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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구본권 기자--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digital literacy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4771

2014년 11월 20일 오마이뉴스 정은균 씨 서평



아침에 출근하면 맨 먼저 학교 내부 통신망에 접속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왕따'가 된다. 학교 일정 변동이나 업무 처리 관련 정보들이 이곳을 통해 오가기 때문이다. 메신저 쪽지들의 대다수는 동료 교사들이 전날 하교 무렵이나 이른 아침에 보낸 것들이다. 가끔 발송 시각이 한밤중인 것도 있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네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으로 시끄러웠던 2000년대 초반이 떠오른다. 당시 교육 당국은 네이스 도입의 주요 명분으로 행정 효율성 증진 및 잡무 경감과 같은 이점을 들었다. 지금 네이스는 교사들에게 단단한 '족쇄'가 되어 있다. 접속을 게을리해 공문 처리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불성실한 교사로 낙인 찍힌다.

프라이버시 종말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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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 어크로스
학교 내부 통신망이나 네이스는 디지털 기술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그것이 삶에 풍요와 여유로움을 가져다줄 줄 알았다. '외뇌'와도 같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손에 뇌를 들고 다니며 곳곳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면 세상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고, 다른 사람들과 보다 긴밀히 소통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과연 그럴까.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구본권 소장은 이 책에서 '디지털 문법'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프라이버시의 종말과 감시 사회, 디지털 리터러시에 얽힌 쟁점들이 그것이다. 디지털이 보편화한 시대에 우리 자신의 격을 높이는 새로운 '디지털 신언서판'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저자의 주요 관심사다.

저자가 가진 문제 의식의 핵심은 간명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세계는 편리하다. 하지만 그 '문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의도치 않게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마치 양날의 칼과 같다. 저자의 집필 의도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아니다. 사용자 자신이 어떤 특성의 기술과 기기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좀처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스마트폰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가장 이해가 부족한 기기다. ...(기자-디지털 전문가와 일반 사용자의) 진짜 차이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지닌 이들일수록 기술이 지닌 편의와 위험성을 동시에 알고, 조심스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는 점이었다. ('프롤로그'에서)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온라인에서 프라이버시 붕괴의 전도사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는 그의 말은 노출이 대세인 디지털 시대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2011년 12월 페이스북 계정에서 비공개로 설정해 놓은 사적 사진들이 제3자에 의해 공개되면서 수모를 겪는다. "저커버그 가족조차 페이스북의 복잡한 프라이버시 설정의 덫에 걸려 넘어졌다"는 언론의 조롱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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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화면. 디지털 시대의 SNS, 편리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만만치 않다.
ⓒ 페이스북

"컴퓨터 다루는 것은 치약 짜는 일만큼 쉬워"

미국 IT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 한복판에는 컴퓨터나 스크린보드, 빔 프로젝터 등 멀티미디어 기기가 단 한 대도 없는 퍼닌슐라 발도르프 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 학부모의 75%는 구글, 애플, 야후, 이베이, 휼렛 패커드 등 정보기술 산업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이 학교는 컴퓨터가 창의적 사고, 인간 교류, 주의력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교육에 활용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면서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어릴 때 컴퓨터를 안 배우면 디지털 시대에 뒤진다고 하는데,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치약을 짜는 일만큼이나 쉽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새 세상을 연 스티브 잡스가 자녀들에게 아이패드 같은 첨단 디지털 기기 사용을 허락하지 않은 점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잡스가 의심할 바 없는 디지털 예찬론자일 것임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 모두가 디지털 시대의 자녀 양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 책에 따르면 2014년 3월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67.5%)다. 최첨단 엘티이(LTE) 가입자도 300만 명을 넘었고, 이 또한 세계 1위 수준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IT제품의 시험장(테스트베드)으로 불리는 '얼리 어답터 국가'라고 말한다. 기술과 제품이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하지 않는 우리 문화 덕분이 아니겠느냐는 저자의 분석에서 그 배경 요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없을까.

기술의 중립성을 고민하는 기술 철학에서는 기술의 편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살인자는 총이 아니라 총을 쏜 사람이지만 사실 총 자체가 생명을 죽이는 쪽으로 편향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용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에 대해 그 기술적 특징, 즉 편향성을 이해해야 한다. (210~211쪽)

저자에 의하면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을 없앤 연결 도구이자 늘 접속돼 있어야 더 많은 정보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개인별 휴대화 상호 작용의 기술로 삭제하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한다.

저자는 인터넷이 갖는 이와 같은 구조·기능상의 편향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이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어리석게 만드는가를 따지는 일은 그 뒤에 해도 무방하다. "디지털 기술은 객체가 아니라 목적을 띤 시스템이다. 그것은 목적을 품고 행동한다"라는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디지털의 멀티태스킹, 착시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놀라운 성과 중 하나로 '멀티태스킹'을 꼽는 이들이 많다. 저자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이 말이 '착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가령 컴퓨터 다중 작업 처리의 경우, 동시에 다양한 연산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1초에 수천 번씩 여러 프로세스를 오가며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동시' 작업처럼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자 퍼트리샤 그린필드의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그린필드는 2009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 기술이 인지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미국 코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 시간에 그 절반은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학생은 컴퓨터를 전혀 쓰지 못하게 했다. 그 뒤 시험을 치르자 인터넷을 사용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린필드는 화면 미디어 사용이 공간 인지 능력을 개선했지만 추상적 어휘나 반성, 비판적 사고, 상상력 등과 같은 고도의 인지 구조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인간의 사고가 '얄팍'해졌다"라는 것으로 바꿔 표현한다. 멀티태스킹이 주의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업무 간의 전환 비용을 높여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장점이나 능력의 상징처럼 보이는 멀티태스킹이 실제로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정교하고 다양한 필터를 통해 정보를 걸러내고 각종 자동화 기술, 멀티태스킹과 푸시 알림 기술로 업무 처리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인류에게 시간적 여백을 가져다준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다. 시간의 여백을 가능하게 하고 여유로움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를 받은 기술들이었지만 그 기술들로 인해 확보된 시간이 여유로움 대신 새로운 분주함과 수고로움으로 채워지고 있다. (276쪽)

우리 뇌에는 '휴지 상태 네트워크' 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로 명명되는 부위가 있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가 2001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알려진 이 부위는 우리가 눈을 감고 누워 가만히 쉴 때 활성화된다고 한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데 뇌에 불이 켜지는 것일까.

우리가 쉴 때 활성화되는 휴지 상태 네트워크는 평소 인지 과제 수행 중에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뇌의 각 부위를 연결해준다고 한다. 스웨덴 출신의 뇌 과학자 앤드류 스마트는 이때 창의성과 통찰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발견이나 창의성은 뇌가 전체적으로 잔뜩 긴장하는 멀티태스킹 상태에서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휴식하는 상태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자녀들에게 함부로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한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 보자. 미국의 내로라하는 디지털 전문가들이 자녀를 컴퓨터 하나 없는 학교에 보내는 까닭도 찬찬히 되새겨볼 일이다.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걱정하며 '컴맹'으로 살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격을 높이는 새로운 디지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기준은 확실하게 세워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을, 사람과 디지털이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침서로 적극 추천하는 이유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4. 10. 10. / 351쪽 /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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