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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6-1, 입시, 학벌사회 풍토, 영유아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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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한국일보 변태섭 기자 보도


"오전엔 영어유치원, 오후엔 학원" 영유아부터 쳇바퀴 돌 듯
"옹알이 과외까지" 말 나돌 정도, 초등생이 고교 수학 선행학습
아이들에 불안·우울증 유발 가능성, 자기주도 학습능력도 떨어뜨려
서울 강남의 한 영어학원에서 유아들이 미국 교과서를 보고 있다. '교육특구'로 통하는 강남 3구에서는 '초등학교 졸업 이전에 영어를 끝내고 이후에는 수학으로 입시에서 승부한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hk.co.kr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모(5)양은 초등학교 입학 전이지만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낸다. 지난해부터 다닌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오전 수업이 끝나면 곧장 다른 학원으로 향한다. 월요일은 사고력 수학, 화요일 수영, 수요일 발레, 목요일 미술ㆍ영어 원어민 1대1 대화, 금요일 한글 학원에 다니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4시가 넘는다. 주말에는 견학 목적으로 부모와 미술관, 박물관을 찾는다. 김양의 어머니(36)는 “외국어 교육이 특화된 사립초등학교 보내는 게 목표인데 그 곳에서 기죽지 않고 잘 하려면 영어는 기본이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며 “어떤 학원 수업을 더 늘려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달 190만원 영유아 영어학원 성행
학교 서열이 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는 영유아 때부터 시작된다. 사립초→국제중→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보내려는 부모의 기대와 줄 세우기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이 뒤엉켜 어린이를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때문에 학교는 배움터라기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펙 쌓기 경쟁은 ‘옹알이 과외까지 시킨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며 “중ㆍ고교까지 계속 되는 경쟁은 영유아 영어학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12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전국 영유아 영어학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2012년 225곳에서 올해 3월 306곳으로 2년만에 81곳(36%)이 늘었다.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에만 197개(64.4%)가 몰려있다. 한 달 수강료가 가장 비싼 곳은 서울 강남구 G어학원으로 190만원에 달한다. 우리말도 서툰 3세 유아반을 운영하거나, 연계 학습효과를 위해 학부모 영어면접을 보는 곳도 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박모(35)씨는 일반 유치원에 다니던 6살 딸을 지난해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으로 옮겼다. 알파벳조차 몰랐던 딸은 영어학원 가길 싫어했고, 학원에 다닌 지 1주일쯤에는 갑자기 구토도 했다. 박씨는 “학원 초기 딸이 받는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주변 엄마들은 이르면 세 살 때부터 영어학원에 보내는 실정이라 계속 일반 유치원에 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2012년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영유아 보육ㆍ교육 비용 추정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의 보육ㆍ교육비 규모는 5조9,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2012년 고교생 사교육비 5조1,679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이전에는 영유아에게 미술과 음악을 주로 시켰지만 지금은 영어가 기본이고 음악, 체육, 미술을 보조로 가르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상급학교로 이어지는 스펙 쌓기
영어로 시작된 스펙 쌓기는 초교 입학 후 상급학교 입시에 맞춰 진행된다. 자기소개서에 쓸 각종 경시대회ㆍ봉사활동 참가 실적과 면접평가에 대비한 선행학습이 주로 이뤄진다. 수행평가를 위한 하모니카, 줄넘기, 농구, 리코더 과외까지 받을 정도다. 서울의 한 사립초 5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선행학습을 포함한 각종 스펙 관리는 좋은 상급학교에 보내기 위한 안심보험”이라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는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명문대를 ‘엘리트 코스’, 일반 유치원ㆍ영어학원 혼합→일반초(어학연수 2,3년 포함)→일반중→특목고→명문대를 ‘리더 코스’로 부르며 해외연수, 선행학습 등을 노골적으로 부추긴다. 서울 강남구의 P학원은 고3과정인 화학Ⅱ를 초교 6학년에게, 강서구 C학원은 대학 2학년 때 배우는 정수론을 중학생에게 가르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교 6학년 강모(13)양은 이미 중학교 과정의 수학을 다 배웠다. 최근에는 ‘수학의 정석’ 기본편으로 고교 수학을 공부한다. 매주 월, 금요일엔 오후 2시30분 하교한 뒤 오후 4시부터 5시간 동안 이어지는 수학학원 수업을 듣는다. 집에 오면 밤 10시. 학교ㆍ학원 과제를 하고 오후 11시 넘어 잠자리에 든다. 어머니 박모(45)씨는 “선행학습을 1년 늦게 시작해 진도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라며 “동년배 다른 아이들은 수학의 정석 심화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고 진학이 목표인 강양은 초교 5학년 때부터 수학 선행학습을 받았다. 각각 주2회씩인 영어, 수학 학원과 토요일 과학 학원비를 합한 총 비용은 매달 90만~100만원이다. 박씨는 “아이가 조금 힘들어하지만 과학고에 입학하기 위해선 중학교 때 대학 수준의 물리ㆍ화학은 떼야 하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계속 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대원국제중 학부모 이모씨는 “미리 공부를 해야 입시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1학년생인 아이도 현재 학원에서 고교 수학Ⅱ를 배우고 있다. 기악 경연, 영어올림피아드, 각종 웅변ㆍ글짓기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입ㆍ학벌사회 풍토부터 개선돼야
영유아부터 시작된 스펙 경쟁의 문제점에 대해 학부모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2011년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8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영유아 사교육이 지역ㆍ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95.4%)거나 ‘과열되었다’(98.7%)고 답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영유아 스펙 경쟁의 원인으로는 ‘입시위주 교육에 편승하려는 것’(37.4%)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부모의 경쟁심리(30.8%), 미흡한 영유아 공교육ㆍ보육제도(16.7%)의 순이었다.
국제영어교사자격증(TESOL)을 갖고 있는 영어교사 이모(41)씨는 “조기 영어교육은 사고를 확장하고, 표현하는 것을 방해해 오히려 정상적인 언어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스펙 쌓기가 영유아의 불안과 우울증, 애착장애 등 다양한 정신병리학적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출산 기피, 위화감 조성 등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한다.
하지만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설문에서 학부모의 60%는 유아 사교육ㆍ스펙 쌓기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선임연구원은 “공교육이 모든 계층과 분야를 아우르지 못하는 데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송정 연구위원은 “대학 입시제도와 학벌 위주 사회의 풍토가 개선되고, 능력 중심의 기업채용 방식 전환 등이 선행돼야 학부모의 인식도 비로소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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