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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정의구현사제단


[여적]정의구현사제단
양권모 논설위원

유신독재의 사슬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1974년 9월26일 명동성당.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제도는 정치 질서에 있어서 국가 공동체가 그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치 제도임을 우리는 믿는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그의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내건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를 향한 그 지난하고도 혹독한 도정에서 함께했다. 늘 약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인혁당 사법살인, 김지하 양심선언, 3·1명동선언, 오원춘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광주 5·18민주항쟁,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등. 사제단은 민주가 짓밟히고 정의가 유린될 때마다 온몸으로 독재에 맞섰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고단한 이들의 등불이 되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발악이 피바람을 일으키던 1987년 5월17일 명동성당.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목숨을 걸고 사제의 양심으로 폭로한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은 군부독재의 심장을 쏘는 탄환이 되었고, 불붙은 6월항쟁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리고 2013년, 사제단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천주교 시국선언이 나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외면과 회피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민주주의” 때문이다. 급기야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어제 시국미사를 통해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규탄하고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대통령 사퇴 요구의 ‘적절성’을 두고는 시비와 논란이 많을 터이다. 다만 ‘박정희 독재’의 총칼에 맞서 민주화의 새벽을 연 사제단이 다시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기도하고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 현실. ‘박근혜 시대’의 질곡을 이만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2205519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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