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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박상미, 하이델베르크, 이미륵, 한나 아렌트, 괴테, 빌레머 부인, 페르케오, 시인 아이헨도르프,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1101727551&code=115

2014년 11월 10일, 주간경향, 문화평론가 박상미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당신과 사랑하고 싶은 도시 하이델베르크

이 작은 도시는 늘 학생과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대학의 도시, 철학의 도시인 이곳에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어느 골목 어느 광장에서든 차분하고 기품 있는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 칼스버그 황태자가 첫사랑에 빠지고, 괴테가 빌레머 부인과 밀회를 즐기고, 야스퍼스가 목숨 걸고 사랑을 지킨 곳이 바로 이 도시다.
오래 전부터 난 그대를 사랑했다네.
나 그대를 어머니라 부르고 영원히 노래를 바치리.
그대, 내가 아는 한
조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여!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독일 시인 횔덜린. 그가 지은 ‘하이델베르크’라는 송가의 한 구절이랍니다. 횔덜린뿐이겠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도 ‘세상 모든 다이아몬드를 뿌려놓은 듯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했지요.

‘철학자의 길’ 벤치에 앉으면 작은 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품에 안을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히는 하이델베르크. 5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저는 하이델베르크를 예찬한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의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춘 이곳은 예술가들의 가슴에 서정의 불을 지피고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었지요. 독일 철학의 대들보들이 이 작은 도시에서 배출되었다는 건 전혀 우연이 아닐 거예요. 이 땅의 신비로운 기운에 취한 법학도 슈만은 음악가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지요. 아, 잊을 뻔했군요.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한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도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의대에서 2년간 공부했어요. 1923년의 일이니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었겠지요. 당신도 어쩌면 독일 영화 <하이델베르크와 사랑에 빠지다>와 <황태자의 첫사랑>을 통해서 낭만적인 하이델베르크의 거리를 한 번쯤 엿보기도 했을 거예요. 오늘은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차분하고 기품 있는 대학의 도시, 철학의 도시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합니다. 시내에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 대학가로 가보죠. 646년 전, 그러니까 1368년 선제후 루프레흐트1세가 세운 독일 최초의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80개국에서 온 3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이에요. 박사과정 학생의 30%가 외국인이니, 이 작은 도시는 학생과 외국인으로 북적이지요. 대학의 도시, 철학의 도시인 이곳에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어느 골목 어느 광장에서든 차분하고 기품 있는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답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동문과 교수 중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철학자, 문학인, 법조인, 신학자, 과학자가 많습니다. 철학자 포이에르바하, 작곡가 슈만, 소설가 장 파울, ‘심리학의 아버지’ 빌헬름 분트, ‘물리학의 아버지’ 조지아 깁스, 대륙이동설을 주장한 알프레트 베게너, 주기율표를 만든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한나 아렌트…. 이처럼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공부했고 헤겔, 막스 베버, 가다머, 야스퍼스, 하버마스와 같은 석학들이 교수로 재직했지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베르트 자크만, 하랄트 추어 하우젠 교수는 오늘도 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한나 아렌트 영화 포스터.
대학 도서관에서 만난 한나 아렌트문득 그들을 모두 세계적인 인물로 우뚝 서게 만들었을 학문과 예술의 요람인 대학 도서관이 궁금하지 않나요? 한나 아렌트가 자주 찾았다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손때 묻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열람실 가장자리의 빈 의자를 골라서 앉아 봅니다. 한나 아렌트도 이 자리에 한 번쯤은 앉아 깊은 사색에 젖었으리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네요.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 특파원 시절, 나치 친위대 대령 아돌프 아이히만의 국제 전범재판을 직접 참관해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했지요. “나는 나치 친위대 장교로서 단지 상부의 명령을 받고 청소했을 뿐이다. 나는 저 신 앞에서는 유죄지만 이 법정에서는 무죄다. 군인 신분으로서 충성한 게 무슨 잘못인가.”

‘살인은 업무’에 불과했다는 얘기지요. 아이히만의 이 당당한 최후진술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건 당연했구요. 한나 아렌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그녀는 사형까지의 재판과정을 기록한 <예루살렘에서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대로 산 것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죄다.”

영화 <한나 아렌트>의 마지막 장면,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자신이 주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선의든 악의든 의도 없이 단지 명령에만 복종했을 뿐이라구요? 이 전형적인 나치의 항변으로 거대한 악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었어요. 사람이기를 거부한 행위였어요. 저는 이런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아렌트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제자였습니다.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를 떠나서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해온 후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이곳에서 썼어요. 하이데거와 그녀가 오랜 시간 불륜관계였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비난을 받기도 했답니다. 예리한 비판과 지성으로 무장한 그녀에게도 사랑의 감정만큼은 이성의 통제가 안 되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문제학생’들을 감금했던 ‘학생감옥’ 건물.

‘문제아’들을 수감했다는 ‘학생감옥’도서관에서 나온 우리는 ‘학생감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하우프트 거리의 골목 안 아담한 3층 건물이 학생들을 감금시켰던 감옥이라니 웃음부터 나는군요. 저 팻말 좀 보세요. 감옥 안에서 학생이 그린 그림을 옮겨놓은 것이랍니다. 1712~1914년까지 독일의 대학은 치외법권 지역이었고, 학생이 저지른 경범죄는 경찰이 일절 간섭하지 않고 학교가 대신 학생을 벌하도록 했다네요. 학생감옥에 수용된 학생들은 3일째까지는 물과 빵만 먹어야 하고 수업도 받을 수 없었구요. 4일째부터는 사식도 허용되고 학교와 연결된 통로로 이동해서 수업에도 참가할 수 있었답니다. 학생들은 감옥 시절 얘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기도 했다는군요. 대학시절의 특별한 추억거리 중 하나였다는 학생감옥은 내부도 재미있답니다. 방에는 침대와 책상만 달랑 있고 벽은 푸념부터 비장한 내용까지 온통 낙서로 가득하네요. 1712년부터 1914년까지 운영되었고, ‘문제아’들은 보통 2주에서 최장 4주까지 수감생활을 했다고 해요. 자화상, 일기 등 벽을 가득 채운 낙서가 재미있어서 다 읽자면 여기서 해가 저물고 말겠어요.

황태자의 첫사랑, 그리고 괴테의 밀회장대한 성령의 교회를 지나서 마르크트 광장에 들어서니, 야외 카페에서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연인들을 만나게 되는군요. 이 작은 마을이 세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이 큰 몫을 했지요. 영화를 추억하며 우리도 잠시 앉았다 가기로 합니다. 결혼을 앞둔 칼스버그의 황태자는 약혼녀가 원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배우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로 와서 하숙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만 그 하숙집의 예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신입생들이 선배들 앞에서 맥주를 원샷~ 하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전통 신고식을 치르느라 황태자가 맥주를 들이킬 때 울려 퍼지는 합창 ‘축배의 노래 Drink! Drink! Drink!’ 그리고 케이티와 첫 데이트를 할 때 부르는 세레나데!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의 로맨스 코미디 뮤지컬로는 하이델베르크를 5할도 표현할 수 없답니다. 우리는 이제 괴테를 만나러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야 합니다. 케이블카나 등산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숲속의 돌계단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다면 ‘미로찾기’처럼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표지판을 잘 따라가면 어느새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성에 도착한답니다. 괴테는 생전에 하이델베르크에 여덟 번 방문했다고 해요. 빌레머 부인과의 밀회를 위해서였죠.

“당신이 달이라면 나는 태양… 우리의 사랑과 만남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왔던 이 구절은 괴테가 실제로 빌레머 부인을 사랑하면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문장이라고 하지요. 괴테의 시 <은행나무>는 괴테가 하이델베르크에 머물 때 쓴 시라고 해요. 은행나무 잎을 보면 이파리 끝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어요. 그 이파리 모양에 빗대어 묘사한 시로 사랑을 얻은 그의 시를 한 번 읽어볼까요?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에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지/ 둘로 나누어진 한 생명체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대는 내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둘임을’

‘철학자의 길’로 올라가는 작은 길.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그녀를 연모하는 심정을 담은 ‘서동시집’을 내기도 했어요. 폰 빌레머는 남편 몰래 36살이나 연상인 괴테와의 밀회를 즐기는 대범한 여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답니다. 괴테는 빌레머의 시를 손질해 자기 시집에 수록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

하이델베르크 성 입구에 있는 ‘엘리자베스의 문’에는 그들이 남긴 시구가 새겨져 있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1214년에 지어졌는데 30년 전쟁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크게 훼손되어 지금까지 조금씩 복원되고 있지요. 하이델베르크 성의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포도주통이 있답니다. 이 술통의 높이는 약 7m, 폭은 약 8.5m나 되지요. 거대한 술통 옆에는 페르케오의 목상이 서 있어요. 페르케오는 15년 동안 날마다 18ℓ의 포도주를 마시고도 80세까지 장수했답니다. 그런데 의사가 알코올 중독을 경고하며 금주령을 내리자 바로 다음날 그만 사망했다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들은 슬픈 이야기 중 하나였어요.

절대 고독의 비밀통로를 엿보다자, 이제 전망대로 나오세요. 하이델베르크의 풍경이 훤히 다 보이는 곳이에요. 유유히 흐르는 하이델베르크의 젖줄 네카강이 보여요. 강 건너 네카 강변의 숲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빌라들 중에는 ‘막스 베버 하우스’도 보이는군요. 그 산 중턱에 오늘 우리가 반드시 걸어야 할 ‘철학자의 길’이 있답니다. 우리는 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서 헤겔, 야스퍼스, 휠덜린이 자주 산책한 그 길을 찾아 가볼까요?

네카는 켈트족이 기원전 400년에 지은 이름으로 ‘야생의 남자’라는 뜻이에요. 여러 차례 홍수로 애를 먹었던 하이델베르크에 어울리는 재밌는 이름이지요. 다리 위에는 건축가 칼 테오도르의 동상과 그의 지혜를 찬미하기 위한 미네르바 여신상이 있어요. 다리를 건너 주택가 쪽으로 접어들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오솔길 하나가 나타납니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사색에 잠겨 거닐었다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왜 그들이 이 산책로를 사랑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답니다. 오직 나 혼자만의 사색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절대 고독의 비밀통로’를 엿보는 느낌이랄까요?

독일의 유명한 작가들은 하이델베르크에 잠시라도 살거나 자주 여행을 왔다고 합니다. 철학자의 길에서 해가 잘 비치는 양지 바른 지점에는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시인 아이헨도르프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늘 꿈꾸는 것들에는 노래가 잠자고 있다네.
그 마법의 단어를 찾는 날엔 온 세계가 노래를 부를 거라네.”


하이델베르크대학 캠퍼스 중의 하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야스퍼스철학자의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하이델베르크 송가를 지은 시인 횔덜린을 기리는 석조물도 만나게 됩니다. 이제 벤치에 앉아서 하이델베르크 시내의 전경을 바라봅니다. 좀전에 다녀온 강 건너 하이델베르크 성이 잘 보이죠? 이 작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품에 안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자리, 철학자의 길에 있는 벤치랍니다. 이 길을 걷고, 또 이 벤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겼을 수많은 철학자 가운데 야스퍼스 얘기를 할까 해요. 그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원래 의학을 전공한 야스퍼스는 30세 때 <일반 정신병리학>이라는 저서를 내서 정신병리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선 사람이었어요. 친구 에른스트 마이어의 누이인 거트루트와 결혼해 하이델베르크대학의 교수도 되지요. 그런데 아내 거트루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려서 이혼을 강요당합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망설임 없이 아내를 선택하고 대학교수직을 버리지요. 그는 자기가 체포되어 사형당하면 반드시 아내와 함께 묻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해요. 훗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은 그에게 최고 대우를 제의하며 복직을 허락하지만, 그는 아내를 괴롭혔던 독일을 버리고 스위스 바젤대학으로 떠납니다. 고난 속에서도 목숨 걸고 지켜낸 사랑! 인간에 대한 이해와 깊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한 철학자였습니다. 야스퍼스는 아내의 90번째 생일에 눈을 감아요.

지금 강 건너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에 저녁노을이 내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곳에 괴테가 남긴 문장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야스퍼스의 임종을 지켜보며 아내 거트루트 또한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

<하이델베르크 | 글·사진 박상미 문화평론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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