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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마포스캔들]새해, 더 많이 불편하고 아파하시라

"가난한 선비의 빈손으로 오십시오.”

길담서원 서원지기 박성준 선생이 얼마 전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다. 1월10일, 새로 이사한 옥인동 길담서원에서 집들이를 한단다. 집들이에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초청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도 연다고 한다. 오로지 개발과 성장만 좇던 이 땅에서 자발적 가난을 역설해 온 김종철 선생은 좋은 삶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까.

길담서원은 책방과 찻집, 음악과 미술이 있는 공부와 문화 공간이다. 청소년 인문학교실, 철학 공방, 바느질 인문학, 책읽기,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원서 읽기 등 여러 공부 모임이 열린다. 작은 음악회와 전시회, 강연회도 개최된다. 2008년 문을 연 통인동 길담서원이 이사를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몇 달 전 늦여름이었다. 지하철 경복궁역 주변 서촌의 상권이 활성화하면서 임대료가 폭등하자 건물주가 아예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길담서원으로서는 위기였지만 머잖아 이는 변화와 도약의 계기가 됐다. 새집 찾기에서 이사와 집 꾸미기, 비품 구입 등의 모든 과정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면서 손님이었던 이들이 명실상부한 주인으로 바뀌었다. 집 꾸미기에 필요한 비용도 이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해결했다. 대부분 5만원에서 10만원의 많지 않은 돈을 냈지만 100만원이나 200만원, 500만원을 낸 사람도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개발·성장만 좇던 우리
불편을 받아들여야 가능


덕분에 40명도 들어가기 힘들던 책방 겸 메인 홀은 8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커졌다. 하나뿐이던 공부방도 3개로 늘어났다. 집을 이리 번듯하게 꾸며 놓았으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 것도 당연하다. 서원지기가 내놓은 기획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서당(書堂)이다. 훈장이 있는 서당에서 서생들은 철학과 글쓰기, 한문, 프랑스어, 역사 등을 필수로 공부하되, 암송과 체득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 공부법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1인1책 쓰기를 목표로 글쓰기 학교를 만들겠다는 꿈도 야무지다. 기왕 진행 중인 여러 공부 모임도 더 활발해질 것이 분명하다.

새해맞이에 분주한 건 길담서원뿐 아니다. 마포구 서교동의 다중지성의정원은 새해 첫 학기 강좌와 세미나를 가을 학기보다 배 가까이 늘렸다. 남산강학원도 매주 두 차례씩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대중지성 프로젝트를 비롯해 청년 인문학 캠프와 고전읽기 강좌 등을 잇달아 시작한다. 푸른역사아카데미, 철학아카데미, 수유너머N, 참여연대아카데미느티나무 등에서도 새 강좌 소식이 속속 전해진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새해 새롭게 시작하는 강좌, 세미나도 스무 개가 훨씬 넘는다. 이 중 상당수는 대안 대학원인 파이데이아 대학원 커리큘럼으로 생긴 강좌지만 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책읽기와 철학 입문 프로그램도 있다. 문화 예술 강좌와 인문 외국어 강좌, 라틴어, 희랍어로 경전읽기 모임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기왕 진행 중인 강좌, 세미나까지 합치면 매일 10개 이상의 공부 모임이 열리는 셈이다.

새 강좌, 세미나가 생기면서 새로운 얼굴도 늘어나고 있다. 홈스쿨링을 하는 10대에서 대학생, 대학원생, 주부, 정년퇴임하는 언론인, 해당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70대 노학자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이미 단행본을 몇 권 낸 중견 비평가가 있는가 하면 인문학엔 문외한인 의사도 있다. 이 척박한 시대, 이들이 나이와 직업과 계층을 넘어 함께 공부하는 도반이 되었다는 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깝다. 공동체의 인터넷 카페에서 개강을 앞둔 강좌와 세미나의 공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글귀 하나가 들어온다.

“시는 어차피 무용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가 불모의 세계에 유용한 결과물을 내놓는 식으로 세상과 거짓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모의 세계가 지닌 불모성을 ‘무용한’ 예술적 형식으로 드러내는 정직한 시적 자의식을 강인하게 견지하는 일이다.”

공동체에서 시 창작 교실을 여는 젊은 시인이 어느 비평가의 글을 빌려 쓴 강의 취지 중 일부다. 그렇다면 인문학도 무용한 것? 그럴지도 모른다. 시가 그렇듯이 인문학에서도 중요한 것은 불모의 세계에 유용한 결과물을 내놓겠다며 세상과 거짓 화해하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인문학, 표심 관리용 지자체 인문학, 기업형 인간의 자기계발 인문학에 편승해 인문학도 밥이 된다고 억지를 쓰는 것도 아니다. 불모의 세계가 지닌 불모성을 드러내는 정직한 자의식을 강인하게 견지하는 일, 시인이 밑줄을 그은 이 불온함이야말로 작금의 인문학 공부에서 새겨야 할, 핵심 경구에 가깝다.

어렵사리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강좌를 열어 이른바 진보의 역설, 자유의 역설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를 이야기한 한나 아렌트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정직하게 대면하기 위함이다. 참여자 수가 많지 않아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반 일리치 읽기도 이와 거리가 멀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 운운하며 자기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해온 우리에게 진실은 불편하고 아프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며 느끼는 아픔 없이 다른 세상 꿈꾸기는 가능하지 않다. 김종철 선생이 길담서원에서 이야기할 좋은 삶이란 것도 결국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더 많이 불편하고 아파하라는 말과도 통한다.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29204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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