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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백범이 꿈꾸는 나라 높은 문화의 힘·2

'백범이 꿈꾸는 나라―높은 문화의 힘'의 두 번째 대담 대상자는 도정일(71) 경희대 문과대학 영어학부 명예교수이다.

도 교수는 교육자로서 활동 외에도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에 '기본권으로서의 문화'를 확립시키기 위해 매진해 왔다. 한국영상문화학회 공동대표,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 대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활동중이다. 대담은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이 맡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실에서 도 명예교수와 이 본부장은 우리 사회에서 문화의 역할과 오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등을 화두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현대사회 수많은 이해관계 엇갈려
구성원간 '공통의 마당' 찾지 못해
민주주의가 해결못한 과제로 남아"

"대선 후보들, '포럼·플랫폼' 구성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가치 인정
시민사회와 제휴한 정책 펼쳐야"

이현식 본부장(이하 이) : 문화연대 대표를 비롯해 문화와 관련한 여러가지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재임중이다. 또한 문화평론가이자 이론가로도 활동했다. 문화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달라.

도정일 명예교수(이하 도) : 현재 대선을 앞두고 세 후보의 캠프측에선 소통, 공감, 화해라는 세 단어를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소통이란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소통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조건들 중에서도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

문화의 첫 역할은 공유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가치일 것이다. 소통을 하려면 공통의 마당, 공유하려는 게 있어야 한다. 공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가치의 공유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가장 큰 딜레마는 각자 다른 이해관계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의 강화이다.

이 같은 사회속에서 어느 국가도 인간의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천 갈래 이해관계의 상충속에서 서로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문화는 공유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한 사회가 풍비박산이 나지 않고 어떤 형태의 유대와 결속을 이뤄 나가자면 공통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통의 마당에서 공통의 가치를 찾고 확인하고 인정해야 하지만 못하고 있다. 문화는 공감·결속의 영역이다. 즉, 공동체적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문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 : 결국 서로간의 이익이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유대와 결속을 추구하려면 가치 의미를 공유해야 하는데, 이 모든 부분이 문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교수님은 후마니타스 칼리지대학장이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앞서 언급한 '문화의 역할' 부분과도 의미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도 :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경희대 교양대학이다. 대학생에게 기본적인 교육과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활동할 때 필요한 것은 뭘까, 어떤 능력이 요구되나, 이런 고민에서 특별한 목표와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대학은 공통으로 배우면서 확인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등 대학이 반드시 가르쳐야 할 부분이 있다. 강제하는 것은 아니며, 교수는 학생과 함께 공부하면서 생각할 권리를 학생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수백개의 과목을 백화점 상품처럼 진열해 놓고, 선택해서 수강하라는 작금의 교양과목은 문제있다. 대학생이라면 대학에 들어와서 반드시 만나야 하는 질문이 있다. 자기가 해답을 추구하기 위해 4년간 혹은 평생동안 추구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학교육에서 가치에 관한 교육과 삶의 의욕에 대한 교육, 목적의 교육은 포기된 것과 다름없다. 취업·전공교육, 실용교육만이 있을 뿐이다.

이 것에만 신경쓰다 보니 대학 교육은 본질과 목적을 망각했다. 일례로 '나는 왜 지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와 같은 고귀한 인문학적 질문을 대학이 포기함으로써 졸업 후 학생들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현 대학생들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가 젊은이의 가치관을 완전히 지배해버리는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중요한 삶의 목표는 내가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일탈하거나 문제가 제기돼 자신과 사회 모두 망가트린다. 이런 교육적 부분에서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이 :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도구화된 지식과 스펙 쌓기에만 매몰되다 보니 보다 근원적인 삶의 질문을 잊어버렸다. 이제 화제를 바꿔서 문화헌장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2006년에 공표한 '문화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당시 문화헌장을 제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도 : 시민사회단체들이 발의한 문화헌장은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살아가는 사회가 아닌 그 이상의 사회를 만들려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발의했다. 문화 하면 대다수 정치인들은 "좋지요" 하면서도 먹고사는 것 다음으로 치부한다. 문화는 그렇지 않다.

삶의 활동과 운영에 있어서 기본이자 토대다. 이런 풍토를 만드는 활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제정을 준비하면서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했다. 2006년 5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선포식을 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냐 하면 헌장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사람들 자체가 문화를 모른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은 없이 자신과 장르 이기주의 등 자신들에게 어떤 떡고물이 떨어질까 하는 고민만 했다. 아직도 우리는 사회적 토론과 협의를 통해 문화헌장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실망했다. 만들어진 텍스트들은 가장 기본적인 확인 문서로, 채택 공표했다.

이 : 현재 대선 국면과도 연관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아직까지 대선주자들의 구체적 정책과 공약은 나오지 않고 있다.

도 : 대선 후보는 문화가 산업 이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현 정권은 문화를 시장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지금 문화와 시장은 별 차이 없다. 문화로 돈 벌 수 있고, 시장 활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문화에 존재한다. 시장화할 수 없고 팔아먹을 수 없는 것이 문화속에 있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문화는 시장 논리나 시장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이 같은 정신 위에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 요즘 경제민주화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문화 영역에선 올해 대선의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봐야 할까.

도 : 문화는 시민 생활에 품위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그 조건 위에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게 문화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시민들이 지향해야 한다. 특수한 영역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대다수의 영역 전반에 깔려 있는 게 문화다.

정부는 환경이나 녹색정책을 펼 때에도 기술과 산업을 연계시킨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각각이 자기가 사는 자연 조건과 생태 체계 속에서 각자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알게 하는 정책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부와 시민사회의 제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 윤리인 것이다. 윤리는 곧 문화다. '나무 없이는 인간도 없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등을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현 시대에선 자신만 생각한다.

우리 이웃에 대한 공생의 관점에서 '저 이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시선을 갖게 될 때 윤리가 사람들의 삶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힘이 된다. 누가 이런 윤리 감각의 사회적 확산을 도울 수 있을까. 정부 힘만으로는 안 된다. 시민사회까지 제휴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에게 우리가 어떤 절차로 정책을 제시할까. 포럼과 플랫폼 등을 만들자. 이렇게 해서 서로가 문화에 대한 생각을 확인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완전히 망가졌다. 공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이 망가졌다는 것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입시 위주의 교육,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로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교육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한 아이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간은 쏙 빠지고 성적만 남았다. 친구도 날아가 버렸다. 친구는 넘어서야 할 대상일 뿐이다. 가치라는 것은 날아가고, 경쟁과 성공만 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병든 사회의 특징이다.

이런 것을 대선 후보들은 모른다. 급한 일은 아니며, 정치적으로 정책을 세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근본적으로 교육문제를 뜯어고쳐야 한다. 잘못된 문화를 제대로 된 문화로 고치는 일이다.

이 : 환경, 교육을 예로 설명했는데, 문화는 어떤 특정 영역이라기보다 정치, 경제, 환경, 교육 다양한 분야의 근본이며, 이런 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게 문화다.

도 : 운동장이 꺼졌는데, 그 위에서 뛰려야 뛸 수 없다. 현재 우리 문화는 시장과 매체에 좌우되는 오락 위주다. 이 같은 부분도 필요하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 등을 깊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더욱 절실하다. 정치권과 시민 모두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정리/김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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