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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3일 금요일

앵거스 그레이엄, 장자/ 이학사/ 한겨레 이재성 기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8236.html?_fr=mt5

등록 : 2015.02.12 20:27수정 : 2015.02.1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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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몽(蒙) 지역 사람이다. 이름은 주(周)이다. 그는 한때 옻나무 정원의 관리였다. 그는 양나라의 혜왕(기원전 370~319 재위)과 제나라의 선왕(기원전 319~301 재위)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몽은 송나라, 지금의 허난성에 있는 지역이다. 영국의 중국철학 권위자 앵거스 그레이엄은 여러 저자의 글이 혼재돼 있는 ‘장자’라는 텍스트를 지층을 탐사하듯 한꺼풀씩 벗겨나간다.

중국철학 권위자 앵거스 그레이엄
‘장자’라는 텍스트에 지질학적 접근
장자학파·원시주의자·혼합주의자 등
지층별로 재구성한 역작 첫 번역

장자
앵거스 그레이엄 지음, 김경희 옮김
이학사·4만원
시중에 나와 있는 <장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원문을 소개하고 본래 뜻을 해석하는 데 충실한 책, 그리고 동서양의 다른 텍스트들을 끌어와 자신만의 사유를 풀어놓는 책. 앵거스 그레이엄의 <장자>는 논의를 횡으로 펼치지 않고 ‘장자’라는 텍스트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앞의 부류에 속하지만, 단순한 해석에 그치지 않고 종으로 파고들어 ‘장자’의 역사적 지층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영국의 중국학자로서 20세기 중국학 연구의 한 흐름을 주도한 중국철학 권위자 앵거스 그레이엄(1919~1991)의 이 책은 요즘 나오는 책처럼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한 분야를 천착한 사람의 끈기와 방대한 지식을 만날 수 있는 원석 같은 책이다. 주석과 각주를 포함해 771쪽에 이른다. 1981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됐고, 2001년 개정판이 나왔다. 장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경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가 2001년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이 국내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를 들어 공자와 노자(늙은 담)의 대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그레이엄은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이 일련의 일화들이 ‘장자’에서도 매우 늦게 형성된 지질층에 속한다는 암시들이 있다. 이 지질층은 기원전 202년 한(漢) 왕조가 건립된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다. “한 일화에서 공자는 육경(六經)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육경은 유가학파 내에서 아주 서서히 모여 경전화되었으며, 여섯이라는 수가 한대 이전에 확정됐다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장자’에 대한 그레이엄의 고고학적 접근은 후대의 저작들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장자’에 반영된 당대의 논쟁 지형을 고려해가면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 입문서로 적당할 것 같다.
영국의 중국철학 권위자 앵거스 그레이엄
특히 서론 부분은 지은이의 장자 연구를 집대성한 ‘결론 같은 서론’이다. 그레이엄은 장자를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신비주의자 윌리엄 블레이크에 비유하며 “장자는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습적 사고방식들에 애써 반항하고 있다기보다는 워낙 타고나기를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약간은 소름이 돋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고 평한다. 이어서 ‘자발성’과 ‘논리의 거부’ ‘하늘과 인간’ ‘일체화의 전망’ ‘죽음과 불구’ ‘언어’라는 열쇳말로 장자라는 텍스트를 개괄하고 장자의 구성과 번역 문제로 넘어간다.
이 책은 곽상(郭象, 312년 사망)이 33편으로 축약한 편집본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애초 간단한 메모 수준이었던 격언이나 시구, 이야기들이 “기원전 3세기 무렵에 가서야 길쭉한 대나무 조각 위에 논문 형태의 글”로 정리됐고, “그 대나무 조각들도 종이책처럼 한 권으로 제본한 것이 아니라, 그냥 끈으로 엮은 뒤 둥글게 말아 여러 개의 두루마리로 보관”했기 때문에 이후 편집과정에서 숱하게 뒤섞이고 분실됐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문체가 같고 맥락이 닿는 것들을 한데 묶어 주석을 붙이는 형태로 재편집했다. 그래도 장자(장주) 본인의 저술로 추정하는 내편(1~7편)은 순서대로 실었다.
그레이엄은 장자의 저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외편(8~22편)과 잡편(23~33편)의 경우 장자 학파와 원시주의자, 양가, 혼합주의자로 나누어 보여준다. “장자가 죽은 뒤, 조직화된 장자 학파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지만 “대체로 사상과 문체 양 방면에서 장자를 깎아내리려고 하지 않으며, 때로는 장자의 사상을 더 명쾌하고 더 직접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를 밝게 조명해주기도” 하는 글들을 장자 학파로 묶었다. 원시주의자는 ‘큰 가방 훔치기’(10편 ‘거협’) 등의 저자를 일컫는데, “원시적 유토피아가 신농(神農)을 끝으로 황제(黃帝)에 의해 몰락했다든가, 도덕군자와 범죄자는 똑같이 해롭다”는 생각을 가진 집단이다. 양가는 왕위를 양보하기(28편 ‘양왕’), 도둑 척(29편 ‘도척’), 늙은 어부(31편 ‘어부’) 등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를 쓴 집단으로 기원전 3세기 무렵에 활동한 양가학파를 말한다. 혼합주의자는 “법가에 호의적이었던 진이 몰락하고 한의 무제(기원전 140~87)가 유가를 최종적으로 채택하기까지” 번성한 다양한 종류의 절충주의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레이엄은 지금 우리가 보는 ‘장자’라는 텍스트가 이들의 손에 의해 완성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장자’의 아슬아슬한 통찰이 주는 지적 쾌감일 것이다. “그것 또한 다른 것이고, 다른 것 또한 그것이다. 저기서 그들이 어떤 한 관점에서 ‘그것이다, 아니다’를 말하면, 여기서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그것이다, 아니다’를 말한다. 그것과 다른 것은 정말로 있는 것일까? (…)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밝게 비춤이다.’”(2편 제물론)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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