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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일 수요일

'피동형 기자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정부의 5ㆍ17 조처는 심상찮은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되며, 나아가서 이를 계기로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부정부패와 사회불안을 다스리려고 결심한 것으로 관측된다."

1980년 5월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5ㆍ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뒤 한국일보에 실린 20일자 사설이다.

당시 대부분의 신문과 마찬가지로 비상계엄 확대 조처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 신문은 '풀이되며' '관측된다'와 같은 무주체 피동형 표현을 썼다.

30년간 일간지 기자로 근무해온 김지영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은 "이런 표현은 1980년 5월 무렵 펜을 잡았던 기자들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며 "그 의견이 양심에 맞지 않고 떳떳하지 않음을 문체를 통해 스스로 드러낸 셈"이라고 말한다.

김씨의 책 '피동형 기자들'(효형출판 펴냄)은 피동형 표현을 비롯해 한국 신문기사 문장의 오염 실태를 파헤친 책이다.

1980년대의 피동형 표현은 군부의 언론 탄압 속에서 기자적 양심을 차마 저버리지 못해 나온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습관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피동문 기사에서는 글을 쓴 행동주체인 기자가 잠적한다. (중략) 이로써 자연히 글의 책임성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책임성이 적다 보니 객관성을 지닌 글로 오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어법을 어기면서 기자의 의견을 일반화ㆍ객관화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객관보도 원칙에 어긋난다."(50쪽)

이 책에서는 또 객관보도를 해치는 공범으로 정체불명의 '전문가들'과 같은 익명 표현, '…라고 전해졌다'라는 식의 간접인용문, '…라는 전망이다'와 같은 가정판단서술 등도 꼽았다.
러한 표현은 언론의 객관성뿐 아니라 전반적인 언어 습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자는 "신문ㆍ방송은 국민에게 '매일의 국어 교과서'"라며 "언론계와 정부, 학계 등 3자는 함께 협력 체제를 갖추고 공공 언어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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