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책의 구조

책의 구조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hhan21&logNo=110182371998

이 글은 정병규 선생님의 북디자인 강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책의 역사와 구조’를 정리한 글입니다. 글의 발췌 및 정리는 <기획회의> 편집부에서 진행했습니다.― 편집자

우리가 다루고 있는, 곧 만들고 있는 대상(책)은 문화재다. 여기서 문화재란, 고적古蹟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삶 속에서 문화적 규칙이 포함된 어떤 물건을 말한다. 그 규칙들은 많은 시간을 통해 진화되고 정리된 것이며,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문화의 어떤 틀을 우리 스스로 시행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책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진 하나의 원칙이며 약속이고 문화적 제도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문화생산자다. 이런 이유로 책 만들기는 문화적 제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책 만들기에 기본이 되는 원칙들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본다. 우리가 원칙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는, 책을 정보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을 익히기 위해서다. 책이 디지털 미디어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종이성, 물질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책은 종이를 선택했을 때부터 이미 시간성을 전제로 한다. 종이는 앞면과 뒷면이 있으며, 책으로 만들어지면 여기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개입된다. 두꺼운 책을 보고 “읽는 데 시간 많이 걸리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책은 시간성을 전제로 하며, 시간성은 공간화되어야 전달된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길게 늘어선 글(원고)을 문장과 문단 단위로 분절해서 각 페이지에 배치하는 행위다. 따라서 책을 어떻게 공간화(질서화)하느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다.

정보에 순서를 매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보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질서화다. 정보화한다는 것은 질서화한다는 뜻이고, 순서를 매기고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치라는 개념으로 정보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질서화’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책을 질서화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의 내부적 구조에서 정보에 순서를 매기는 방법, 곧 정보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차례’와 ‘찾아보기’가 있다. 차례는 원고의 순서대로 책을 정보화하는 방법(통시적)이고, 찾아보기는 이와는 다른 질서로 책을 정보화하는 방법(공시적)이다. 따라서 차례는 수직적인 구조이고, 찾아보기는 수평적인 구조다.

정리하자면, 책 속에는 정보화의 기본 시스템인 수직과 수평이 모두 들어 있다. 이렇게 보면 책 속에 가장 중요한 정보화 기능의 방법과 정보의 형성축, 질서의 축이 모두 들어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책을 잘 만들고 좋은 책을 만드는 방법론으로서 책에 관한 구체적인 규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의 외부적 구조와 내부적 구조책을 물질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양장본과 문고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문고본은 원래 페이퍼바운드paper bound를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지금은 양장본이 아닌 책들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장본과 문고본 사이에, 문고본도 아니고 양장본도 아닌 ‘반양장’이라는 형태가 있다. 반양장본은 한국 특유의 형태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책들은 반양장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외부적으로 케이스case, 재킷jacket, 커버cover로 구성되어 있다. 재킷은 시각표현 기능과 함께 보존기능이 있다. 처음에는 책에 커버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재킷이 씌워졌다. 재킷은 책의 성격을 더 강화하고, 시각적인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커버는 양장본의 모든 디자인 요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양장본의 커버를 디자인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어떠한 시각적 표현도 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둘째,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도상을 넣는다. 예를 들면, 성경책의 커버에는 십자가를 넣는다.
셋째, 문자를 인쇄할 경우 책의 제목만 넣거나 제목과 저자만 넣는다. 이때 출판사는 넣지 않는다.

책 속에는 전통적인 규칙과 대중화된 규칙이 섞여 있는데 양장본의 커버는 대부분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커버에 표시하지 않는 모든 것들, 출판사나 저자 등은 책등spine에 표시된다. 책등은 그 책의 정보를 가장 밀도 있게 요약해 모아놓은 곳이다.

디자인을 할 때는 재킷과 커버에 있는 활자를 먼저 만들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책등에 있던 활자가 나중에 재킷과 커버로 나간 것이다. 따라서 책등에 있는 활자꼴typeface과 재킷, 커버에 있는 활자꼴이 같아야 한다.

커버를 넘기면 가장 먼저 면지가 나온다. 면지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은 본체와 커버를 이어주는 걸음쇠 역할이다. 따라서 책이 두껍고 판형이 크면 면지의 두께도 두껍고 강해져야 한다. 면지가 얇으면 책과 본체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면지는 표지와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표지의 색깔과 동일 계열을 쓰거나 보색 계열의 종이를 쓴다.

이제 책의 내부적 구조를 살펴보자. 본문의 텍스트, 곧 원고는 저자가 만드는 것이라면,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은 앞붙이와 뒤붙이다. 앞붙이와 뒤붙이가 앞서 이야기한 파라텍스트에 해당한다. 보통 앞붙이에서 책의 인상이 만들어지고 정보의 자리매김이 정리된다. 앞붙이와 뒤붙이는 책이라는 형식, 책이라는 문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앞붙이는 책의 본문 앞에 놓이는 여러 요소들을 일컬으며 책의 입구로 정보와 함께 디자인적 달성 또한 중요하다. 앞붙이의 구성 순서와 편집디자인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정리한다.

1 반표지half-title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다. 반표지(또는 헛표지)에는 제목만 넣는데 활자는 표지의 제목과 같은 활자꼴을 쓰는 게 기본이다. 크기는 그보다 작게 인쇄하고 저자와 출판사는 넣지 않는다.

옛날에는 제본과 장정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제본공이 장정을 했다. 그래서 책 맨 앞에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알기 쉽게 제목이나 그림을 그린 종이를 한 장 얹어놓았다. 제본을 할 때는 그 종이를 떼어내 버렸는데 언제부터인가 잘못해서 이 종이가 같이 제본이 됐다. 그 뒤 책 속으로 들어오면서 밖의 외부적인 구조와 본체를 연결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 흔적이 남아서 책의 제목은 반표지, 그림은 머리 그림이 됐다.

2 머리 그림frontis piece
반표지 뒤 짝수 페이지에 놓인다. 책과 관련 있는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이미지가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을 디자인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책의 내용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넣는 방법, 둘째, 저자의 저술 목록을 넣는 방법, 셋째, 비워놓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비워놓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저술 목록을 넣을 때는 시리즈나 전체 소개가 들어가고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한 출간 목록도 넣을 수 있다.

3 속표지title-page
집으로 치면 대문에 해당한다. 속표지에는 제목, 부제, 저자, 역자, 그림 그린 사람, 사진 찍은 사람, 출판사 이름 같은 책에 관계된 모든 요소들이 다 등장한다. 영미권에 서는 출판지와 출판연도도 들어간다.

속표지에는 그림, 이미지가 들어간다. 이미지는 첫째, 내용에 관계된 이미지, 둘째, 비워놓기, 셋째, 출판사의 심벌이 강하게 들어간다. 특히 어린이 책이나 호화본의 경우 두 가지 디자인적 특징이 있다. 먼저, 속표지를 디자인할 때는 판면을 지키지 않고 여백까지 이용해도 괜찮다. 둘째, 경우에 따라 앞쪽에 머리 그림이 없으면 앞쪽까지 침범해도 된다.

4 판권copyright
속표지 뒤쪽에는 아주 작은 활자들로 법률적인 문제와 함께 몇 판 찍었는지 같은 내용이 놓인다. 이 페이지를 보면 그 책의 성격, 제작 환경, 법률적인 상황을 다 알 수 있다. 반표지부터 판권까지는 책에서 공식적인 순서다.

우리나라에서는 판권 자리에 ‘이 책은 외국 어디어디 저작권 회사와 함께 우리나라 어디의 에이전시를 통해서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표기를 넣기도 한다. 이럴 때 문제는 판권의 위치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속표지 뒤에 그대로 넣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제일 뒤로 보내는 방법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판권은 책의 맨 뒤로 보냈으면 한다. 속표지 뒤쪽은 주로 법적인 사항을 다뤄서 저작권 표시를 하고, 맨 마지막에는 법적인 것이 아닌 제작관계를 넣었으면 한다. 서양에서도 이 두 경우를 분리하는데 제작관계는 맨 마지막에 간기colophon로 들어간다. 물론 필수적으로 넣지는 않지만 간기가 있는 책은 대단히 공을 들인 책이다.

5 헌사dedication
판권란과 마주보는 홀수 면에 놓는다. 원래 위치는 속표지 뒤쪽이었지만, 보통 속표지 뒤에는 판권이 들어가기 때문에 판권의 위쪽에 같이 넣거나 아니면 그 다음 페이지에 넣는다. 서양에서는 헌사가 대단히 중요하다. 원래 교황이나 국왕한테 바친다는 관례적인 문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요즘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회갑논문집 같은 곳에나 가끔 쓰인다.

6 감사의 말acknowledgement헌사와 비슷한 성격으로 차례 뒤에 놓는 것이 보통이다. 감사의 말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그야말로 감사한다는 뜻으로 헌사적 성격을 가지는데, “도와주신 분께~” 같은 내용이 들어간다. 둘째, 저작권 문제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친한 사람의 원고나 사진, 유명한 번역 같은 것을 인용하는 경우 인용허락을 받아야 한다. “~는 ○○의 허락을 얻었다. 감사한다.” 같이 허락을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이곳에 실린다. 이처럼 감사의 말에 법적 양해를 받았다고 밝히기 때문에 저작권의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부분을 적당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지적 생산물에 대해서는 그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

7 서문preface, foreword
지금까지의 사항들은 저자가 만든 원고가 아니다. 편집자나 디자이너의 손이 닿는 부분이다. 저자의 원고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서문이다. 보통 차례 앞에 나오는데 서문이 아주 길 경우에는 차례 뒤로 간다. preface는 저자가 직접 쓴 서문을 말하고, foreword는 다른 사람이 쓴 서문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foreword가 preface 앞에 놓인다.

8 차례contents
차례는 책의 내용이 한 눈에 드러나는 곳이다. 차례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수준이 드러난다. 차례는 단순하게 책의 순서만 표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최소한의 글줄 길이를 갖는 짧은 문장이 있고 또 계급이 있는데 장, 절, 항, 목, 강, 식으로 중요도에 따라 활자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또 숫자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이다. 차례는 그 종류도 다양한데 이미지를 이용해서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이미지 차례도 있다. 차례야말로 본문에서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가장 집약되는 곳이다.

또한 차례는 표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표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 표지와 차례는 톤이 맞아야 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잡지나 책에서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요소를 볼 때는 표지 등속과 함께 차례를 보면 된다.

차례를 짤 때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오른쪽 맞추기를 하면 안 된다. 특히 시집에서는 써서는 안 된다. 둘째, 차례의 글자꼴은 본문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있는 글자꼴과 같아야 한다.

뒤붙이backmatter는 책의 시각적 인상을 결정짓는 곳으로 앞붙이와의 조화가 디자인 원칙이 된다. 뒤붙이는 부록, 주, 참고문헌, 용어해설, 찾아보기, 간기 등의 순서를 갖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1 주note
주는 본문 안에 넣을 수도 있고(본문주), 본문 밑에 붙일 수도 있고(각주), 한 챕터가 끝나는 곳에 붙일 수도 있고(구주), 책 전체가 끝나는 곳에 붙일 수도 있다(미주). 어디에 있어도 내용적 가치는 다르지 않지만, 시각적 구조적으로는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주를 본문 밑에 놓는 것은 공시적인 방법이고, 책 전체가 끝나는 곳에 놓는 것은 통시적인 방법이다.

가끔 페이지마다 각주를 넣으면 책이 어렵게 보인다고 해서 한꺼번에 몰아놓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책을 읽으면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주를 달 때에도 독자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2 찾아보기index
찾아보기는 영어책의 경우 알파벳순, 한글은 가나다순, 차례는 아라비아 숫자 순으로 되어 있다.

책을 정보화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다른 사이버 매체와 경쟁할 수 있는 곳이 차례와 찾아보기다. 그만큼 찾아보기는 중요한 부분이고 소설이나 시, 아주 간단한 에세이집 외에는 거의 차례가 안 들어가는 책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편집자들이 가장 반성해야 할 부분이, 특히 번역본을 낼 때 원서에 있는 찾아보기를 임의로 대폭 줄여버리는 것이다.

찾아보기는 그에 대한 연구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찾아보기의 종류는 가나다 순, 분류를 해서 넣는 것, 인명 찾아보기, 지명 찾아보기, 사항 찾아보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3 간기colohpon
간기에는 조판상황과 본문 서체, 크기, 인쇄상황,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등 책의 제작과 관련된 내용을 적는다. 활자는 무슨 활자를 썼고, 크기는 얼마이고 행간은 얼마이고, 종이는 어디 것을 썼으며, 인쇄는 어디서 했고, 제본은 어디에서 했는지 등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관습적으로 간기와 앞붙이의 판권을 합하여 넣는다. 간기가 있는 책은 흔하지 않다. 만약 제작 사항이 다 나오는 책을 보면 무조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기획회의 204호 2007.07.20
[출처] 책의 구조|작성자 한기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