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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7일 일요일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그 자체로 결함?

새벽에 잠이 깨어 컴퓨터 앞에 앉아, 일본의 원전 문제에 대한 기사를 이리저리 검색해본다. 그런 가운데 만나게 된 몇 가지 기사들.

(1)2011년 3월 18일자 보도, 사고 원전은 그 자체로 결함이 있는 '제품'이었다고 설계담당자가 35년만에 깜짝 고백했다는 내용(事故原発は“欠陥品”? 設計担当ら35年ぶり仰天告白)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자로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가 개발했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GE의 전 직원 데일 블라이덴보 씨는 후쿠시마 제1원자로와 같은 형의 원자로에 대해 안전에 불안함을 지적, "분석이 끝날 때까지 일부 원전은 폐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GE측은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GE를 그만두었다"고. 
-또한 후쿠시마 제1원자로는 GE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도시바와 히타치 제작소가 관여하여 건설. 디자인에 참여한 도시바의 원래 기술자 오구라 지로(小倉志郎, 69)는 3월 16일 외국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서 놀라운 증언. "67년 설계 당시 지진 쓰나미는 가정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일본에서 사실상 최초의 원자로 설계여서 지식이 부족, 내진설계 기준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

(2)2002년에 일어난 도쿄전력 원자력발전소 문제 은폐 사건에 대한 일본판 위키피디아 기록. 이 기록에 따르면  2002 년 도쿄전력 원자력발전소 문제 기록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 발각되어, 도쿄전력의 주요 인사들이 사퇴. 이 사건으로 " 2002년 9월 3일 닛케이 평균주가는 버블 후 최저가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문제를 내부고발한 이는 GE인터내셔널의 미국인.

(3)2006년 일본 공산당의 신문 <적기> 보도에 따르면 쓰나미 5미터가 발생했을 경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약 80%에 해당하는 43기의 원전에서 냉각수가 일시적으로 바다에서 취수할 수 없게 된이 중의원 예산위원회 분과위원회의 吉井英勝의 질의로 밝혀졌다(? )는 것.

(4)아래 문건은 아주 세밀하게 검토해볼 만한 문건인 듯싶다. 1999년 10월,  Edwin S. Lyman 박사의 강연 :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MOX 연료의 사용이 미치는 영향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원자력발전소의 설계, 입지, 건설의 기초가 되었던 믿음은 봉쇄기능(Containment)을 깨고 대량의 방사성 물질의 방출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고는 기본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믿음은 1970년대 중반에 흔들리게 되었다. 새로 설치된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원자로 안전연구(RSS)"라는 방대한 보고서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RSS는 노심용융 및 봉쇄기능의 손실 또는 우회를 초래하는 원자력발전소 사고 시퀀스가 있음을 보여 보였다. 그러나, RSS는 이러한 사고의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지만, 매우 낮다고 논의함으로써 약간의 안심을 초래하기도 했다. 따라서 NRC는 기존의 원자력발전소의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지 NRC는 이러한 사고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될지, 또한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철거 철수, 건물 피난 등)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5 년도 지나지 않은 1979년  RSS가 100만년에 1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 종류의 사고가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했다. NRC는 결국 이러한 사고를 심각하게 파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엇고, 기존 및 신규 원자력발전소에 새로운 규제를 부과하게 되었다. NRC는 또한 심각한 사고의 가능성에 따라 공중을 위한 비상 계획을 세웠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중대 사고는 큰 방사능 방출에 이어 대량의 방사능에 의한 수십 명의 급성 죽음(PF)과 수백 수천 명의 잠재적인 죽음(LCF)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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