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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암흑의 시대 문인들 '표현의 자유' 외치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11/20/20141120003612.html

1974년 11월18일 오전 9시50분 광화문 의사빌딩(현 교보빌딩 자리) 로비. 이시영 시인과 소설가 송기원이 ‘우리는 중단하지 않는다’ ‘시인 석방하라’는 옥양목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가운데 고은 시인이 나타나 ‘문인 101인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은 살기 어렵고 아첨에 능한 사람은 살기 편하게 되었으며 왜곡된 근대화 정책의 무지한 강행으로 인하여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민중들은 생존마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고은 시인이 결의문 5항까지 읽을 무렵 경찰들이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문인들은 날쌔게 피했고 이문구 박태순 조태일 윤흥길 송기원 이시영 등 10여명이 함께 잡혀갔다. 황석영은 같은 건물문인협회 사무실로 올라가 체포를 면했는데 그 후 도망갔다는 놀림을 많이 당했다고 고백한다. 40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길게 지속된 문학운동이 시작되는 날의 풍경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가 탄생했고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1987)로 이름을 바꾼 뒤 다시 ‘한국작가회의’(2007)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를 기념하여 ‘한국작가회의 40주년 기념사업단 편찬위원회’(위원장 최원식)는 자유실천문학운동을 주도하고 실천한 고은, 이호철, 백낙청, 신경림, 염무웅, 박태순, 황석영, 양성우, 구중서 등 9명을 인터뷰해 ‘증언-1970년대 문학운동’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자실 탄생의 계기는 그해 1월7일 발표했던 ‘문인 61인 개헌지지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설가 이호철이 전체 진행을 맡았고 평론가 염무웅이 작성했으며 평론가 백낙청이 낭독했던 이 선언은 유신체제에서 문인들이 최초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낸 사건이었다. 다음 날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됐고 이호철은 보안사에 끌려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으로 엮인 것이다. 이에 이른바 보수우익이라고 부르는 당시 문인협회 소속 문인들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석방 탄원서에 서명했고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도 힘을 보탰다. 백낙청은 선우휘가 “이호철이를 간첩으로 써먹을 정도면 김일성이도 다된 거지 뭐”하면서 읽어보지도 않고 호탕하게 서명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진영으로 찢긴 작금의 상황에 비추면 반추할 만한 대목이다.

고은·박태순·신경림
백낙청은 “자실의 핵심은 고은이었고 이문구 선생이 조직책 역할을, 박태순씨가 별동대장처럼 뛰어다녔다”고 정리한다. 고은은 허무주의의 순수 문인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다. 그는 1970년 청계시장 피복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사건을 접한 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고은은 이와 관련해 “그 무렵 소위 재일교포와의 연계로 조작된 문인간첩단 사건이 진행되고 또 민청학련 사건으로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나는 70년대 벽두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 사건에 내 심신이 흡수되는 체험과 함께 밖으로는 솔제니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면서 순수문학으로부터 참여문학에의 전신이 가능해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거사’를 준비하기 일주일 전 11월11일 일기에 “이제 나는 출항한다. 뱃머리에 서 있으리라”라고 썼다.

자실 출범 당시 ‘상임감사’로 이름을 올렸던 신경림 시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말하자면 투쟁을 앞세운 문학단체였지만,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좋은 문학을 하고 민주화에도 또 기여를 한다는 목적을 가져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좋은 문학’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은 서로 평화스럽게 서로 살아가는 길을 찾는 거”라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참다운 가치는 선(善)에 있다는 건데 착하지 않은 사람은, 문학은, 착하지 않은 마음 가지고는 못하는 거”라고 덧붙인다. 백낙청도 자실이 ‘민족문학회의’로 명칭을 바꾸는 시점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무엇보다도 훌륭한 작품의 생산에 헌신적이고, 좋은 작품과 덜 좋은 작품, 또 아주 좋지 않은 작품을 가리는 데 있어서 공명정대한 문인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음을 상기했다. 

황석영·백낙청·이호철
‘한국작가회의 40년사: 1974-2014’도 함께 펴낸 최원식 편찬위원장은 “유신체제에 일격을 가한 그분들은 투사가 아니다”면서 “약간은 해학적이기도 한 문인들의 용감한 집단 행동으로 한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가장 오묘한 승리의 마술”이라고 증언록 발간사에 썼다. 한국작가회의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22일 오후 5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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