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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7일 목요일

문화생태계 변화와 내면의 문화 / 김병익

[특별기고] 문화생태계 변화와 내면의 문화 / 김병익


김병익 문학평론가

장바닥처럼 떠들썩한 문화 프로그
램은 자본에 수용되고 시장 경쟁으
로 비속해지는 문화의 누추한 내면
을 숨기며 융성해지겠지만, 은근하
며 내성적인 문화에서는 검소한 풍
요와 자유로운 진실이 빚는 아름다
운 사유의 문화가 피어날 것이다.


등록 : 2013.11.07 19:19수정 : 2013.11.07 19:19



































지난봄 싸이가 뉴욕 번화가에서 ‘강남스타일’ 쇼를 벌이는 사진이 신문 1면에 크게 나왔을 때 그 대견스러움에 감탄한 뒤를 이어 곧 내게 돌이켜진 회상은 근 50년 전의 한 선배 기자의 말이었다. 공연예술을 담당한 그 선배는 고급한 전문적 관점으로 대중문화 기사를 쓰는 분인데, “우리 신문에 대중가수 이름 한번 난 적 없다”며 당당하게 자랑했다. 나도 이 말을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기자의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며 당연히 순수 예술만이 고상한 문화라고 여겼다. 하긴 국산 영화는 ‘고무신족’을 위한 것이었고 대중가요는 ‘딴따라’였던 시절이었다. 외국 연주가들의 클래식 공연과 몇몇 극단의 연극만이 신문에서 대접받는 공연예술이었다. 바로 그 고답적이던 신문 1면에 ‘21세기 딴따라’가 대문짝만한 사진으로 실린 것이었다. 바로 그 신문의 말단 기자였던 나는 50년 전의 ‘국민가수’와 오늘의 ‘맨해튼의 싸이’ 사이에서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란, 좀처럼 쓰고 싶지 않은 소감에 젖어야 했다. 정치·경제·사회가 모두 변했는데 문화라고 변하지 않을 리 없고 더구나 오늘의 한국으로 진전하는 데 문화도 크게 기여했는데, 그럼에도 이 사진이 몰고 온 역전된 문화 개념과 그 가치관에 당혹해하며, 새 문화 속으로 투항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 추석에 이어 빨리 온 ‘문화의 달’을 맞으며 우리나라는 온통 문화예술 행사로 뒤덮였다. 도심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공연 전시장은 물론이고 거리와 공원에서 연극·음악·미술 등 이른바 고급 예술만이 아니라 엑스포로부터 축제와 한바탕 놀이판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분야의 별의별 잔치들이 벌어졌다. 이런 전 국민적 문화예술 축제 기간에, 그럼에도 이른바 문화인임을 자부하는 나 자신은 거의 관람·참여하지 않았다. 집 밖으로만 나서면 벌어지는 공원의 이런저런 공연을 구경하지도 않았고 길만 건너면 한창 벌어지던 ‘막걸리축제’에 끼지도 않았다. 이 모든 잔치판을 흥겹게 바라보고 그 놀이마당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소심하게 그 소식을 신문과 텔레비전으로만 읽고 들었다. 그러는 나 자신을 자기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래서 당연했다.
먼저 어느 행사든 구경하러 나서는 데는 노후한 육체의 게으름과 낡은 정서적 취향을 탓해야겠지만 이 개인적인 사정을 넘어 좀더 크게 둘러봐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먼저 그 번다하게 이루어지는 갖가지 문화예술 현장에 약간의 위화감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은 오늘의 문화예술 쪽 탓이 아니라 반세기 전날의 문화예술 감수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콕 짚어 말하자면 한국의 문화생태계가 내가 어울릴 수 없도록 커지고 변화한 것이다. 100달러의 경제 수준이 200배로 늘어나면서 모든 것들이 더불어 커지고 양의 크기에 따라 질도 변하듯 그 생태도 변할 것은 당연했는데 나는 그 변하는 세계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멋진 건축, 화사한 패션, 예쁜 음식들 앞에 서면 너무 큰 구호품 옷을 입어 주눅든 아이처럼 처신할 바 몰라 어색해진 나 자신이 자꾸 보이는 것이다.
내가 여러 예술의 공연 전시를 가보았다 하더라도 그런 낯섦을 못 벗었을 것이다. 오늘의 예술은 내 젊은 시절에 익혀온 양식들을 훌쩍 벗어나 몇 계단 뛰어올랐다. 50년 전에는 국악과 양악의 합주는 어울리지 못했고 지금 가장 역동적인 공연 장르인 뮤지컬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는 미국 것이었으며 어설픈 피아노 해프닝으로 보았을망정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로 기존 예술 개념을 혁신하리라곤 짐작도 못 했다. 식민시대로부터 전수된 서양 클래식만 음악으로, 서구 문학만 교양으로 받아들인 세대가 오늘날에도 익숙해하며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짚어볼 만큼 우리의 문화예술 세계는 변모했다. 문화부가 창설되고 문예지원 정책도 창작자로부터 수용자 쪽으로 비중을 옮기며 시민들의 참여도도 매우 높아져 문화복지가 증진되고 참여문화로 진전하며 문화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문화 속에서 성숙하고 있다. ‘바보상자’ 텔레비전은 가장 중요한 정보-오락-예술 미디어가 되고 인터넷의 웹, 유튜브, 스마트 기기가 컴퓨터그래픽(CG), 음원 등 새로운 창작과 미디어의 세계를 열어준다. 불과 50년 동안 우리 문화는 기성 장르와 새 기법들이 뒤섞이고 전통과 전위가 어울리며 자연이 첨단과 만나고 각가지 장르들이 겹치고 뛰어넘으며 해체와 융합으로 범벅되고 있다. 시위나 교통에도 문화란 말이 붙고 옷과 음식도 예술이 되며 세계가 서울로, 변방이 글로벌로 교합하여 예술 개념 자체, 그 너비와 형태 등 모두가 변하고 확장되어 문화예술은 ‘진흥’에서 ‘융성’으로 비약한다.
모두가 예술을 즐기며 어떤 것도 ‘문화’란 이름을 얻는 가운데 문화예술은 대중화가 주류로 주도하고 창조와 상상의 자질들은 관과 기업, 혹은 메세나 지원으로 앞세대는 감히 예상도 못할 만큼 발랄하게 발휘되고 그 의식은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이런 중에 어느새 우리 문화예술은 의외로 보일 만큼 팽창하여 가장 높은 세계 수준 반열에 비약했다. 다른 글에서도 인용한,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남녀 성악 동반 1위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오페라단이 제일 많은(100여개) 나라는? 뮤지컬을 가장 많이(300여편) 생산하는 나라는? 문학잡지가 제일 많은(300여종) 나라는? 위 질문의 정답은 모두 한국이다”(조동성, <동아일보> 2012년 6월22일치)라는, 후진국 시대 지식인으로는 도대체 믿기지 않는 문화적 성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그런 문화예술 앞에서 오히려 왜소하고 수줍어져야 했다. 이런 문화 사회의 융성을 바랐고 그런 예술 생태로의 지향을 희망해왔는데, 어이없어라, 이 휘황한 계절에, 나는 작고 문인을 추모하는 몇 자리에 참여한 것 외에는 집안에 박혀 책 몇 권만 읽었다.
그중 이처럼 문화적 성황을 이루는 한국을 외국인은 어떻게 볼까 궁금해서 든 것이 페스트라이쉬라는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과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다니엘 튜더가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였다. 한국의 월드컵 경기 때 ‘붉은악마’들의 함성에 매혹당해 친한파가 된 두 젊은 지식인의 한국관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지만 반세기 만에 소말리아 같은 최빈국 수준에서 선진국 대열에 오른 ‘한국의 기적’에 함께 감탄했고, 그 ‘압축성장’으로 빚어진 심리적 억압감에서 벗어나기를 권하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페스트 라이쉬는 ‘선비’의 유산을 되살려 일본의 ‘사무라이’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상을 우리 문화전통의 아이콘으로 구현하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튜더는 한국인이 기적을 얻으면서 행복감을 잃었다고 섭섭해하며 이제 그만 “편히 앉아 샴페인을” 마시자고 제언한다. 그 샴페인은 성취의 자축이 아니라 긴장을 풀고 여유를 즐기며 “손에 움켜쥔 것 너머의 행복과 만족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의 우정 어린 권고를 ‘내면의 문화’를 바라는 심증으로 읽는다. ‘선비’로서 검소하고 유식하면서 고결한 인간들이 술잔 기울이며 마음속 깊은 정신으로 자유롭게 세계와 삶에 관해 토의하는 장면은 스티븐 굴드가 “파리가 되어 엿듣고 싶은 자리”라고 부러워한 성찰과 모색의 진지한 담소의 모습일 것이다. 장바닥처럼 떠들썩한 문화 프로그램은 자본에 수용되고 시장 경쟁으로 비속해지는 문화의 누추한 내면을 숨기며 융성해지겠지만, 은근하며 내성적인 문화에서는 검소한 풍요와 자유로운 진실이 빚는 아름다운 사유의 문화가 피어날 것이다. 나는 이 가을에 “빛나되 번쩍이지 않는”(光而不耀) 문화 생태를 꿈꾼 듯하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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