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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0일 월요일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고찰

직장 안에서 작은 투닥거림이 있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대방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터에서의 손해는 - 그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든, 아니면 세간의 평이든 간에 - 결국 그 사람의 생존 방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도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사람이 지켜내야 하는 것은 가족일수도, 자기 자신일수도 있다.
서늘해진 가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싸워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삶이 세상에 대한 투쟁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그 걸음의 가벼움은 비단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책 ‘남편의 서가’를 꺼내 들었다. 아내인 그녀는 남겨졌고, 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됐으며, 또 다른 누구를 위해 싸우는 누군가가 됐다.
남편의 서가에 등장하는 책들은 고군분투한 흔적이다. 남편에게 있어 책은 그의 취미이자 읽어야 할 숙제이고 세상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한 무기이지 싶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해할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싸움이라는 단어는 그리 고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정작 숭고하다. 병마를 이겨내기 위한 자신의 인내, 남편을 충분히 애도하기 위한 직면. 이러한 것들은 싸움의 기술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그리 편하게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아버지의 마른 어깨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크고 높게 보였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지금에 와서야 세상과의 사투로 인해 그만큼 왜소해졌다는 것을 어느 날 깨닫게 됐을 때, 문득 서러워졌다. 지켜야할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절박하게 만드는가. 그 것이 결국 한 사람을 강하게 단련시킬지라도, 그만큼 무언가를 잃어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도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남편이 남기고 간 서가는 아내에게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녀는 말한다. “책만 두고 떠나버린 사람에게 어쩌자고 장탄식을 했지만 남편이 남긴 장서는 나의 밥벌이가 돼 주고,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살길을 책에서 찾으란 의미로, 이 많은 장서를 남기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남편이 그동안 세상과 싸워왔던 방식을 따라 아내도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남겨진 사람이 떠나간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그 사람이 돼 호흡하고 말을 해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참된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내 주위에도 이미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소중했던 누군가를 한번쯤은 떠나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남겨졌지만,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잘 모르는 때도 많았다. 그들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사이코드라마 기법 중에 역할 놀이라는 게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해보는 것이다. 왜 그 때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때 그에게 무엇이 그리 중요했는지가 마음으로 닿기도 한다. 남겨진 우리들은 그들이 남긴 기억, 흔적, 기록 등을 통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이 됨으로써.
이 책 ‘남편의 서가’는 결국 남편에 대한 일종의 역할 놀이를 통해, 아내가 남편을 더 잘 이해하고 느끼며, 충분히 애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는 이 책의 존재 자체가 말하는 메시지이다. 나에게도 그동안 죽어버린 관계들이 있다. 그 관계의 대상이 실제로 죽지는 않았더라도, 마음속에서 이미 사라졌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했었는지, 왜 그러한 싸움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 어렴풋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나는 누군가가 돼 볼 가능성이 있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들처럼 말해보고 생각해보고 들어볼 기회가 있다. 삶은 그렇게 확장되고 단단해질 것이다. 남겨지는 것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은 이유다.
<남편의 서가>를 읽고

출처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40115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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