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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2일 화요일

김범부, 김동리, 김정근

한국근현대 문학에 김동리의 그림자는 짙다. 그런 김동리의 사상적 밑그림은 범부에게서 전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범부를 살피지 않고서는 동리를 다 말하기 어렵다. 범부에 대한 연구총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거기 도서관계 분들에게 아주 낯익은 이름도 있더라는 것. 김정근 부산대 명예교수. 김 교수가 범부의 외손이라고 한다.

교수신문 2011년 3월 21일자 최익현 기자의 보도,
'잊혀진 사상가'의 歸還 -범부 김정설 연구총서 나왔다

한국 근·현대기의 잊혀진 사상가의 한 사람인 凡夫 金鼎卨(1897~1966)을 새로이 찾아내 정리한 범부 연구총서가 발간됐다. 연구 총서 발간에는 2007년 꾸려진 범부연구회(회장 최재목 영남대 교수·동양철학)가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개별 학자의 노력도 컸다. 『凡夫 金鼎卨-단편선』(최재목·정다운 엮음, 선인, 2009.10)을 시작으로 최근 『범부 김정설의 풍류사상-범부 연구총서 001』(정다운 지음, 선인, 2010.11), 『범부 김정설 연구논문자료집범부 연구총서 002』(범부연구회 지음, 선인, 2010.11), 『金凡夫의 삶을 찾아서범부 연구총서 003』(김정근 지음, 선인, 2010.11)이 동시에 출간됐다.

범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김동리의 맏형이다. 좌우익 사상 대립기에 비교적 독자적인 길을 걷고자 했던 인물로, 風流, 風流道 및 東方 등의 주요 개념들과 ‘東方學’ 연구의 방법론을 정립하는 등 신라-경주-화랑 개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선각자이다. 격동하던 한국의 근현대 학술, 정치, 문예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학술, 저작 및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더하던 차라, 이번 범부 연구총서 간행은 학계로서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범부 연구총서 1권인 『범부 김정설의 풍류사상』이 범부 연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과 그의 생애를 조감하고 그의 사상을 개관, 소개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는 총론이었다고 한다면, 2권은 각론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본격적인 학술연구서라고 볼 수 있다. 범부 연구 현황을 검토함으로써 향휴의 범부 연구의 진로와 연구 과제를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그의 신라정신, 동학관, ‘鷄林學塾’ 설립 등 정신사적, 대학사적 측면까지 큰 틀에서 접근했다.

총서 가운데 3권은 조금 특이하다. 저자가 범부의 외손이라는 점에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가 복기하고 설정한 틀에 경청할 부분이 있어서다. 개인적 기억과 가용한 다른 자료를 활용해 범부와 동학, 범부의 가계와 가족관계, 범부의 서당 공부 등에 대해 추적했다. 저자는 김정근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다. 그가 일찍이 『한국사회과학의 탈식민성 담론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2000)의 저자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3권 말미에 ‘범부 해석학을 제안’한 대목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문제의 대목은 그가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다음 글을 적극 인용한 부분이다. “광복 당시에는 전통적인 학문을 제대로 하고 일제의 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재야 민간학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분들을 교수로 모셔 대학을 이끌어나가게 하면, 우리 학문의 전통을 바로 이을 수 있었다.”(조동일, 『독서·학문·문화』, 서울대출판부, 1994)

김정근 교수가 만든 범부의 연보에 따르면, 과연 범부의 학력이란 근대적 교육에 미치지 못하는, 사당에서 배운 漢文七書와 일본에 건너가 京都帝大, 東京帝大 청강이 전부였다. 그러나 평범한 서당 출신의 범부였음에도 불구하고 1921년 일본에서 귀국한 그는 동국대의 전신인 불교중앙학림에서 강의했으며, 1924년에는 <개벽>지, <연희>지 등에 노자 사상과 칸트에 관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해방을 맞은 그는 1948년 『花郞外史』를 구술했지만, 출판되지 못한 채 보관 상태에 있었다. 잠시 정계에도 진출했다. 범부는 1950년 2대 민의원에 출마해 당선돼 4년간 민의원직을 수행했던 것이다. 1955년에는 경주 계림대학장에 취임했으며, 1958년에는 건국대에서 정치철학 강좌를 담당하기도 했다. 1963년 그의 나이 67세때, 5·16 세력의 외곽 단체인 五月同志會 부회장에 취임, 이 단체의 회장인 박정희 소장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치 자문을 위해 자주 청와대를 출입했다.

이 부분은 그의 이력 가운데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일 것이다. 통일신라와 화랑, 풍류를 말하던 그가 정치권력의 극점과 가깝게 자리했다는 점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70세인 1966년 범부는 서대문 소재 적십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간암이었다. 영결식에서 제자였던 시인 서정주가 조시 「新羅의 祭主 가시나니: 哭凡夫 金鼎卨 先生」을 지어와 울면서 읽었다.

잊혀진 전통 사상가 범부 김정설. 범부연구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설가 김동리를 연구하는 자리에서 호명됐던 이 재야 사상가의 진면목이 어떻게 드러날지,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는 것도 퍽 흥미로울 것 같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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