 있었고, 그 해 9월 30일 34.34㎥/일에 이르렀다. 즉 34톤 이상이 누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누설된 수소가 산소와 결합해 폭발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그 때 장관과 관계자들의 국무회의에서의 증언은 ‘별 문제 없다’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비서관을 시켜 국회의원인 내게 전화를 걸 정도였다.

주발전기 제작사인 프랑스 알스톰사가 누설 한계범위를 25㎥/일로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임의로 40㎥/일로 정했다. 더구나 당시 누설량이 이에 접근하자 또 다시 규정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운영권자는 무리한 원전운행을 강행하고,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결국 아무 일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지금도 이 일이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99년 당시 수소누출로 폭발가능성이 제기된 울진 2호기에서 수소누출 측정을 비닐봉지로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유량계와 수소측정장비는 아예 없었고, 하루 한 차례씩 비닐봉지로 채집해 수소 농도를 재고 있었다. 고작 비닐봉지로 잰 측정치를 가지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또한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셋째, 우리나라 원전 시공에서 벌어진 부실시공의 문제이다.
89년 울진 원전 1호기 가압기 살수배관에서 설계에 없는 용접 부위가 1곳 발견됐다. 94년 영광 3호기에서 43곳, 4호기에서도 6곳의 용접부위가 발견됐다. 울진 1호기는 조사 작업도 벌이지 않은 채 가동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원전의 가동을 즉각 중단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원자력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99년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 내가 밝혀내기 전까지 은폐된 내용이었다. 국정감사 다음날인 13일 김상택 책임기술원은 국감장에서 다 밝히지 못한 원자력 건설 과정의 실체인 불량용접과 날림공사 등을 생생하게 양심선언 했다. 그리고, 보고서를 올렸으나 묵살당했다고도 밝혔다. 오늘 나는 김상택이 그립다.

99년 당시까지 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의 안전규제기관도 원인규명은 물론 또 다른 미확인 용접부위가 있는지에 대한 확인작업도 실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재조사를 실시하였지만, 결국 우리 원전은 이런 부실 위에서 운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고 또 돌아 볼 일.

이상의 사례들은 우리 원전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들이다. 이후 조사단이 파견되는 등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그 전까지 정부와 원전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관했다.

일본은 ‘원전 안전 신화’를 뽐냈다. 속은 곪아 터지는데, 멀쩡하다며 원전 확대 정책을 펼쳐 왔고 원전 해외 수출에 주력했다.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그들의 말과 논리는 그대로 우리의 말과 논리와 같았고, 아마 그것은 폭발 전의 체르노빌의 과학자와도 같을 것이다. 나는 10년 전에 체르노빌을 방문해서 그들과 이런 문제를 논의한 적도 있다.

이제 우리도 원전의 폐로를 검토하고 고준위 폐기물을 포함한 핵주기의 완성을 서둘러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재앙의 진원지가 됐던 제1원전 1호기는 올해 2월로 수명이 끝났지만 운전 연장을 단행했다. 우리도 2007년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를 10년간 연장했고, 2012년 11월 수명이 끝나는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을 준비 중이다. 이것도 살얼음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노후 원전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미련함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노후 원전 중단을 즉각 검토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 원전에서 임계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2000년부터 현재까지 설계 불완전으로 4회, 제작 불완전으로 13회, 기계 오동작으로 22회 등 총 105회에 걸쳐 고장이 발생했고 운전이 정지됐다.

대통령과 과학자들은 ‘국내 원전은 안전하다’고 강변한다. 정부는 현 계획대로 원전 건설을 확대 추진하려고 한다. ‘돌관자’의 거침없는 모습을 보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하늘이 도와서 아직 우리가 안전한 것이지 결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를 비롯해 80년대에 지어진 고리 2·3·4호기, 월성 1호기,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에 대한 안전성을 총점검해야 한다. 운전을 정지하는 일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여건상 원자력 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에 철저해야 한다. 원전은 ‘원전의 안전성’이 생명력이다. 경쟁력이다. 안전성 없는 원전르네상스는 사상누각이다. 원전의 안전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며, 사람의 생각의 문제이다. 지금 원전의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짜야 한다.

2011년 3월 20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김  영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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