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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대학 담장 너머로 둥지 펴는 인문학의 온기

대학 담장 너머로 둥지 펴는 인문학의 온기


올해 역사학계에서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사진은 지난 2일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 무효화 국민 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교육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3년 학술계

대학들 인문학부 축소 추진 지속
협동조합 등 대안대학 강좌 활발
‘교과서 역사 왜곡’ 비판 봇물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선언 확산
시간강사 처우개선 해법 못찾아

‘대학 안 인문학의 위기, 대학 밖 인문학 열풍’ 현상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제도권에서 외면당한 순수학문 연구자들이 협동조합에서 대안을 찾는 현상도 생겨났다. 지난 8월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교학사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놓고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랐고, 열악한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 해법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 밖 인문학 열풍…대안대학도 등장
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몇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지만, 올해 들어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문학 연구단체, 출판사, 지방자치단체, 언론사 등이 앞다퉈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들을 개설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면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갖춰야 할 ‘스펙’이 또 하나 늘게 됐다.
올해는 대통령까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7일 청와대에 문화계 인사를 초청해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서 “비옥한 토양 위에서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듯이 풍요로운 인문학의 토양이 있어야 개인이든 국가든 성숙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안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문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 등 순수학문 관련 학과와 강좌를 구조조정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대는 지난 6월 비교민속학과 등 인문사회 분야 4개 학과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서강대는 최근 인문사회계열 학부들을 통폐합하는 학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당 학과 교수·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인문학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대학 밖에 인문학 연구의 ‘둥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사회전반적인 협동조합 붐을 반영하듯, 인문학 연구 협동조합이 속속 생겨났다. 지난 10월 창립총회를 열고 최근 서울시 승인을 마친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내년 1월14일 시범강의를 시작한 뒤 3월 정식개강을 할 예정이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인문학협동조합’도 지난 8월 말 출범해 활동 중이다. 그동안 ‘오덕인문학’ 등의 시민 대상 강좌를 열었고, 오는 1월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열려라 대학’ 강좌를 준비 중이다. 지난 7월에는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 ‘가장자리’가 출범했다. 가장자리는 학습공동체를 지향하며 격월간 <말과 활>을 발행하고 있다.
역사학계, 교과서 논쟁 가열
올해 역사학계를 흔든 이슈는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였다.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전·현직 회장이 주요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 교과서는 8월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심의를 통과했다. 이후 그 내용이 드러나면서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있고, 부정확한 사실 기술이 많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지난 9월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는 공동으로 “역사적 사실관계 오류나 편파적으로 해석한 대목이 간추린 것만 해도 298건에 달한다”는 내용의 ‘뉴라이트 교과서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가 지난 10일 출판사들이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에 따라 작성한 수정안을 최종승인했지만, 향후 일선 학교에서의 교과서 선정, 국사교과서 국정 전환 논란 등 ‘불씨’가 곳곳에 잠복해 있어 이번 파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학계에서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뿐 아니라 뉴라이트 성향을 가진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임명, 보수 성향의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임명 등 현 정권 출범 이후 일련의 움직임과 관련해 ‘친일·독재 합리화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비평> 겨울호에 실은 ‘한국 역사교과서인가, 아니면 일본 교과서인가’라는 논문에서 “2005년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시작된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권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변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드디어 제도권 교육마저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며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는 단순히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역사왜곡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교수들 시국선언, 강사법 갈등…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진상 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6월26일 한양대 교수 47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 110여개 대학 2300여명에 이르는 교수들이 참여할 만큼 번져나갔다.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 문제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2011년 열악한 강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여론에 떠밀려 만들어진 일명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은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에 한해 공개채용, 재임용 기회 제공, 4대 보험 보장 등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시간강사 대량해고 우려, 실효성 논란 등으로 대학과 강사 양쪽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올해 초 한차례 유예됐고, 최근 시행을 2016년으로 다시 2년 유예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국대학강사노조 등 강사단체들은 강사법을 폐기하고 강사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체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154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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