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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민주주의 퇴행, 어디까지 갈 것인가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프레시안>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노동사회>는 지난 19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노동 문제를 진단하는 좌담회를 주최하였습니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강정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 김동춘 성공회대사회과학부 교수, 배규식 노동연구원 본부장,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프레시안>은 좌담회 주요 내용을 전합니다. 좌담회 전문은 <노동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174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이원보: 지난 대선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민 대통합을 내세웠다.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가 정체되었단 사실을 드러낸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김동춘: 한국은 지난 자유민주주의 정권 10년 동안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정권은 신자유주의 시기와 맞물려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한 시기였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려 이 시기는 대중들에게 더 부정적으로 각인돼 있다.

반작용 역시 강한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선 1960~70년대 신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레이건 정부부터 부시 정부까지 일련의 보수화 흐름이 생겨났다.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와 보수화 흐름 역시 지난 10년의 민주화에 대한 역작용, 혹은 반동의 측면이라고 본다.

어떤 면에선 파시즘이 대두하고 전쟁이 발발했던 1929년 대공황 이후와 유사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일상화된 공황은 양극화 사회에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키웠고, 이들로 하여금 보수 세력이나 혹은 유사 파시즘 세력을 지지하게 하였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민주화 퇴행 시기다. 민주주의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던 가설들이 무너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이것이 한 국면적인 것이라기 보다 유사 파시즘 형태과 같은 구조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대중적 측면을 가진 것은 아니라, 과거와 같은 파시즘은 아니지만 유사 전체주의적 성격이 있다. 국가·당·사회가 일체화하는 것을 전체주의라고 한다. 한국은 국가와 당이 거의 일치되었고, 언론·시민 사회까지 통제해 들어가고 있다.

강정구: 한국은 정보화 초강국 사회다. 바로 그런 정보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민주주의 제약이 이번 국정원의 대선 및 정치 개입 사건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한국뿐 아니라 모든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 수집 기구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정보통제위원회' 같은 것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활발히 정보가 유통된다고 해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다.

정태인: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모두 성공한 나라인 것은 맞다. 이런 성공 원인은 지주 계급 소멸과 교육열이었다. 불완전했다고 하나 농지 개혁이 있었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지주 계급이 소멸했다. 그리고 이들이 산업과 금융을 다 소유했던 틀도 깨졌다. 자녀가 공부만 잘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여기에서 생겼다.

그런데 지금은 두 개 모두 깨진 상황이다. 과거의 지주 계급과 달리 지금의 재벌은 땅과 돈을 모두 가지고 있어 정치까지 지배하는 힘 역시 공고히 가지고 있다. 교육열은 살아있지만, 이제 교육은 신분 상승의 통로가 아니라, 신분 상승을 막는 벽이 되었다. 그만큼 재벌과 경제 관료, '조중동'이 중심이 되는 지배 동맹이 굉장히 강해진 한편, 반대쪽에서 이들을 저지할 힘은 상당히 약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계속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는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가 세계의 경제 성장을 이끌 테고, 동아시아의 모델이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런데중국은 일당 독재로 시민사회 세력이 없으니 새 모델을 제시할 수 없고, 일본은 너무 노쇠한 데다 너무 미국 체제에 가깝게 개혁을 해버렸다. 결국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지금 시민사회의 역량이 가장 강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변화,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량을 봐서는 지배 계급의 강화로 야기되는 문제를 일정 정도 돌파할 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노동사회

높은 지지율과 취약한 내부가 만든 '강경 기조'…"관건은 경제"

이원보: 그런 가능성에도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잠재력이 많이 훼손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철도 민영화 사태처럼 민중들을 몰아붙이는 상황이다. 이런 행태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점검해 보자.

강정구: 정통성 문제다. 정통성을 갖추려면 세 가지, 권력 뿌리에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권력 창출에 정당성이 있어야 하며 권력 행사에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새누리당을 기반으로 해 역사적 정당성이없다. 또한 국가 기관 선거 조작이 드러났고 수서 경찰서 수사 은폐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권력 창출의 정당성도 허물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선 개입 진상 규명을 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등 국정원 개혁을 하지 않고 외려 국정원에 힘을 더 실어주며 권력 행사에 정당성도 잃었다. 이렇게 정통성이 없으면 국민, 민중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통치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억압적 통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폭압 정치를 하는 것이다.

김동춘: 민주화 이후 상황을 보면 동맹으로 선출된 대통령도 전 대통령을 밟고 희생양을 만들면서 자기 정당성을 창출해 나갔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의 자원 외교, 4대강, 민간인 사찰 등에 관련된 사람 중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만들지 않았다. MB가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사후 보장 문제를 내적으로 제기하며 밀양이나 암묵적 합의를 이룬 것 아닌가란 의심이 든다. 강고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해관계가 결합됨으로써 오늘날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강경 노선은 언제나 내부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철도 파업 참가자에 대한 대량 직위 해제도 그렇고 교학사 교과서 수정 문제도 그렇다. 훨씬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막가파식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교과서 왜곡 문제는 10년 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밖에서 교과서를 만들면,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제도화해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 인식 틀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크게 보면, 박정희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를 넘어, 식민 시기 이후 우리 사회의 역사 발전 경로에 대한 새 해석 문제까지를 장악하려는 프로젝트다. 한국에서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으로 만들면, 분단 체제하에서 남한 체제 정당성을 살리는 것을 넘어 친일 세력을 살려낸다. 지난 100년의 외세 의존 근대화 프로젝트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입지가 사라진다. 겉으론 자유민주주의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친일·친미·독재·천민자본주의 모두가 정당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정태인: 박근혜 정권이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않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인 것 같다. 4대 권력 기관을 완전히 장악했고, 지지율이 53%가 넘는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잘 안 풀리면 이명박 정권을 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일단은 경제가 잘 안 풀리니 모든 것을 투자 활성화로 바꾸었다. 투자하면 경제 성장률 그래프가 변할 수 있으니까. 그럼 투자는 누가 하느냐. 대기업이 한다. 결국 재벌들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원래 '줄푸세'가 철학이었으니, 투자 활성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수도권 규제 완화(2차 투자 활성화 계획)이었다. 이는 재벌들이 가장 원하는 규제 완화다. 재벌들에게 선물이었을 것이다. 재벌들이 그다음으로 원하는 규제 완화는 공공서비스 규제 완화.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외국과 연결해서 규제 완화를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을 통해 철도를 민영화하려고 한다.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를 늘리고 '뭐든지 한다'는 자세다.

문제는 경제 성장률이 안 좋아지고, 양극화가 더 심해졌을 때도 국민들이 과연 정부를 지지할 것인가다. 지금 광장에 나오는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부를 지지하는 노인들 세대라던가, 가난한 세대가 불만이 생기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세력을 칠 것이다. 아버지한테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결국 경제 문제가 관건이 될 거라고 본다.

내년 지방선거 전망…"시민사회에 달렸다"

이원보: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올해는 정부가 힘으로 눌렀다. 누르면 누를수록 튀는 힘의 강도가 높아질 텐데 말이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유행하는데, 이런 현상도 억누르는 데 대한 반향이 아닐까 싶다. 내년 1년 박근혜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김동춘: 종교계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했다. 아직 시민사회는 공식적으로 퇴진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은 상태다. 대통령이 여전히 5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 동력이 확 늘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경제 문제에 달려 있다. 집권 1년까지는 '두고 보자'는 국민 의견이 다수였다고 본다. 그런데 내년 봄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진전이 보이지 않고, 이런 식의 공안 통치가 계속되면 위기가 오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내년도 예산이 아직 결론 나지 않았는데 예산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뭘 할 수 있고 뭘 하지 못하는지 보일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는 정책 아젠다라는 게 있는지 굉장히 회의적이고, 이대로면 공무원들의 동력도 확 빠질 것이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예산과 공무원 충성도인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꼭 밑으로부터의 퇴진 요구가 아니더라도 정권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본다.

보수 진영은 당장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떨어뜨리는 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을 생각하면서 잠재적 대선 후보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할 것 같다.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는 최근 학생들이나 시민사회 움직임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력이 잘 안 붙는 이유는 민주당의 무기력 때문이다. 구심이 없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시민사회 진영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대안을 제기해야 한다. 남북관계 돌파구도 남한 시민사회에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어쨌거나 제도화돼서 여당과 적대적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동력이 생기긴 어려울 것 같고, 안철수 의원 측도 현재 지지율은 높으나 정당 구조를 완전히 개편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동력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태인: 우리 경제가 살 길은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다. 사회적 경제는 자발적 움직임이니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내수를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여전히 수출에 기대를 걸고 재벌의 투자에 기대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공기업 규제 완화와 민영화다.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하게 막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의 힘일 수밖에 없다.

내년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를 지키지 못하면 아마 하반기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더 크게 양극화되고 정부는 더 빨리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그다음에 상황을 수습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파시즘 쪽으로 더 갈 수도 있겠다.

지난 정부 때 광우병 촛불 시위가 일어 이명박 대통령이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이 굉장히 많다. 사실 그게 우리 경제를 살렸다. 그렇게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내년 지방 선거다. 여기서 제동을 걸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굉장히 위험해질 것이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와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노동사회

남북관계 개선? "남북 모두에 관계 개선 동력 없다"
이원보 : 이제 남북관계를 논의해 보자. 격동의 시기에 있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고, 앞으로 남북관계에서의 변화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강정구 : 정부는 대북 정책 기조를 신뢰 프로세스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경제처럼 이게 뭔지 모른다. 그저 신비주의에 쌓여 있다. 말로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다 보면, 신뢰가 구축되고 그러다 보면 평화가 구축돼 이후 평화통일 기반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남북관계는 신뢰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신뢰 문제로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 핵 문제나 남북 군축문제 등은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신뢰 측면에서도 분명히 추진해야 하지만 평화협정·군축·한미군사동맹·군사훈련 문제는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청사진이 전혀 없다. 기껏 있는 게 신뢰 프로세스인데 그것도 불투명하다. 그러니 이 정부에서는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내적인 동력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장성택이 철광석 등 광물을 중국에 헐값에 팔았다며 '이래서 장성택의 죄를 물었다'고 했다. 장성택은 유연하고 좀 자유분방한 측면이 있는 사람인데 처형되고 나니, 그 아래 실무자들은 남북관계나 북중관계에서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정책을 낼 수가 없게 됐다.

정태인: 동아시아 전체를 보고 그 안에서 국민들에게 남북관계를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크게 보면, 미국이 중국에 '컨게이지먼트'(Congagement: 봉쇄와 포용의 합성어)하지 않았었나. 군사적으론 컨테인먼트(Containment: 봉쇄)하고 경제에선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포용)해서 시장 경제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그게 아닌 상태에서 (중국이) 너무 빨리 커지니까 컨게이지먼트가 변화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재정 적자가 너무 심해지니까, 중국 봉쇄망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일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돈을 쓸 거면 무엇하러 미국 방어망을 만드나. 우리가 지역안보체제를 만들면 되지. 길게는 지역안보체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북한에도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 전체를 보면,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양쪽에 끼어있는 나라들이 있다. 앞서 중국이 2010년에 너무 잘못하긴 했다. 남중국해에서 여러 나라와 갈등을 일으켜 일본, 필리핀베트남 등 아세안이 모조리 TPP로 끌려 들어가 경제 봉쇄망이 만들어졌다. 이제 중국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나라로 러시아, 아세안이 있고 남북한이 있다. 그런데 남북한에서는 합종을 그리다 중간에서 끊긴다. 일본하고 한반도를 빼버리면 별로 힘이 없다.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를 미국으로부터 지키는 길인 동시에 중국으로부터도 지키는 길이다. 다만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구한말 빼닮은 정세…"이러다 다 죽는다"는 강한 메시지 보내야

강정구: 요즘 걱정이 굉장히 많다. 향후 20~40년 사이에 틀림없이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것이고, 중미 간 세력이 교체될 것이다. 그 전에 미국이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상황을 역류시키려 발버둥을 치는 시기가 올 텐데, 이때가 제일 위험하다. 중국과 미국이 맞붙기는 힘드니 그 사이에 있는 한반도나 댜오위다오 등에서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1636년 병자호란은 명나라·청나라 세력 교체기에 생긴 일이다. 앞으로 있을 중·미 세력 교체기에 자칫 잘못하면 제2의 병자호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 우려를 예방하는 데 전력을 부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그림을 누가 제시하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김동춘: 사실 나도 지금이 구한말 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북한 정권이나 남한 정권의 행동이 조선 시대 노론이 하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적대적 공존 측면이 있고, 입지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정책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고 강경하다. 특히 남한에 그런 측면이 있다. 노론계가 대안 없이 체제유지로 나가면서, 동학군과 개화파를 다 진압하고, 결국 세력 개편기에 제국주의 먹이가 돼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과거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양쪽 정권에 "이러면 양쪽 다 죽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남한 시민사회가 내부의 양심적인 세력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강정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와 배규식 노동연구원 본부장. ⓒ노동사회

고용시스템 거대 전환기…노사정위원회 뛰어넘는 사회적 대화 해야

이원보: 노동 문제를 살펴보자. 상반기 노동 정책을 보면 고용률 70% 달성에 모든 것이 집중된 느낌이다.

배규식: 우리 고용 시스템이 지속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대졸자 기준으로 보자. 0세부터 27세까지 배우고, 부모님에 기대서 교육을 받는다. 27세부터 55세까지 일하고 퇴직하면 85세까지 30년을 지내야 한다. 일생 가운데 3분의 1만 일을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는 고용 시스템 유지가 불가능하다. 정년도 현재 60세까지 늦췄는데, 이는 과도기적 조치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65세까지 정년을 늘려야 한다.

근로시간 문제도 지금과 같이는 갈 수 없다. 지금은 젊었을 때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조기에 퇴직시킨다. 근무 시간을 줄여 시간제로 좀 더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번에 터진 통상임금 문제도 지금과 같은 임금체계와 연장 근로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동안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 산업화 시절 만들어진 기형적인 임금 체계를 관행으로 유지해온 경영계와 정부는 노동자들의 소송을 계기로 뒤늦게 숙제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스템 전환점에 서 있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문제의식은 흐릿하고 또 상당히 개별화되어 있다. 개별 사업장 노사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을 했지만, 전체 시스템 면에서 보면 불공정하고 격차와 차별이 심하며, 기업규모별로나 원하청 관계 또는 고용 계약의 형태에 따라서 울퉁불퉁한 모습을 띠고 있다. 파편화되고 조율도 안 된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너무 정치적으로만 보지 말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앞으로 미시적인 차원에서 산업 민주주의나 공정한 노동 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엔 이런 측면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었던 것 같다.

김동춘 : 전일제 노동 문제라든지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의 고용시스템으로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하고, 현재와 같은 전일제의 연공제 방식의 정규직 중심의 모델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지탱 불가능하다는 것을 좀 더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 노조가 중심이 돼 일정 정도 양보하면서 주변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이원보: 그런데 이런 노동 시장 개혁 과제들은 늘 노동 유연화 확산과 결합돼 있다.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에도 유연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문제와 겹쳐 있다. 고용 시스템을 바꾸면서 다른 한쪽은 고용을 유연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배규식: 다른 나라를 보면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훌쩍 넘을 때엔 연간 노동 시간이 1700~1900시간 대로 매우 줄어들어 있었다. 우리는 2만 달러를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2100시간 대다. 노동시간 단축 시기 상조론은, 외국 사례에 비추어 보면 설득력이 없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임금이나 근로 시간에 유연성을 조금 부여하고, 사용자뿐 아니라 근로자 입장에서도 근로시간을 선택해 필요할 때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고용 시스템 개혁을 위해서는 고령자나 여성 계층도 대화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노사정을 넘는 수준의 사회적 대화, 국민적 대화가 필요하다. 고용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전체 구성원들이 논의를 해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전교조 죽이기, 지역 운동 약화 노림수? 

이원보공무원 노조와 교원 노조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세는 단순히 노동 논리만은 아닌 것 같다. 일각에선 '정부가 공무원 노조를 치는 것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기 위한 전제다. 노조가 브레이크를 걸 테니 사전에 순을 죽이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전교조에 대해서는 역사 왜곡을 하기 위해 사전에 전교조 쪽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동춘: 역사 왜곡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방에 내려가 보면 전교조가 지역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다. 만약 전교조가 깨지면,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구심이 사라진다. 따라서 전교조를 치는 것은 지역 운동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공무원노조 같은 경우엔 그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나. 일사불란한 공무원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원보: 노동계에선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문제 등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고 평가한다. 그런 걸 보면 대통령이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다만 아직도 젊은 층은 살아 있고, 시민사회도 우리나라처럼 활발한 곳이 없으니 노동운동에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실제 최근 노조 조직률이 늘었다. 2년 연속으로 0.3%씩 늘었다. 또 지난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가보니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침체한 노동 운동이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김동춘: 한국의 서비스업 고용 비중이 70% 정도 된다. 서비스업은 대부분 100인 이하고 여성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 노조는 500인 이하 혹은 1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조직된 경우다. 결국 서비스직 문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조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노동계의 완전히 새로운 전환이라고 해야 하나. 개인주의화돼 있고 젊은 세대들인 데다 여성화돼 있는 이 노동력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대기업 사업장 중심의 마인드로는 불가능하다. 서비스 업계 조직화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금처럼 예산을 약간 투입하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전환 이뤄야 한다.

배규식: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온라인 카페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 기존 조직화 과정과는 다르게 사업장의 누리꾼들이 서로 모여서커뮤니케이션을 한 것이다. 포털 카페에 가면 이 같은 사례가 많다.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기댈 곳이 없어서 자신들끼리 먼저 소통하고 있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부문으로부터 활력을 얻을 것이라고 본다. 공공부문과 대기업들은 자기 이해 관계를 지키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다수인 비정규직들이 좀 더 결합해서 다 같이 살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노력해야 한다.(끝)

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1013123016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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