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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책과 출판의 문화사' - 사해사본은 왜 항아리 속에 담겨있었을까? 두루마리 권자본과 책자본 /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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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출판의 문화사' - 사해사본은 왜 항아리 속에 담겨있었을까?
두루마리 권자본과 책자본 

<성경>을 종교적으로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에 국한된 경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세계 문명에 전례 없는 충격과 영향을 준 위대한 고전이며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다. <성경>은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한 기원전 1000년부터 400년까지 600여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그러나 <신약(그리스도 성서)> 27권, <구약(히브리 성서)> 39권으로 이루어진 <성경> 전체가 모두 기록된 원본은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이것은 <성경>이 처음부터 하나의 고정된 텍스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개최된 공의회를 통해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서사시인 '구약성서'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담은 '신약성서'는 4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정경(正經)체제가 확립되었다. 19세기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티셴도르프 교수는 평생을 성서 사본을 찾는데 바쳤다. 1844년 5월, 러시아의 한 수도원을 방문한 그는 땔감더미 속에서 양피지 43장을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이제까지 발견된 것들 중에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를 담고 있는 양피지 사본의 일부였다. 이것이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 발견의 단초가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만들어진 '시나이 사본'은 오늘날의 책과 흡사한 '코덱스(冊子本)'였다.  

1947년 봄, 베두인 목동 주마 무하메드는 양과 염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사해(死海) 북동쪽 인근 키르벳 쿰란의 절벽 기슭에 있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롯이 가족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다가 그의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었다. 잃어버린 염소를 찾기 위해 가파른 암벽을 기어오르던 소년은 자신이 서 있는 곳 바로 위에 작은 동굴이 있는 걸 발견했다.  

동굴 안에서 항아리 더미를 발견한 소년은 금은보화가 들어있길 기대했지만, 항아리 속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는 낡은 두루마리가 들어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이었다. '사해사본'은 '시나이 사본'보다 역사적으로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성서' 전부를 수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서학자들은 지난 2000년 동안 성서의 기록이 실제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해사본'은 어째서 항아리 속에 있었을까? 고대의 책은 대부분 두루마리(권자본)의 형태였다. 동양에서 책을 뜻하는 한자 '권(券)'도, 시리즈 책을 의미하는 영어 'volume'도 모두 두루마리 형태의 책이 남긴 흔적이다. 그런데 두루마리 책들은 그 형태 때문에 보관하기도 힘들고 책상 위가 아니라면 펴놓고 읽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책을 길쭉한 튜브 형태의 질그릇에 담아 보관했다.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우리가 읽는 코덱스 또는 책자본이라 부르는 네모난 종이의 한쪽을 실로 꿰맨 책의 보급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시절, 신자들은 권자본 <성경>을 네모나게 자르고 끝을 이어 붙여 아코디언 주름처럼 접었다 펼 수 있도록 책자본을 만들어 품속에 숨겨놓고 읽었던 것이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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