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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7일 화요일

공통체, 자본과 국가 넘어선 대안사회

공통체, 자본과 국가 넘어선 대안사회

등록 : 2014.01.05 19:40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마이클 하트. <공통체> 번역 출간으로 <다중>, <제국>에 이은 3부작의 국내 출간이 완결됐다. 사월의책 제공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소유체제라는 점에선 동일
세계 공통의 것들은 공유돼야
‘아랍의 봄’ 등은 이를 위한 투쟁
다중 스스로 군주가 돼 실현해야

공통체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2만8000원
이탈리아의 혁명적 좌파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미국 듀크대 교수 마이클 하트가 함께 쓴 <공통체>(Commonwealth, 2009)가 번역돼 나왔다. 이로써 <다중>(2004)과 함께, 2000년에 출간돼 현 세계구조와 대안체제에 대한 새로운 사유방식을 제공했다는 평과 함께 세계적인 화제와 논쟁을 부른 이들의 <제국> 3부작이 모두 번역 출간됐다. 전작들 개념을 더 선명하고 풍성하게 한 종합편이라는 평을 얻은 <공통체>의 핵심어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과 ‘다중의 군주 되기’다.
공통적인 것은 물질세계의 공통적인 부, 예컨대 공기와 물, 땅의 결실 등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이다. 곧 공유돼야 할 인류 전체의 유산이다. 그리고 사회적 생산의 결과물 중에서 사회적 상호작용 및 차후의 생산에 필요한 것들, 즉 지식이나 언어, 코드, 정보 등도 거기에 포함된다.
지은이들은 최근의 ‘아랍의 봄’이나 미국의 오큐파이, 브라질·터키의 반정부 시위 등 다양한 사회적 투쟁의 중심에 이 공통적인 것을 지켜내려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촛불집회나 희망버스, 철도 민영화 반대운동 등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 사회적 투쟁은 지구화(세계화)·신자유주의 진행으로 전쟁, 고통, 비참, 착취가 심해지고 있는 데 대한 대응이며, 대안적 세계를 추구하는 새로운 주체들, 지은이들이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낸 사회변혁 주체들의 등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공통적인 것을 지키려는 다중의 사회적 투쟁은 바로 이 사유화, 사적 통제에 대한 저항이다. 사람들은 사유화, 소유, 사적 통제의 대안 선택지로 공적인 통제, 국가 통제를 얘기한다. 자본주의 사회 병폐의 유일한 치료제는 공적 규제와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관리라거나, 사회주의적 폐해를 바로잡는 건 사적 소유와 자본주의적 통제뿐이라고 얘기하는 게 그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 사적이냐 공적이냐, 또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정치적 양자택일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양자 모두 공통적인 것을 배제하고 파괴하는 소유체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공통체>는 바로 그 대안과 그것을 현실화할 정치적 주체 창출, 즉 ‘다중의 군주 되기’에 대해 얘기한다.
대안은 바로 공통적인 것의 회복이다. “공통적인 것은 개방적 접근과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결정 및 자주관리로 정의되는 부의 한 형태, 또는 그런 부를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생적으로 조직되지 않으며 관리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지배구조는 저절로 무너지지 않으며, 대체된 이후도 관리돼야 한다. 그 대체와 관리의 정치적 주체 창출, “공통의 것의 관리에 적합한 집단적 자치형식의 발명”, “다중이 자치기술을 배우고 영속적인 민주적 사회조직 형태들을 발명”하는 과정이 바로 ‘군주 되기’다.
‘군주’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그람시가 <옥중 수고>에서 얘기한 ‘현대의 군주’(Modern Prince)에서 따온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통일 국민국가를 건설할 무장한 예언자로서의 절대군주였지만 그람시가 말한 현대의 군주는 혁명정당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을 바꿀 정치적 주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군주는 그람시의 군주와 닮았지만 그것과 다르다. 지배권력에 대한 반란적 타격보다는 문화·정치 영역의 장기간 전투를 통해 부르주아로부터 헤게모니를 빼앗아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은, 중앙집권적 전위당이나 혁명적 지도부의 헤게모니 아래 ‘기동전’적 반란과 권력 탈취를 주장하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혁명 개념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람시의 진지전·헤게모니·수동혁명은 혁명적이지 못한 시대에 적합한 혁명적 활동을 발명하기 위한 것으로, 단지 최선이 불가능할 때, 능동적 혁명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을 때의 선택항일 뿐 결국은 레닌주의적 능동혁명의 지평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레닌주의적이라고 지은이들은 지적한다. 레닌주의적 전위당은 그들 자신이 거부하고 타도하려 했던 중앙권력이라는 정체성(identity)의 거울 이미지로서의 대항권력을 형성한다. 소련 공산당이 그들이 타도한 차르 체제와 같은 억압체제를 만들었듯이. 지은이들은 지금 시대는 무장부대보다는 ‘비무장 다중’이 효과적이며, 정면공격보다는 사보타주·비협조·대항문화적 실천·일반화된 불복종 등의 엑소더스가 더 강력하다고 얘기한다. 이탈리아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전통 위에 서 있는 네그리가 생각하는 혁명 주체는 레닌주의는 물론 그람시적 전위당이나 우두머리(지도자)도 필요없는 자율적·자치적 민주주의 실천자로서의 다중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한때는 혁명 수단이었던 정체성이 새로운 위계와 차별, 소유를 낳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정체성의 고정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영속적 혁명이 돼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탈거(emancipation)와 해방(liberation) 개념이 등장한다. 탈거는 진정한 자신일 수 있는 정체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해방은 자기결정과 자기변형의 자유, 자신의 장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목표로 한다. 탈거에 그치는 정체성 고정 정치는 새로운 주체를 만들지 못하고 기성 주체의 교체에 그친다. 반면 해방은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주체 자체의 변신, 새로운 주체의 탄생, ‘다중 만들기’를 영구화한다. 혁명의 제도화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8400.html?_fr=mt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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