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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0일 월요일

노숙자가 무슨 인문학을…당신의 편견, 깨졌습니다

<거리의 인문학>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엮음/삼인·1만8000원

술과 때에 찌든 모습이 싫어 화장실 거울도 보기 싫었던 사람들. 영원히 공부와는 인연이 멀어 보였던 사람들. 세련되고 멋있게 사는 것은 꿈도 못 꿨던 사람들. 서울역, 을지로 입구 지하철역, 서소문공원이 자신의 주소지였던 사람들. 처음 이 학교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의 면면들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졸업생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인문학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거울을 만들었다. 거울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인문학이 나에게 준 건 깨지지 않는 거울 하나였다.”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인간이 무엇인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아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내가 왜 가난하고 무시당하는가. 그리고 세련되고 멋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
“불교에서 세수와 법랍의 나이가 있듯, 나에게는 세수의 나이는 없고 오로지 이 학교 졸업년의 나이만 있다. 내가 할 일은 공부다. 마음의 지식을 깨치는 것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학교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도 인문학이 사라지는 요즘, 먹고사는 것이 더 급해 보이는 노숙인들에게 웬 인문학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박경장 교수(명지대 기초인문대)는 “노숙인과 인문학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모두 비효율적이라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말한다. “이 두 만남은 비효율이라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가치로 만나는 게 아니다. 삶을 다시 처음부터 한층 근본적이고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관점에서 만난다.”
<거리의 인문학>은 지난 8년 동안 노숙인과 인문학이 만나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담은 책이다. 성공회 ‘다시서기센터’가 2005년 가을 문을 연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은 1년 동안 ‘배울 뜻 있는 노숙인’들에게 문학·철학·역사·예술·글쓰기 다섯 과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어린 왕자> <전태일 평전> <아큐정전> <소포클레스>를 읽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자유’를 주제로 삼아 글을 쓰고, ‘밥’에 대해 시도 짓는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보며 진짜 예술이란 무엇인지 토론하고,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불안한 영혼에 공감한다. 난생처음 인문학을 공부하며,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비참해진다”던 노숙인들은 성프란시스대학을 시작했던 임영인 신부가 목표했던 것, 바로 ‘자존감’을 경험하게 된다.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이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때로는 들어맞고 때로는 빗나간다. 교수들은 눈높이에 딱 맞는 교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쩔쩔매기도 하고, 학생들의 방종한 태도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서 한 장씩은 써본 사람들’이 품고 있는 내공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안성찬 교수(서울대 인문대)는 “뜻밖에도 문학사에도 매우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는 <햄릿>과 <파우스트>는 성프란시스대학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텍스트”라고 전한다. <햄릿>에 나오는 감동적인 구절을 따로 적어 갖고 다니는 모습, “파우스트는 바로 내 모습”이라며 잘 때에도 책을 베고 잔다는 고백 앞에서 안 교수는 감동하고야 만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순간. 이는 성프란시스대학이 이뤄내는 또 하나의 성취일 것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61025.html?_fr=mt1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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