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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8일 화요일

"더 이상 아무도 울지 않기를 바란다"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지 163일째인 6월17일, 김진숙씨가 그간의 소회를 육필로 정리한 글. 

6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조합원들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이고, 사위였다. 지금은 그저 정리해고자일 뿐이다.

집에 못 들어간 지 6개월. 공장에서 먹고 자며 불안한 일상들을 간신히 이어왔는데 회사 측에서 제기한 퇴거 명령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이제 정말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됐다. 대부분 김해 사원아파트에서 사는 조합원들은 벌써 집에도 퇴거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난 우리 조합원 170명이 해고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공장에서,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회사 측에선 임금 수준이 높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데 조합원들 임금은 다른 조선소의 60~70%밖에 안 된다. 반면에 영업이익은 타 조선소 평균의 3배이다.

선박 수주를 못 받았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다른 데는 수십 척씩 받는 수주를 왜 우리만 3년 동안 한 척도 못 받는가. 노동자들은 수주를 책임지지 않았다. 수주 담당은 조남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국 영업 상무(33)였다.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면 먼저 경영진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한진 경영진은 정리해고를 발표한 다음 날 174억원 주식 배당금을 챙기는 것으로 노동자들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한진 정리해고 문제의 본질은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고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옮겨가기 위한 목적이다. 영도조선소에서 수주 0척을 기록할 동안 수빅에선 63척을 수주받았다.

우리는 이미 2003년에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650명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발표했고 거기에 저항해 노동조합은 2년간 투쟁했다. 그 결과 노사가 합의를 해 마침내 긴 싸움이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합의안을 번복했고, 당시 노동조합 김주익 지회장이 이 크레인에 올라 129일 동안 농성하다 목을 맸다. 129일 동안 교섭이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은 물론 지회장 사망 이후 시신이 2주간이나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한 상태인데도 회사 측은 어떠한 해결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도크 바닥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 나서야 합의가 이루어졌다.

수빅조선소가 지어질 때도 노조에서는 영도조선소의 고용 불안을 염려해 수빅조선소에 수주를 몰아주거나 고용 불안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그 약속을 어겼다. 이 싸움의 전조는 이미 3년 전부터 진행돼왔다.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임금·단체 협약을 계속 미뤄왔고 3년 전 임·단협 교섭이 아직도 체결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다 2010년 회사는 다시 구조조정의 칼날을 빼들었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항으로 작년 2월14일 구조조정 중단에 노사가 합의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 합의서는 또 휴지 조각이 됐다. 정리해고 대상자 400명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나가고 170명이 남았다. 1년 사이 이미 세 명이 심장질환이라는 똑같은 사인으로 사망했다.

누군가는 이 질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1월6일 나의 20년 지기 김주익 지회장이 시신으로 내려온 이 크레인에 다시 올라 163일째 새벽을 맞고 있다. 아마 이 글은 내가 크레인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회사에서는 전국에서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6월10일 용역 깡패와 구사대를 1000명도 넘게 동원했다. 돌멩이 하나 쥐지 않았던 맨손 노동자들이 용역 깡패의 방패에 머리를 찍혀 병원으로 실려 갔고, 막내아들뻘 되는 용역의 발길질에 정년을 앞둔 노동자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조합원 10여 명이 다쳤고 공장은 용역들에게 점령당했으며 크레인은 고립되었다. 나는 이 위에서 그 광경들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리고 어제 오후(6월16일) 경찰특공대가 이 85호와 똑같은 84호 크레인의 구조와 거리 등을 면밀히 답사하고 갔다. 84호와 85호는 같은 레일을 쓴다. 84호를 움직이면 85호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특공대가 투입된다면 여기서 혼자 163일을 매달려 있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건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는 희망버스를 막은 이유가 국가 보안시설에 외부 세력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던데 그렇게 중요한 국가 보안시설을 왜 필리핀으로 빼내가는가.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왕복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제 돈 내고 온 분들은 조직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어 내려온 크레인에 똑같은 이유로 사람이 올라가 반년 가까이 매달려 있다니까 걱정도 됐을 것이고 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온 사람들을 막겠다고 출입문에 컨테이너를 2층으로 쌓고 그것도 모자라 틈새마다 용접을 했다. 담을 넘어 들어온 사람은 용역들이 막았고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회사 측이 먼저 유발한 충돌을 기화로 경찰은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회사는 25명을 고소 고발하는 것도 모자라 공권력 투입을 기도한다.

나는 내 발로 살아 내려가고 싶다. 그런 날을 163일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에서 내려가는 연습을 한다.

더 이상 아무도 울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조남호 회장님, 이제 그만 좀 하시죠.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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