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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한국인의 실질 문맹 실태- KBS 박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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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4일 KBS 박대기 기자 칼럼



"우리나라 중장년층 가운데 '실질 문맹'이 놀랄 만큼 많다"라는 지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문자보다 과학적인 한글 때문에 우리나라에 문맹이 적다는 건 상식입니다.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과연 그런지 알아봤습니다.

세계 22개 국가의 문장 독해 능력을 비교·조사한 결과를 찾았습니다. 바로 'OECD skills outlook 2013'입니다. 외부 공개가 금지돼 있던 실제 조사 문항도 입수했습니다. 이 조사 문항으로 정말 중장년 가운데 '실질 문맹'이 많은지 시험해 봤습니다.

■ 약 포장의 간단한 주의 사항도 이해할 수 없다?

한 구청 복지관의 중급 인터넷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대부분 60대 이상이었지만, 몇 달씩 교육을 받아 컴퓨터도 능숙히 다루는 분들이었습니다. 앞서 입수한 OECD 문자 독해력 테스트 문제로 시험을 봤습니다. 약 설명서 등에 쓰여있는 10줄 가량의 주의 사항을 읽고 그 가운데 적힌 '최대 복용 가능 기간'을 답하는 문제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7명 중 9명, 그러니까 절반 가량이 틀렸습니다. 20대 10명에게 같은 문제로 테스트했을 때는 수십 초안에 100% 정답을 맞혔습니다. 결국, 조사 대상 장년층의 절반은 간단한 약 상자의 주의 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젊은층 독해력 ‘세계 최고’ 중노년 층은 ‘최하 수준’

문자 독해력 조사는 OECD가 회원국 노동 인력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 실시한 것입니다. 수년간의 사전 준비 끝에 세계 22개 나라에서 15만 명 이상을 조사했고 우리나라에서도 6천여 명을 조사했습니다. 통상 국내에서 전국적인 통계도 1,000명의 표본을 가지고 진행합니다. 6천 명을 조사한 건 연령대나 성별 등 여러 조건에서 더 정밀한 결과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더구나 전화 여론조사가 아니라 방문 면접 방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기관에서도 면접 담당자 교육 등 사전 준비에 특히 주의를 기울렸다고 밝혔습니다.

테스트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16살에서 24살까지 젊은 층의 경우 292점으로 조사 대상 가운데 일본 등과 함께 3위에 올랐습니다. 젊은 층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독해력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고령군인 55세에서 65세 사이의 점수는 244점으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20위로 최하위 권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나이가 들면서 독해력 점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극적입니다.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독해력 점수 차이가 1등입니다. 영국은 0.1점, 미국은 8점 차이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48점이나 차이가 납니다.

독해력을 수준별로 나눠서 보면 국내 55세~65세의 독해력은 '매우 낮음'이 31.27%에 이릅니다. 대략 이 수치가 실질 문맹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독해력 '낮음'도 46.13%라 '낮음'과 '매우 낮음'의 합은 77.4%에 이릅니다. 반면 16~24세의 경우에는 '매우 낮음'은 2.84%, '낮음'은 24.54%에 불과합니다. OECD평균을 보면 55세~65세의 독해력이 '매우 낮음'은 24.12%로, 국내의 실질 문맹 중노년이 OECD보다 대략 30%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독해력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나타내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급격히 감소하지만 다른 나라는 30~35세에 가장 높고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연령에 따라 감소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성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초기 교육을 통해 획득한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학습을 통해서 개발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 실질 문맹이 높은 이유는?

OECD 보고서는 '한국은 교육을 개선한 결과 과거 세대의 낮은 독해력을 극복하고 젊은 층의 독해력이 향상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즉, 55~65세의 중장년층이 초중등 교육을 받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해 2000년대 교육 수준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같은 중장년층 가운데도 독해력은 커다란 개인차가 있습니다. 이번 조사를 국내에서 수행한 연구기관 담당자는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았던 중장년층의 현재 독해력이 뛰어나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책이 많았다는 말은 부유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부유함의 요소를 통계적으로 '통제'하더라도 책의 양과 독해력 간의 상관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담당자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중장년층이 되어도 독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채로 나이가 들면 독해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과연 우리 중장년층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인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OECD 최장 시간으로 알려졌습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많은 상태에서 일하는 50대와 60대 상당수는 독서 시간이 부족합니다.

■ ‘실질 문맹’, 우리 사회의 도전

이런 낮은 독해력은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요? 우선 OECD 조사의 목적인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낮은 독해력은 새로운 직무 지식을 익히거나 재취업 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큰 문제입니다. 조사 담당 연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해력이 낮으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니까, 정치적인 참여나 정치적인 발전에 이르는 데도 저해가 된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낮은 독해력 문제는 갈수록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중장년층의 독해 능력을 길러주고, 사회에서 노동을 시작한 청년층의 독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질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노동 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나 출산 증가 뿐 아니라 독해력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강 수명이나 GDP 등 다른 많은 사회 지표처럼, OECD가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든 이 독해력 지표도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하나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부끄러운 통계니까 널리 알리지 않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통계일수록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관심과 조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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