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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구직자들이 뉴욕 중앙도서관으로 몰리는 이유

출처: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277100009

구직자들이 뉴욕 중앙도서관으로 몰리는 이유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뉴욕 중앙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Main Branch)을 찾은 것은 거의 5년 만이다. 최근 읽은 뉴욕타임스의 전시회 비평 기사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열린 ‘왜 어린이의 책이 문제인가?’라는 전시회이다. ‘동화(童話)가 아니라, 동화(動畵) 게임으로 날밤을 새는 21세기형 어린이의 머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회’라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비평이었다. 책을 멀리하기 쉬운 시대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 두면 그 효과가 평생 간다는 얘기도 실려 있다.
   
뉴욕 중앙도서관에 가는 길은 맨해튼 이스트 41번 인도(人道)가 제격이다. 인도 위에 50㎝ 크기의 동판(銅板)이 2m 정도 간격으로 ‘심어져’ 있다. 책 관련 위인들의 명언이 새겨져 있다. “진실은 항상 존재한다. 거짓말이 항상 새롭게 만들어질 뿐이다.”(조지 브라크·George Braque) 중앙도서관은 동판 행렬이 끝나는 마지막 지점에 서 있다. 전체적으로 흰 대리석을 기반으로 한, 네오클래식 스타일의 건물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파리에서 유행한 고대 그리스풍 건물을 원류로 한다. 프랑스어로 보자르양식이라 불리는, 웅장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보자르양식을 대표하는 파리의 오페라극장인 가르니에(Palais Garnier)와 비슷하다.
   
신흥 자본가를 위한 사치스러운 파리 오페라극장과, 이민자들로 넘치는 뉴욕 보통 시민들을 위한 중앙도서관! 수요자를 기준으로 하면 180도 다르다. 예술과 문화를 즐기고 알기 위한 공간, 인간의 품격을 높여주는 시설이란 점에서 보면 똑같다. 공공시설일수록,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찾는 곳일수록, 호화찬란하게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찌든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기에, 한순간에라도 꿈을 주자는 의미에서 대리석과 샹들리에로 도배를 한 공공도서관이 뉴욕 한복판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뉴욕 중앙도서관은 맨해튼의 남북을 달리는 5번가(Fifth Avenue)와, 동서로 놓인 42번 도로에 걸쳐 있다. 맨해튼 한복판이라 보면 된다. 보통 시민의 지적(知的) 창구가 세계 최고의 도시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 주변에 다른 건물은 전혀 없이, 3층짜리 도서관 건물 하나만이 들어서 있다.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인근의 103층 마천루는 중앙도서관이 들어선 이후에 건설된 건물이다.
   
중앙도서관 본관 앞에는 작은 간이 정원이 들어서 있다. 누구나 앉을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설치돼 있다. 대부분 모바일 기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단 한 군데 예외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푯말을 앞세운 테이블이다. 작가인 듯한 40대 남성이 책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가 밖에 나와서 사인회를 하는 건가 싶다.
   

‘CIA 음모론’이란 제목의 책이 테이블 위에 늘어서 있다. 표지의 디자인이 엉성하고 책도 조잡하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까 자비(自費)로 책을 출판한, ‘나도 작가’의 사인회였다. 공짜로 책을 나눠 주면서 중앙도서관에 온 사람들과 대화를 즐긴다. 자비 출판을 통한 ‘나도 작가’의 사인회는 중앙도서관 앞에 가면 항상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다.
   
중앙도서관 로비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아치형 구조로 안정감을 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명상을 하는지 로비를 쳐다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다. 로비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십중팔구 아시아 관광객들이다. 로비는 ‘애스터홀(Astor Hall)’이라고 불린다. 중앙도서관을 사실상 세운 독일계 실업가 존 제이콥 애스터(John Jacob Astor)의 이름을 땄다. 부동산과 가죽공장으로 돈을 번 애스터는 공공도서관 건립에 엄청난 돈을 기부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뉴욕 기부문화의 선구자가 애스터이다. 애스터의 선행은 이후 후손으로 이어진다. 애스터 패밀리는 도서관 외에도 오페라·대학·연극·운동·음악 등 뉴욕 내 거의 모든 문화활동을 지원했다. 최근 애스터 패밀리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브룩스 애스터의 죽음과 함께 과거의 영광도 막을 내리고 있다. 브룩스의 아들 마셜 때문이다. 어머니를 학대하고 2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빼앗은 혐의로 지난 6월, 3년형에 처해졌다. 뉴욕 전체가 애스터 패밀리 스캔들로 들끓은 것은 물론이다. 뉴욕 상류사회 명사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에 버금갈 정도로 크게 다뤄졌다.
   

▲ 2층 인터넷 룸. 직장을 알아보거나 의료보험이나 연금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뉴욕 중앙도서관을 찾은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놀라는 것이 하나 있다. 도서관인데 도대체 책을 찾기가 어렵다. 도서관은 남북으로 긴 구조다. 3층 건물 안에는 크고 작은 홀 수백 개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주제와 연구테마, 연구자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분과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인 공간, 즉 홀을 갖고 있다. 기부자의 이름을 따거나 예술품을 모은 컬렉션 스타일의 홀도 있다. 미국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연구 분과, 희귀본 소장 분과, 유대인 연구 분과, 칼 포르츠하이머(Carl Pforzheimer) 컬렉션 분과, 알베르트 베르그(Albert Berg) 영미문학 컬렉션 분과 등등과 같은 식이다. 관련된 연구나 공부를 원하는 사람은 도서관 사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각각의 분과를 책임지는 도서관 사서는 홀 입구에서 방문객의 요청에 응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영국 웨일스 지방의 시(詩)가 미국 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가정하자. ‘어떤 책과 자료가 좋은가’를 사서와 상의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분과 홀 안에 있는 책들이다. 대출용 레퍼런스(Reference)에 관한 책이 전부이다. 일반 책이나 자료는 도서관 지하에 보관돼 있다. 영미문학 컬렉션 분과에 직접 가서 사서의 도움을 받거나 레퍼런스를 통해 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책의 목록을 찾아낸다. 책을 주문하고 며칠 뒤 분과 사서를 찾아가면 미리 준비돼 있다. 대출창구를 한 군데로 집약한 것이 아니고 분과별로 나눠서 행하는 식이다. 분과 사서와의 대면 접촉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연구와 공부가 가능해진다.
   
도서관 안에 책이 없다는 것은 운영체계가 디지털화돼 있다는 의미이다. 도서관 카드의 번호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책을 미리 주문한다. 어떤 식의 책을 원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분과 사서에게 보내 이메일로 자문을 얻을 수도 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책은 아날로그판만이 아닌 디지털로 된 책도 포함된다. 미국은 전자책이 이미 생활화된 나라이다. 새삼스럽게 전자책을 아날로그책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2년 전 아마존닷컴에서의 전자책 판매량이 아날로그책을 넘어선 상태이다. 이미 갖고 있는 책들을 디지털화하고 새로 구입하는 책을 디지털로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다른 공공도서관과의 관계를 고려해 혼자 독주할 수는 없는 상태지만 기존의 책과 자료의 30% 정도가 디지털체제로 전환됐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공공도서관을 20세기 말 레코드가게나 21세기 이탈리아의 교회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어제의 추억으로 살아갈 뿐이라는 의미다. 한물간 기술과 텅 빈 공간으로 채워진, 아날로그의 화신(化身)이란 의미다. 디지털체제 구축은 그 같은 오명을 떨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기관 PEW는 16세에서 29세까지 미국 청년의 47%가 전자책과 디지털신문이나 디지털잡지를 주기적으로 읽는다고 발표했다. 교회와 레코드가게처럼 노인과 한물간 세대로 붐비는 도서관이 아닌 젊은 청년들로 가득 찬 공간이 되기 위해서도 디지털화가 진작부터 추진돼 왔다.
   
뉴욕 중앙도서관이 자랑하는 디지털 정보요람의 핵은 온라인 목록(Online Catalogs)에 있다. 책이나 자료의 디지털화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책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알아내는 시스템이다. 1972년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크게 보아 3개 분야로 나누어 진행돼 왔다. 먼저
OCLC(Online Computer Library Center)시스템을 통한 목록이다. 미국의 대형 도서관들이 OCLC에 가입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뉴욕 중앙도서관이 주도해서 구축했다. 하버드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고 열람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CATNYP라 불리는 목록 시스템이다. 역시 1972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로, 대학 논문이나 싱크탱크의 리포트 같은 것을 한눈에 찾아낼 수 있다.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박사논문 표절 같은 것도 뉴욕의 CATNYP를 잘 활용하면 한순간에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로 LEO(Library Entrance Online) 시스템이다. 책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몇 명이 대출을 희망하고 있고 언제쯤 손에 들어올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뉴욕 중앙도서관이 주도한 온라인 목록 시스템은 1990년대 등장한 인터넷 운영체제로 흡수됐다. 흔히들 워싱턴의 펜타곤이 인터넷을 창조해낸 요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뉴욕 중앙도서관도 책과 자료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역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 어린이용 도서 전시회장의 내부. 각종 전시회도 활발히 열린다.

중앙도서관의 디지털체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구직 정보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이다. 미국 전체를 기준으로 할 때 2009년 공공도서관을 찾은 시민은 전부 15억90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24억권의 책과 자료를 빌렸다. 미국의 인구가 3억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시민 1명당 평균 8권의 책을 빌린 셈이다. 연 소득 2만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의 경우 책보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공공도서관에 들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장을 구하고, 정부에 복지연금을 신청하거나, 병원 서비스를 받기 위한 신청서 작성을 위해 도서관 인터넷을 이용한다. 뉴욕 중앙도서관 비즈니스 분과는 직장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에서부터 희망월급을 둘러싼 협상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구직자는 직접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를 앞에 둔 채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다. 구직 관련 책이나 자료의 대부분이 디지털화된 것은 물론이다.
   
중앙도서관은 직장 알선만이 아니라 구직자나 청년이 창업에 나설 수 있는 길도 마련하고 있다. ‘뉴욕 스타트업(Startup)’이란 타이틀의 프로그램으로 역시 비즈니스 분과에서 행하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도와주면서 경쟁을 통해 최종 승자로 오른 사람에게는 1만5000달러의 창업자금도 지원한다. 맨해튼 내 다른 공공도서관과 함께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11월 2일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응모자를 모을 계획이다. 도서관이 창업자 육성 대부(代父)로 나선다는 의미이다.
   
당초 뉴욕 중앙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까지는 조금 혼란이 일었다. 뉴욕시 전역에 흩어진 91개 공공도서관의 맏형에 해당하는 곳으로 42번가에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이름이 나와 있다. 스티븐 슈워츠먼 빌딩(Stephen A. Schwarzman Building)이란 타이틀이 통용된다. 같은 주소에 개인용 도서관이 새로 생겼는가 착각할 정도이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은 돈의 위력과 맛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2008년 투자전문회사 블랙스톤(Blackstone)의 CEO 스티븐 슈워츠먼이 중앙도서관에 1억달러를 기부한다. 그 공로로 2009년부터 도서관 이름이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이다. 2억달러 기부자가 나타나면 도서관의 이름은 또 바뀔 것이다.
   
중앙도서관 곳곳에는 사실상의 설립자인 애스터의 흔적과 함께, 돈을 기부한 사람과 기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국 내 웬만한 공공시설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문화와 예술은 엄청난 부(富)를 기반으로 한다. 오해하기 쉬운데 뉴욕 중앙도서관은 정부가 아닌 개인이 만든 시설이다. 공공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개개의 기부자들이 돈을 모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도서관 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식으로 지원금 일부를 제공하고 세제 면에서 특권을 보장하고는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시설이다. 25블록 정도 북쪽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도 마찬가지이다. 운영하기 위해 매년 엄청난 기부금이 필요하다. 월스트리트라는 자본을 창출해내는 ‘돈 공장’이 있기 때문에 뉴욕 중앙도서관 운영이 가능하다.
   
뉴욕 중앙도서관은 1890년대 뉴욕주 주지사인 새뮤얼 틸던(Samuel Tilden)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뉴욕 시민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만들자.” 책을 빌리는 수준의 도서관이 아니라 문화 전체를 고양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틸던의 생각은 이후 21년 뒤인 1911년 5월 23일 결실을 맺는다. 현재의 건물이 뉴욕 시민들에게 문을 연 날이다. 21세기 IT시대를 ‘Free(공짜)의 시대’라 말하는 사람이 많다. 뉴욕은 아날로그 시대이던 19세기 말 무료도서관의 개념을 보편화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그러나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지식의 원천인 도서관은 공짜이다.’ 무료도서관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공짜가 아닌 자유를 지켜내고 확대해 나간다. 뉴욕 중앙도서관은 그같은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미국 정신문화의 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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