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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8일 수요일

[김정헌의 내 인생의 책](3) 내 이름은 빨강 - 권력과 미술, 터키의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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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몇 년 전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완전히 빠져든 적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터키라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말이다. 또한 화가들과 미술의 이야기를 어떻게 비유와 상징, 의인화를 통해 잘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빨강>에서는 빨간색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이 주인공이 돼 자기 이야기를 발화한다. 살아있는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체(死體)와 나무와 개와 나비도 자기의 독특한 목소리를 낸다. 모든 사물이 의인화되어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16세기 오스만제국 때 서양, 특히 베니스 화파의 영향을 받은 궁정 세밀화가들의 암투와 음모를 그린 소설이다. 그러니까 궁정 세밀화가들이 그리던 방법, 즉 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시각이 서양의 원근법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밀화가들 사이에 대립과 암투가 시작된다. 오스만제국에서는 원근에 따라 사물이 크고 작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나 절대 권력자가 파악한 시각과 관점에 따라 전통 세밀화의 방법이 정해졌던 것이다. 권력과 미술의 세계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빨강>이 단순한 추리소설만은 아니다. 주인공 카라와 세큐레의 불운한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오스만튀르크 시대의 풍속과 귀족의 생활, 문화, 심지어는 그 시대의 축제와 의상, 오락 장면들까지 세밀화처럼 꼼꼼하게 묘사한다. 

몇 년 전 작가 오르한 파묵이 방한했을 때 황석영 등 한국 작가들과의 저녁 자리에 같이한 적이 있다. 그의 인상은 이지적이면서도 우수가 깃들어 보였다. 그가 자서전 격인 <이스탄불>에서 묘사한 이 역사적인 도시의 표정, 슬픔, 우울, 비애, 멜랑콜리가 그의 얼굴에도 얼핏 비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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