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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1일 수요일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사상가

2012년 1월 17일자 주간경향 959호의 글, '신동호가 만난 사람'  ‘녹색당 전임강사’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신동호 기자는 이 글에서 김종철 선생을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사상가'라고 부르고 있다.  녹색당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기본소득제, 은행의 공공화,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현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복지논쟁에 대한 비판. 복지가 아니라 민주주의다라는 주장. 그 기사를 옮겨 놓고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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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성공 가능성 낮다고 체념할 순 없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얘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더구나 그 얘기가 진실이라면… 틀림없이 그건 ‘불온한 진실’일 것이다. 과격한 진실이나 불편한 진실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숨겨왔던, 그런데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겸 편집인. 그는 이야기한다. 1인 출판에 가까운 방식으로 20년 넘게 해온 그 이야기를 이제는 좀 다르게 하려고 한다. 녹색당 당원으로서…. 먼저 녹색담론의 최전선을 지켜온 녹색평론에 대한 세평 두 마디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책’, ‘다른 건 안 믿어도 녹색평론은 믿는다’, 한 구절로 줄이고 보니 바로 ‘불온한 진실’이다.

그의 앞에 서면 모든 체제와 주의와 사상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정부·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통합당, 심지어 통합진보당, 나아가서 진보신당마저도 근본적으로 아주 잘못된 토대 위에 서있기는 마찬가지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진보진영 최고 원로·석학의 담론도 그의 비판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헤겔을 비롯한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상이나 이론이 아예 ‘구라’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 중 그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불행한 얘기지만…’ 등의 조건절을 몇 차례 붙였다. 불온한 진실을 말하기 위한 그 특유의 어법처럼 들렸다. 마찬가지로 매우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한 번쯤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사상가’라고 강렬하게 표현해보고 싶다. 불온한 진실을 말하는…. 녹색평론 122호 마감과 녹색당 지원 강연 등으로 빡빡한 일정 중이던 그를 지난 1월 4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녹색당에 참여하게 된 이유만 말씀해도 오늘 인터뷰는 다 될 것 같습니다.“그거 하려면 수십 시간 걸리죠. 그냥 기사 쓰기 좋게 어떻게 요령 있게 말하나, 그게 고민인데…. 결정적인 계기는 하승수 변호사나 저나 후쿠시마 사태죠. 시민운동이나 환경운동 차원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대중한테 전달이 안 되고 정치세력화하지 않으면 언론도 주목하지 않으니까 소수라도 국회에 나가서 발언권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는 중요하다, 그리고 녹색당이라는 걸 만들어야 전국에 산재해서 분산적으로 하고 있는 환경운동 내지 풀뿌리 지역운동이 결집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것이죠.”

2~3년 전까지만 해도 녹색당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았습니까.“해봐야 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많았죠. 그 시간에 지역에서 뜻 맞는 사람끼리라도 같이 생태공동체나 지역운동을 일구는 것이 더 보람이 있겠다, 그리고 세월이 가서 그것이 연결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새만금 때도 그랬고 결정적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 4대강이라는 터무니없는 공사를 하면서 난장판을 만들어놨잖아요. 근처에서 지역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다 깨졌고요. 이런 걸 목전에서 보면서 그 방식만 고집한다는 게 공허하잖아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목까지 찼는데 후쿠시마가 탁 터졌단 말이에요.”

그와 녹색평론이 표방해온 것은 생태주의와 소농공동체다.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농업 중심 사회의 재건과 생태적·사회적 위기와 모순의 척결을 말해왔다. 기성 정당의 틀로서는 이런 목표가 성취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진보신당이 현존하고 있는 정당 중에서 가입할 만한 거의 유일한 정당이라고 봅니다. 그런 정당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힘을 키우는 게 낫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진보신당도 결국은 계급정당이잖아요. 계급운동을 통해서 말하자면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인데,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돼요. 바로 산업 발전이에요. 산업노동자 세력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산업이 발전돼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안 할 수 없는 것이죠. 결국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지금의 이 산업시스템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요. 녹색당과는 이슈별로 연대할 수 있겠지만 근본 출발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자칭 ‘녹색당 전임강사’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주로 어떤 강연을 합니까.“녹색당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관계 집회가 많고 저한테 요청도 오고 하니까 그런 얘기를 슬슬 하다가 녹색당이 추진되면서 요즘은 녹색당 얘기를 주로 합니다.”

녹색당의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비관적이죠. 녹색당을 하자고 얘기하면 제 앞에서는 얘기를 안 하지만 사람들이 다 비웃는다는 걸 제가 압니다. 괜찮은 사람들도 그게 되겠느냐, 실현성 없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그 심정 제가 잘 알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잖아요.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꼭 성공한다는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냥 체념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비록 탈핵운동이 환경운동권을 넘어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가 그룹으로 확산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인식 수준으로 볼 때 아직 길이 멀지 않겠습니까.“독일을 보면 녹색당이 성립한 지 30년 걸려서 원자력발전소 폐기 결정을 내렸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30년 걸릴 것이라고 하죠.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한 쪽에서 한 30년 걸려서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쪽에서는 잘 하면 10년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용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원자력 정책에서 독일과 일본이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역사적 배경을 분석한 뒤 한국의 미래를 나름대로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68혁명 세대가 시민운동을 하고 녹색당 운동을 해서 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었어요. 일본은 (원자력 사고의) 당사자로서 저렇게 세계에 대해서 테러를 가해놓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하겠다고 하잖아요. 그건 일본의 68세대가 대기업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주류가 제도권에 흡수돼버리니까 남은 소수가 대중과 고립돼 적군파처럼 아주 과격한 쪽으로 나가 완전히 사멸해버린 거죠. 그게 결정적 차이죠. 그러니까 독일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체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더듬거리다가도 불이 붙으면 속도가 빠르잖아요. 절망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님과 녹색평론이 중시해온 농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위기에 처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합니까.“제가 뭐 정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문제 제기는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서 쿠바와 북한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나겠습니까. 기후 탓만이 아닙니다. 카스트로는 농서를 100권 이상 읽은 사람이에요.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1차 산업, 말하자면 농업이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소련에서 밀을 국제 시세 이하로 아주 싸게 제공해주는데도 그렇게 간 거죠. 물론 쿠바도 순탄하지는 않지만 어떻든 세계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노선의 하나를 보여준 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거기서 한국 사회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생공락의 가난,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지향하고 성장을 그만 하자고 하면 대중이 받아들이겠습니까.“제 얘기가 그거예요. 당위성이나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그런 세월이 온다는 거죠. 그것도 당장…. 50년 후, 100년 후가 아니고 10년 안에 옵니다. 준비를 안 하면 북한이 1990년대 당했던, 대거 굶어죽는 사태가 일어나는 거죠.”

백낙청 교수의 ‘적당한 성장론’이나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 강화론’ 등에 대해서 굉장히 논쟁적인 반론을 제기한 것도 그래서였군요.“그분들이 저와 거리가 없는 대가들이죠. 기본적으로 화석연료 시대가 끝난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기존의 정당정치는 한마디로 자기가 속하고 있는 계층이나 계급의 이익에 따라서 국가 예산을 배분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논쟁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앞으로 경제성장이 안 되면요, 그렇게 갈라먹을 국가 예산이 없습니다. 지난 200년 내지 300년 동안 이른바 근대 정당정치를 뒷받침했던 경제·사회구조가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사회과학자들이 서로 논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닌 거죠.”

백 교수와의 논쟁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경제성장을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적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백 교수의 ‘적당한 경제성장론’이다. 그는 이게 책상머리의 말장난이자 그야말로 형용모순(가령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경제성장은…(웃음)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적당한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글쎄 백 선생님은 제 스승이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생각하는 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라고 버릇없이 말하기는 그렇지만 진짜 자본주의, 산업주의 논리를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싶어요. 폭삭 망하든지 아니면 그냥 미친 듯이 가든지 둘 중 하나죠. 백 선생님은 화낼 이야기지만 이중과제라는 것도 그래요. 근대 적응과 극복? 자본주의를 어떻게 긍정하면서 또 어떻게 극복합니까. 혼신을 다해가지고 극복하려 해도 잘 안 되는데…. 어차피 지금 자본주의 방법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그걸 수용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게 무슨 가치 있는 것이라고 수용입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지….”

4월 총선에서 녹색당이 어떤 공약을 내걸었으면 합니까.“구질구질한 공약 많이 내걸 필요 없어요. 확실한 것 한두 가지만 내걸자고 제안했습니다. 채택될지는 모르지만…. 첫째 농민에게 한 달 100만원 기본 소득을 주는 것이에요. 그게 농업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지금 귀농 희망자가 의외로 많아요. 현재 국가 예산으로도 충분해요. 정부에서 FTA 농업대책이라고 설정한 돈 있잖아요. 그게 순전히 속임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실제로 집행할 돈이 대부분 대농 지원, 도로 등 시설 건설, 말하자만 토건업자 주머니에 다 들어간다고요. 그 돈으로 농민들 월급 주라는 말이에요.”

이른바 ‘기본소득제’에 더해 그가 제안하는 또 하나의 정책은 ‘은행의 공공화’다. 돈이란 건 공공재 중에서도 공공재로서 은행이 올리는 막대한 수익은 그 지역과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개념에 바탕한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주립은행을 운영하면서 재정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노스다코타 주의 예를 들었다.

“노스다코타 주립은행에 자극받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여러 주에서 시민단체들이 주립은행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도 여기에 힌트를 받은 거예요. 왜 이렇게 (금융을) 민간업자한테 맡기냐는 말이에요. 단 몇 개라도 공립화하자, 공립화 안 하면 사회화하자, 중앙정부가 못 받아들인다면 예를 들어서 경상남도나 강원도 같은 곳에서 실험적으로 보여주자, 이런 아이디어를 녹색당을 통해 실현해보려고 해요. 기존 정당에서는 생각도 못 하는 것이죠. 기득권층하고 결탁이 돼 있는 문제잖아요. 저는 진보정당에서조차 못 꺼낼 거라고 생각해요. 노사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기성 정당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그 구조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아이디어는 ‘추첨민주주의’로 이어진다. 그는 현행 국회의원 지역구 제도는 국가 예산을 왜곡시키고 국가 차원의 합리적 결정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완전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 비례대표 선출이나 검찰총장, 대학 총장 등도 선거제와 추첨제, 경우에 따라서는 임명제 등을 병행할 것을 제안했다.

올해 선거가 참 중요할 텐데, <주간경향> 독자와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우선 정권 바꿔야죠. 그리고 요즘 복지 얘기하는 것,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복지는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번에 어설프게 하다가 정권 빼앗기니까 이번에 후회해서 마치 복지가 시대정신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거 아닙니다. 복지는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복지 소리 그만 하고 민주주의 얘기를 더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철저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자, 이 이상의 시대정신이 없다고 생각해요. 강자가 약자를 털어먹는 사회를 지양하자,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한다, 이 이야기를 철두철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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