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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대학에는 ‘대학’(大學)이 없다 / 김동춘

김동춘 교수의 불로그에서 옮겨 놓는다. '대학에는 대학이 없다'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은 2011년 12월 5일자 한겨레의 '세상 읽기' 칼럼으로도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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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역사 60년이 지났는데
아직 박사 따려면 ‘미국’ 가야 하고
학부는 오직 ‘간판’ 취득 기관이다

지난 며칠 동안 학술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에 다녀왔다. 느낀 것이 많지만 대학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왔다. 지하철이나 학교 카페에서 스마트폰 갖고 노는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베를린대학으로 가는 전철간에는 책이나 수업교재를 줄 치며 읽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며칠 동안의 인상이지만 프랜차이즈 업체가 어지럽게 들어와 있는 캠퍼스나, 도서관에서 토익·토플·편입 공부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젊은이들 탓하자는 것 아니다. 대학에서 밥 먹고 있는 한 사람이자 학부모인 나도 책임의 일부를 지고 있다. 한국의 학부는 취업과 출세를 위한 ‘간판’ 따는 곳이다. 그러니 입학이 중요하지, 교육은 중요하지 않다. 입학만으로 이후 취업과 출세가 거의 80%는 정해져버리니, 교수와 학생이 학문을 매개로 만날 일이 없다. ‘서열’이 낮은 대학의 교수나 학생은 이런 조건에서 취업률 압박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정년 보장을 받은 상위권 대학의 교수는 교육에 매진할 동기가 거의 없다. 게다가 대학 강의의 반은 학술 연구는커녕 하루하루의 생계 걱정을 하는 시간강사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대학의 실제 수준은 사실상 대학원을 보면 안다. 그런데 국내 대학원은 텅 비어 있다. 국내 학위로는 행세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을 제외하면 외국 학생들이 한국의 특정 교수 밑에서 공부하러 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사실상 국민교육기관인 학부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 학부모들이 매일매일 전쟁을 하고 심지어는 수많은 전사자(?)가 나오는 비극이 계속되지만, 정작 학문과 학자를 생산하는 대학원은 학부의 부속기관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 7만여명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 수로는 중국·인도에 이어 3위이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압도적 1위다. 한국 학생들이 1년 지출하는 돈은 평균 잡아도 대략 2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다. 이 돈이면 서울의 큰 대학 5개 이상을 운영하고도 남는다. 그 돈을 10년 정도 국내 대학(원)에 집중 지원하면 일본처럼 구태여 미국 유학 가지 않고서도 자기 땅이나 세계에서 전문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또 할 의지도 없다. 대학 역사 60년이 지났는데, 아직 박사를 따려면 ‘미국’ 가야 하고, 학부는 오직 ‘간판’, 특정 학벌집단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증 취득 기관으로만 남아 있다. 경쟁해서는 안 될 곳에 과도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지원과 경쟁이 필요한 곳은 그냥 버려져 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한국에 대학이 없고 학문이 없는데, 실제로 대학은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학부모 부담률은 전체의 90% 정도로서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식 학벌사회 편입시키기 위한 투자비용이다. 독일의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고, 등록금이 거의 없다. 요즘 독일 대학도 미국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 때문에 기존의 국가 지원과 평준화 제도를 철회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서열대로 모여 있는 한국 학생들이 평준화된 대학에 다니는 독일 학생들보다 우수하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학부를 평준화하고, 기업이나 사회에 채용 정보를 주기 위해 졸업정원제 등 대학 평가 체계를 엄격히 하되, 오히려 대학원에 집중 지원하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대학(원)을 진정으로 학문하는 곳, 국제적인 수준을 갖춘 곳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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