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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5일 목요일

군산 지곡동 착한동네, 박훈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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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지곡동에 위치한 ‘착한동네’를 방문한 날, 눈이 많이 내렸다. 흐린 하늘과 내리는 눈 사이로 겹쳐 보이는 노란색 건물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외벽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는 살포시 떨어지는 눈의 움직임과 어울리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눈, 노란색 건물, 잔잔한 음악의 조합은 여행지를 방문한 듯한 심상을 심어주었다.

목조건물로 지어진 ‘착한동네’의 입구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나무받침이 몸의 무게를 받아내는 소리를 나직하게 뽑아냈다. 나직한 소리 안에는 이미 동네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파란 나무를 연상시키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려하게 반짝이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건물의 내부도 외관 못지않게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기는 남성이 커피를 내리다말고 입구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제가 착한동네 박훈서 대표입니다.”

박 대표는 착한동네 건물 뒤편에 자리한 ‘행복한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다. 9년 동안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5년 전 아무 연고 없는 군산에 정착하게 됐다. “군산에 정착하기 전, 교회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삼천 만원을 사기 당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공사도 마무리하고 승합차도 새로 마련했는데 교회 앞에 주차해 둔 차량을 전문털이범에게 도난당하는 사건까지 경험했지요.” 이런 큰일을 겪고 나니 군산을 떠나고 싶어졌다. 동네도 싫고,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마음이 어려워 몇날며칠을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예배당에서 내려와 거울 앞에 선 박 대표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정돈되지 않고 수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는데 하얀 코털 한 가닥이 쭉 내려와 윗입술 경계까지 닿아있는 거예요. ‘아, 내게 코털이 있었구나!’ 그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며 깨달음이 왔죠.”

그 후 박 대표는 코털의 기능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폐물을 걸러내고 코의 습도를 유지하는 등 코털은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몸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창조된 것 가운데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이 이어졌다. “의외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 청소년,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내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다’라는 박탈감을 안고 있고 미래에 대한 큰 포부나 목표가 없는 상태였어요. 이들을 어떻게 격려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각자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눔’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착한동네’를 시작하게 됐죠.”

도서관, 갤러리, 카페가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 ‘착한동네’는 2013년 12월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도서관이 시작이었다. “제가 중국에서 다문화가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알아서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다문화가정을 위한 이동도서관을 기획했었는데 시청과 조율이 되지 않아 실행하지 못하고 지금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습니다.” 현재는 깔끔한 서가와 빼곡하게 쌓인 책들로 도서관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처음 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신문이나 파지를 모았죠. 그렇게 폐지를 모아서 1년에 네 권, 다섯 권 책을 샀어요. 지금이야 이웃들이 기증도하고 카페 수익금으로 구매를 해서 많은 책이 준비되었지만 처음에는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모은 책이에요. 도서관 곳곳에 눈물 서려있는 사연이 많지요.” 박 대표는 초심을 버리지 않기 위해 여전히 신문이나 파지를 팔아 남긴 돈으로 책을 구매한다. 어렵게 모은 소중한 책이지만 도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섬 마을에 도서관의 책을 기증하고 있다.


 카페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는 무지개 작은 도서관은 주민들 스스로 만든 강좌와 음악회,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화장품 제조, 냅킨아트, 책놀이터 등 다양한 강좌가 동네 이웃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카페의 한쪽 벽은 접이식 나무판으로 닫혀 있지만 영화 상영이나 음악회가 열리면 나무판이 오른쪽으로 겹겹이 접히며 멋진 복합 공간이 탄생한다. “다양한 강좌를 진행하는 공간으로도 도서관이 활용되고 있지만 방학기간을 이용해 멘토링 스쿨을 진행하고 싶어요.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지식과 언어의 유희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데까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이웃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렇게 우리 동네만의 역사가 만들어지며 좋은 꿈과 뜻이 이루어지는 것. 박 대표가 꿈꾸는 ‘착한동네’의 모습이었다. “독일의 한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소극장하고 도서관이 너무 잘돼있었어요. 그렇게 자기 동네만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저는 거기서 의미와 기쁨을 발견했어요. ‘군산은 낙후되었다. 지방이다’ 낙심하지 않고 우리 이웃들이 공동체의 규모는 작아도 아름다운 꿈과 뜻을 실현할 수 있는, 단순히 책을 읽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책을 살아보게 만드는 프로그램과 강의 등으로 도서관이 더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착한동네만의 독특한 특징이 하나 더 있다면 미리내운동을 하는 미리내가게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위해 미리 내는 겁니다. 커피나 차를 마시고 내가 마신 음료의 금액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메뉴의 금액이나 거스름돈을 자유롭게 미리 지불하고 다음에 오는 누군가가 해당금액만큼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환경미화원, 집배원, 택배기사 분께 미리내 쿠폰을 제공했고 ‘나눔의 습관이 곧 사랑의 습관입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먼저 미리내운동을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자기반 여자친구한테 숫기가 없어 말은 못하고 ‘ooo오면 이거 주세요’ 하며 미리내더라고요. 그 이후에 어른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죠.”

전국의 미리내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지점주마다 특징이 있지만 착한동네는 거스름돈, 잔돈으로 모아진 금액을 독거 어르신, 미혼모가정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묵은 빨래, 두꺼운 이불을 세탁해 드리기도 하고 매주 반찬을 사들고 찾아가 안부를 묻기도 한다. 효도나눔미리내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섬기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반찬을 만들어와 건네기도 하고 세탁소 사장님은 세탁비용을 50% 할인 해주는 등 이웃들이 나눔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영어학원 원장님도 일부 금액만 받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로 했어요. 미장원, 영화관, 치킨집 등 지역 소상공인들이 착한 네트워크를 넓혀가는데 동참해서 ‘착한동네’가 건물 이름이 아니라 우리동네 이름이 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작은 나눔이지만 사람들의 참여가 곰비임비 일어나 큰 변화가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이라는 단어는 역설적이다. 결정적인 변화는 이렇게 작은 일들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작은 꿈’을 꾸는 자들이 많아지길, 전국 방방 곳곳 ‘착한동네’가 생겨나길, 새해를 시작하며 작은 소망이지만 큰 가능성을 마음에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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