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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수요일

김재인, 안티 오이디푸스, 들뢰즈, 과타리, 천 개의 고원, 들뢰즈 커넥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62115235&code=960201

2015년 1월 6일,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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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원서 500여쪽 꼬박 10년 동안 번역했는데
원고료는 단 330만원… 재능기부로 우스갯소리 듣는 그


▲ 난해하기로 유명한 들뢰즈에 매달리는 까닭은
어떻게 살아갈지 실천적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


프랑스어 원서 500여쪽, 한글본으로는 700여쪽. 책 한 권을 꼬박 10년 동안 번역했다. 원고료는 세전 단 330만원. 한국연구재단과 대학 내 업적 평가에서 업적 점수는 0점.

‘재능기부’ ‘사회봉사’라고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일에 왜 10년 동안 매달렸을까. 들뢰즈·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민음사)를 번역한 김재인 박사(46·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야기다. 김 박사는 “출판사와의 계약 내용도 부당하지 않고, 인세도 제 시기에 잘 줬다. 한국 인문출판의 가장 좋은 조건에서 번역본을 출판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10년 번역 원고료를 330만원밖에 받을 수 없는 게 한국 학술 출판의 생생한 현주소다. 김 박사를 지난 2일 서울대 인문대학에서 만났다.


사진 김영민 기자

<안티 오이디푸스> 출간은 1994년 최명관 숭실대 명예교수가 <앙띠 오이디푸스>(민음사)를 번역한 지 20년 만이다. 김 박사는 이 책과 관련된 마르크스, 니체 등의 저작을 참고해 적절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앙띠 오이디푸스’로 알려진 책 제목도 희랍어 발음을 살려 ‘안티 오이디푸스’로, 철학자 가타리도 국제학술대회에서 통용되는 ‘과타리’란 이름으로 바로잡으려 했다.

김 박사는 2001년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새물결)도 번역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들뢰즈의 두 저서를 번역해낸 그는 당시 “생전에는 이 책 번역이 마지막일 것 같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2007년 초역을 완성했지만 계속 수정했다. 역자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독자들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책 출간이 미뤄졌다.

들뢰즈 책 번역에 이렇게 매달릴 수 있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들뢰즈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은 쉬운데 세 문장을 연결해놓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시를 읽는 것처럼 문장 사이를 연결시키고나면 새로운 깨달음의 국면이 펼쳐지는 경험을 하죠.” 서양철학사의 거의 모든 개념과 논쟁거리가 쪽마다 포함돼 있다고 할 정도로 난해한 책이었다. 서양어로 된 개념의 미묘한 뉘앙스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학계 상황에서 김 박사는 25년 공부한 내용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들뢰즈는 1972년 <안티 오이디푸스>를, 1980년 <천개의 고원>을 펴냈다. 김 박사는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9년 프랑스에 나타난 세계자본주의의 징후가 1997년 외환위기,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고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이 ‘20세기 자본론’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들뢰즈가 말하는 ‘자기 예속의 삶’에 대해 “부채 때문”이라고 말했다. “옛날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면 요즘은 반대로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지는 사람들이 있죠. 학자금, 전세금, 주택자금 대출 등 빚은 계속 늘어나고 평생 일해야 그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회사에 가야 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감옥에 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전 세계인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죠.”

그가 들뢰즈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란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 등의 들뢰즈 번역에 문제제기를 해온 것도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듯이 들뢰즈를 목가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결단하라는 사상가를 진통제 정도로 탈바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김 박사는 논술학원 운영자 출신이다. 서른 무렵 그는 외부 장학금 같은 지원금에 의존해서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돈을 준 사람이 원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구조이고, 내 얘기를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5년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18년 만인 2013년 2월 학위를 취득했다. 논술학원을 운영하던 10년의 시간이 동시에 박사 논문을 쓰는 기간이었다.

올해 그의 다짐은 새롭다. 대안 인문학공동체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를 하는데 이 강의록을 책으로 낼 계획이다. 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 언론, 대학과 관련한 책도 쓸 생각이다. 후학들을 기르는 것도 꿈이다. 대안연구공동체든, 대학이든, 어디서든 앞으로 공부할 학자들을 만나 함께 성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철학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래도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을 하는 것은 철학을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무용함’일 수 있겠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가 할 수 있는 실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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