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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정태인, 우리 아이만 살릴 길은 없다, 우리 아이들 모두를 살릴 길만 존재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52059305&code=990308

[정동칼럼]왜 정치가 문제인가?

내가 언제부터 ‘정동칼럼’에 등장했지? 인터넷 경향신문을 검색해보니 2012년 11월부터 썼고 이 글이 서른여섯 번째다. 온갖 주제를 다뤘지만, 어쩔 수 없이 경제 정세나 정책에 관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변명의 여지 없는 무능력 탓에 독자들께 명쾌한 진단도, 시원한 답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울 뿐이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과거와 같은 성장이 이젠 불가능하다는 말을 지겹도록 되풀이했다. 세계적으로 수출주도전략(동아시아 국가나 유럽의 독일)과 부채주도전략(미국이나 남유럽)이 짝을 이뤄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체제는 이미 끝났다. 한국의 경우엔 밖으론 수출을 늘리고 안에선 투기와 부채를 부추기는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이 불가능해졌다.

하여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가 경제학계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말 그대로 백명의 학자가 백가지 얘기를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인구 고령화, 기술혁신의 지체(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모두 단기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지만 그래도 불평등의 시정이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마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세기 초중반의 대공황과 전쟁, 최고 소득세율 90%에 이르는 부자증세가 이런 극적인 평등 개혁을 이뤄냈을 뿐이다.

과거의 체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데도 과거의 지배계급이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위기를 빌미로 과거의 체제가 더 공고해진다면 그 사회는 마비를 거쳐 붕괴에 이르고 말 것이다. 지금 세계와 한국이 꼭 그렇다. 

시장은 이런 체제 위기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시장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부드럽게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체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동할 때뿐이며, 그 범위를 넘어서면 시장은 오히려 사회를 붕괴시키는 쪽으로 작동하게 된다. 과거의 규범은 붕괴하고 사람들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된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그려낸 상황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총수요가 부족하고 동시에 생태위기까지 겹친 상황이다. 부와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정부 주도로 생태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사용한다면 케인스의 세상이 열릴 테지만, 지배계급 편향적인 정책을 고집한다면 바야흐로 마르크스의 상황이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주권자로서의 시민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케인스적 조정을 꾀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마르크스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자본이득세와 상속세를 통해 건설노동자와 식당종업원 가족의 복지를 늘리는 정책을 제시했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담뱃세와 연말정산을 통해 대형 건설업자와 상위 20%(서울의 경우)의 이익을 부풀리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것이 정치다. 물론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이 비웃듯 오바마의 세제개혁은 수많은 고초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시민들의 공적 토론은 바로 이 지점을 둘러싸고 전개될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의 희망인 민주주의는, 자본에 의한 관료의 포획, 정당의 관료화에 의해 질식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시민이 민주주의를 부활시켜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의 모델을 보여줄 것인가? 정당이 지금처럼 제대로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또다시 광장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우리 아이만 살릴 길은 없다, 우리 아이들 모두를 살릴 길만 존재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어쩌면 푸념처럼 되풀이했다.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가 우리의 살길이며 우리가 주권자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과의 대화가 길거리와 광장에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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