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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지적 자유7--조재순(국립중앙도서관 사서)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대하여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대하여

도서관계 2005년 5월호


1990년대 초반, 한 대학교수의 소설에 대하여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둘러싸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된 적이 있다. 유교적인 사회질서가 와해되면서 성적 개방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잣대로는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작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설의 판매금지와 작가의 구속으로까지 이어졌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 소설을 소장하고 있던 도서관에서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법원의 판결 후 도서관의 태도는 바뀌었을까? 처음부터 사서들의 자료선정 대상목록에서 제외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성인에게만 이용시킨다는 전제 하에 구입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연령층을 불문하고 모든 이용자에게 제공했을지도 모르겠다. 과문한 탓인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도서관에서 커다란 논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우리나라의 도서관이 과연 국민의 알 권리나 지적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도서관에서의 자료이용 제공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없었기 때문에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99년 국제도서관연맹(IFLA)은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관한 성명'을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IFLA는 국제연합에서 규정한 기본권으로서의 지적 자유를 바탕으로 그러한 지적 자유는 도서관과 정보전문가의 기본적인 책임에 속한다고 보고, 도서관과 도서관 직원들은 지적 자유의 원칙, 정보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며 도서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미 1939년에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대한 도서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바로 미국도서관협회(ALA)의 '도서관의 권리선언(Library's Bill of Rights)'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1948년에 전면 개정되어 '도서관의 권리선언(Library Bill of Rights)'으로 공식 채택되었고, 이 선언에 이르러 당파나 교리 상의 반대를 이유로 도서관 장서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물론 일체의 검열에 대한 반대를 구체적으로 표명하게 되었다. 현재, 이를 바탕으로 개정된 1980년의 권리선언에는 도서관 장서 구성의 자유, 자료제공서비스의 자유, 검열 반대, 표현 및 지식획득의 자유에 대한 협력, 이용자에의 평등한 대응과 같은 6가지 기본 방침이 제시되어 있다.

ALA가 1939년에 '도서관의 권리선언'을 채택하게 된 외적 요인은 나치에 의한 대규모 분서(焚書) 때문이었으며, 내적 요인으로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소설 '분노의 포도' 사건과 사회주의 관계자가 공공도서관에서 추방당하는 현실적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분노의 포도'는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나선 한 가족의 이주사로, 당시 보수적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는 이 소설에 공황기 미국 사회의 혁신주의 노동운동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여 자료선정에서 배제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당시 ALA는 이를 명백한 검열행위로 규정하였고 자료선정에 정치적 이념적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러한 사태에 대응, 지적 자유를 옹호하려는 결의를 선언하였던 것이다.

IFLA의 홈페이지는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등 약 10개국을, 자국의 도서관협회에 의해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관한 성명'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로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미국은 '도서관의 권리선언'을 비롯하여 독서의 자유, 청소년의 자유로운 도서관 접근, 인터넷 필터링, 학술도서관을 위한 지적 자유 원칙 등을 천명하였고, 영국은 지적 자유와 검열(1963), 정보접근(1997)에 대한 성명을 공표하였으며, 호주는 독서의 자유(1979 채택, 1985 개정), 뉴질랜드는 정보접근(1978) 및 도서관에서의 검열(1980)에 대한 성명을, 일본은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1954 채택, 1979 개정)을 각각 표명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서관의 지적 자유에 대해 일찍부터 뜨거운 관심을 보인 경우에 속한다. 1948년판 미국의 '도서관의 권리선언'에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1954년에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였을 정도이다. 1979년에 개정된 이 선언의 내용은,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알 자유를 갖는 국민에게 자료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도서관의 지적 자유로서 자료수집의 자유, 자료제공의 자유, 이용자의 비밀 보호, 검열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서관인의 사회적 책무, 자아성장, 전문성, 협력, 봉사, 자료, 품위의 7개조로 이루어진 '도서관인 윤리선언'이 1997년 한국도서관협회에 의해 채택되었다. 여기에는 도서관의 지적 자유라고 명명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국민의 알 권리, 이용자 접근권, 검열 반대 등 도서관의 지적 자유의 핵심 원리가 간접적으로 천명되어 있다.

도서관은 국민의 민주적 기본권리인 알 권리를 보장하는 '사상과 정보의 광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도서관 사서들은 외설적인 성 표현 자료, 이단으로 간주되는 종교서적, 특수 자료로 분류되는 이념서적 등의 자료에 대하여 자료선정 시 또는 제공 시에 어떤 형태로든 간에 이용자의 자유로운 접근에 제한을 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사서들 대부분이 지적 자유에 대해 강력하게 지지를 하고는 있지만, 실제 자료선정 업무 시에는 의식적 또는 잠재적인 자기검열을 하며, 실제의 검열 압력에 당면해서는 지적 자유의 가치를 주장할 만큼 전문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서울시 공공도서관 사서들과의 면접을 통해 이러한 사례를 분석한 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수집 자료에 대한 검열과 관련하여 지적 자유를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내부의 검열자, 즉 사서 자신에 의한 자기검열이라는 일반적 현상과 동일한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인원 삭감과 업무의 외주용역, 비정규직 채용의 확대 등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도서관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을 둘러싼 문제는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도서관 업무의 경험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서들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을 반드시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경력이나 정규직 여부를 떠나 도서관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도서관 직원이라면 도서관 서비스의 실천적 원리로서 도서관의 지적 자유를 바탕으로 업무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사상과 정보의 광장인 제도적 장치로서의 도서관에서 우리 사서들의 사회적 책임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여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대명제를 근간으로 도서관에서의 지적 자유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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