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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2012 출판계 “올해가 최악이었다.”


온라인 판매시장 찬바람·출판진흥원장 낙하산 파행…“최악의 해” 
2012 출판계
“올해가 최악이었다.” 

2012년 출판업계 사정을 출판인들은 이 한마디로 압축했다. 서점을 비롯한 기존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유독 올해가 더 힘들었다는 얘기다. 일부 선전한 출판사들이 없진 않으나 그런 출판사 관계자들조차 올해 업계 전반의 사정이 ‘사상 최악’이라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 온라인 서점도 비껴가지 못한 불황 한국출판인회의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벌인 유통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8월까지 출판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신간 발행 종수도 올해 상반기에만 11%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시장점유율 35%를 넘기며 기세를 올렸던 온라인서점의 올해 상반기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 정도 줄었다. 특히 4개 대형 온라인서점들은 지난해에 도서판매 수익률이 ‘제로’(0%)로 내려가더니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1997년 온라인서점이 등장한 뒤 처음 겪는 일이다.

업계 5위의 매출액을 자랑하던 또 하나의 대형 온라인서점 대교리브로 폐점도 업계 전반의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교리브로는 올해 3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7% 줄고, 영업이익은 37.7%나 격감한 끝에, 결국 지난달 문을 닫겠다고 출판사들에 통보했다. 온라인서점들은 격심해진 과당경쟁 끝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태료가 부과됐고, 특정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고 ‘화제의 신간’ 등 독자 눈에 잘 띄는 사이트에 책들을 소개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책 판매로 크게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된 출판사들이 직접 독자와 만나 책을 직거래하는 북카페를 여기저기 개설한 것도 또다른 불황기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온라인서점 첫 마이너스 성장
시장점유율 35%로 승승장구하다
상반기 매출 지난해보다 5% 감소
서점도 8년간 전국서 29.3% 폐점


■ 절박한 위기 처한 출판생태계 대형 책 도매상들도 잇따라 무너졌다. 한때 업계 4위였던 35년 역사의 학원서적이 8월 문을 닫았다. 학원서적 쪽이 밝힌 이유는 “최근 출판계 침체와 온라인서점의 책값 할인 등으로 누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대출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학원서적 폐업은 출판사-도매서적상-소매서점으로 이어지는 기존 출판시장의 유통 구조가 사실상 무너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지켜지지 않고, 온라인 서점의 할인이 남발되는 한 이런 사태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지난 1월엔 대형 도서 총판 수송사가, 4월엔 체인형 서점 지에스(GS)북이 부도를 냈다.

부산 서면의 동보서적 본점, 문우당, 성안길문고, 영등포문고 등 수십년 역사의 지역 유명 서점들도 지난해부터 비슷한 처지에 몰리거나 문을 닫았다. 이런 지표들은 누적적이며 가속적인 추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한국출판인회의와 문화부 조사를 다시 인용하면, 책 판매부수가 2010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8.5% 줄었고, 2011년에는 2010년에 비해 또 7.8% 줄었다. 그러니까 올 상반기 11% 이상 감소 추산치는 이런 누적 감소추세의 연장선상에 있고, 상황은 점점 더 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실적이 있는 출판사 전수조사 결과(총 4011개사 중 504곳이 응답)를 보면, ‘전년 대비 매출액 감소’를 기록한 출판사가 전체의 40%에 이른다. 이 출판사들의 매출액 감소율은 평균 27.3%였다. 신간 판매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감소폭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서점들의 총판매에서 차지하는 신간 서적 판매 비중도 2007년 56.7%였다가 지난해에는 38.7%로 줄었다.


출범식도 못치른 출판진흥원
출판계 10년 숙원사업이었지만
초대원장 낙하산 인사에 분노
1인시위 나서는 등 재검토 요구


■ 관건은 완전 도서정가제다
신간 발행 종수는 단행본의 경우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 23%가 줄었다. 교보문고의 경우 신간 판매 비중은 2011년 39.7%였고 올해엔 더 줄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11월13일 현재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판매중인 국내서 재고도서 약 43만종 가운데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 도서는 12.8%에 불과했다. 매겨진 정가대로 파는 책이 광화문점 판매도서 10권 가운데 1권꼴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제도를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예외들이 허용되는 현행 도서정가제 자체의 한계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있으나마나 한, 오히려 할인판매촉진제라는 비아냥을 듣는 부실한 도서정가제 시스템이 전면적 출판 위기의 심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게 출판인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최우선 요구사항은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신간 도서의 경우 정가의 19%까지 할인할 수 있고, 실용서와 초등 학습참고서, 국가·공공기관 구입도서, 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 등은 무제한 할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현행 제도로는 팔리는 책 위주의 지나친 가격할인 경쟁을 유발하고 출판 다양성을 훼손해 결국 책과 출판사와 서점들을 죽이고 저술가들을 고사시킨다는 게 출판인들의 주장이다. 다양한 책들이 죽고, 할인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받으려는 출판사들이 책값을 인상하고, 도서관이 싸구려 책들 보관소로 전락하게 되면, 최종소비자인 시민들이 결국 최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출판시장을 연구해온 이길호 프랑스 파리10대학 교수(사회학)는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에서는 동네서점들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확고한 도서정가제를 고수해온 정부 정책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급한 출판·지식인 움직임
‘책읽는 나라 연대회의’ 결성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시와
공공도서관 3천개 신설 촉구


■ 낙하산은 안돼! 출판계가 뭉쳤다
7월27일 출범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은 초대 원장의 정실 낙하산 인사로 출판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출범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이에 맞서 출판계 양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와 출판인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출판문화살리기 비상대책위라는 공동기구까지 만들었다. 두 단체 소속 출판인들은 7월 이래 지금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계속하면서 이재호 초대 원장의 퇴진과 기구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출판계의 분노와 저항이 격렬했던 건 전례 없이 어려운 출판계의 현실에서 예년과는 또다른 위기의식이 작용했으리란 게 중론이다. 진흥원 설립을 이런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삼고자 10여년 전부터 준비작업을 해 온 출판계는 그동안의 노력들이 자신들을 소외시킨 낙하산 인사라는 ‘정치적 흥정’으로 무산됐다고 보고, 한목소리로 문화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다. 진흥원 초대원장이 출판계에 기여한 최대 공로는 출판계가 처음으로 내부 이견과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로 뭉치게 해준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왔다.

출판계는 진흥원장 낙하산 인사를 전면 도서정가제 실시 요구에 대한 정부 쪽의 전면 거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재호 초대 원장은 책이 공공재라는 출판계 쪽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일반 상품과 다름없는 교환재여서 자유경쟁과 할인제가 보장돼야 한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출판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 서점이 없는 나라,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 나라
책 발행 종수와 부수, 신간 판매가 줄면 당연히 서점도 어려워진다. 최근 8년 동안 전국 서점 수는 29.3%나 줄었다. 책방 3분의 1이 문을 닫은 것이다. 1994년에 5683곳이던 서점은 2003년엔 그 절반 이하인 2247곳으로, 2011년엔 다시 1752곳으로 줄었다. 전국 3468개의 읍·면·동 수로 평균하면 2개 읍·면·동에 서점 1개가 있는 셈이 된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몇년 안에 서점이 사실상 전멸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서점이 문을 닫는 것은 수익보다 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남아 있는 서점들도 대부분 사정이 열악하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형 서점들조차 2010년 이후엔 성장세를 멈췄고, 중소형 서점들은 2010년 이후 연 8% 이상의 매출액 절대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서점수는 한국이 4.9개, 일본은 14.2개, 이 기구에 가입한 나라들의 전체 평균은 8개 정도다. 동네서점이 사라지면 마을 단위 공공도서관이 그 빈자리를 메워줘야 한다. 미국 등 주요 8개국(G8)엔 평균 인구 6000명당 공공도서관이 한곳 이상 있지만 일본은 4만명당 하나, 우리나라는 7만명당 하나꼴이다. 그나마 이명박 정권 들어 도서관 지원예산을 계속 줄여 온 결과로, 전문 사서가 크게 부족하고, 최저가 낙찰식의 도서 구입이 관행화하는 등 도서관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도서관 이용률은 2008년 33.3%에서 지난해에 22.9%로 떨어졌다. 10명 중 8명이 1년 내내 도서관 한 번 가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출판인들은 독서율 하락의 최대 원인으로 선행학습이 유치원으로까지 확산되는 과잉경쟁 풍토를 지목한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시험점수와 무관한 책을 읽을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확연해진 어린이·청소년 도서 시장 정체현상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학부모와 출판·독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이런 악순환은 성인들의 독서율 감소로 귀결된다. 실제로 1994년 86.8%였던 우리나라 국민 독서율(성인)은 지난해 66.8%로 떨어졌다. 국민 10명 중 3~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독서인구의 절대적 감소는 출판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현상 중 하나다.

따라서 올해의 출판·독서계의 전례 없는 위기는 단기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심화될 장기 추세의 한 단면으로 봐야 한다는 게 출판인들의 분석이다. 문화 및 문화산업의 원천 콘텐츠라 할 출판과 책의 쇠퇴는 국가의 장래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급해진 출판인들과 지식계가 공청회를 열고 ‘책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연대회의’까지 결성해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시와 5000억원 출판진흥기금 마련, 도서관 3000개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으나 반향은 나오지 않는다.

한승동 최원형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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