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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김정진 변호사의 [추도사] -이재영을 떠나 보내며


[추도사] 이재영을 떠나 보내며

내가 이재영을 만난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 그는 원외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정책국장이었고, 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일을 하고 싶어 당 주위를 기웃거리는 인사였다. 곡절 끝에 나는 민주노동당에 한 달에 60만원을 받는 것으로 하고 정책부장으로 채용되었다.

이재영은 나의 사수이자 직근 상급자였다. 이재영은 당시 30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그 때도 이미 진보정당운동의 한 역사였다. 노회찬, 주대환, 황광우 등이 만든 진보정치연합의 정책국장이었고,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 내내 정책국장이었다.

원외정당의 정책국장이 무슨 하는 일이 있었을까. 지금은 종북집단 정도로 치부되는 민주노동당이었지만 그 당시 우리가 만들어 낸 모든 정책은 현재 박근혜의 선거 공보물에도, 문재인의 선거 공보물에도 상당부분 실려 있으며 무지막지한 이명박 정부조차 민생 대책이라고 하여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

당시 민중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별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국 다른 정당에서 이를 수용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재영이 만들어낸 진보적 정책과 인재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아무도 없던 시절 진보정당을 지켰다. 3김시대에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진보정치를 위해 진보정치연합을 지켰고, 199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모두가 떠나갔던 국민승리 21을 지켰으며, 그 끈질긴 기다림과 버티기의 결과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진 후에도 민주노동당을 만든 주체들이 별로 그 조직을 지킬 생각이 없었을 때도 민주노동당을 지켰다.

그냥 지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미래를 대비하였다. 그가 만든 인적 관계망은 민주노동당 도약의 시기에 한국 진보정당운동에 전무후무한 50명 정책연구원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을 명실상부한 정책정당으로 만드는데 실질적 기여를 하였다. 그 때 만든 정책이 지금도 거의 모든 진보정당의 정책기반이 되고 있으며, 상당부분은 보수 양당이 대폭 수용하였다.

그는 소위 말해서 세대 상으로는 386이지만 잘 나가는 386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바로 노동현장에 투신하여 노동운동을 하였으며, 비합법정치조직에 가입한 후 이른바 주대환이 신노선을 주창한 이후 진보정당운동에 뛰어들었다.

후일담처럼 스치듯 많은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는 빛도 안 나는 자리에서 20여년 가까이 진보정당의 당위성과 필요성, 현실적인 진보적 정책을 설파하였다. 소련 사회주의 붕괴와 거듭된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실패로 인한 뒷수습은 모두 그의 차지였고, 이사짐을 지고 사무실을 알아보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세부적 정책만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보정당의 역사와 전략, 노선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의 주장과 글에는 진보정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이 되어야만 하는 당위와 그 당위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가 항상 고민되었다. 그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이 아닌 개별 사업장 혹은 대기업 노동자의 이해만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맞섰으며, 가난한 사람의 복리보다는 반미와 통일에만 천착하는 민족주의자들과도 맞섰다. 정당없는 혁명노선 또는 총파업노선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이제 없다. 사멸해가는 진보의 상황은 이재영이 병마와 싸우는 모습과 흡사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삶을 찾아 탈주할 때 그는 계속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이재영의 마지막 길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이재영이 자신을 바쳐 세우고자 했던 이상의 한자락을 같이 부여잡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의 분투가 바쳐진 진보정당은 마치 파우스트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는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이재영과 함께 활동한 10년, 최고로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세월이었고, 그가 남긴 이상의 끝은 나의 심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재영 국장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대의 이상은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지속될 것입니다.

(故)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이 걸어온 길

- 1986년~1989년 : 서울, 성남, 안산 등지에서 공장 노동자 조직 활동
- 1989년~1990년 : ‘사회주의자 그룹’ 대외협력 활동
- 1991년 :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준위 포항 지부 교육선전 담당
- 1992년 : 민중당 경기도당 정책국장, 백기완 선본 경기남부 집행위원장
- 1995년~1996년 : 진보정당추진위, 진보정치연합 정책국장
- 1997년~1999년 : 국민승리21 정책국장
- 2000년~2006년 :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 2006년~2010년 : 레디앙 미디어 기획위원
- 2010년~2011년 :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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