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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6일 월요일

[김준기의 사회예술 비평](4) 거리와 마당, 뜻과 쉼이 깃드는 곳/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202104165&code=960202


ㆍ압축성장의 뜻 돌아보고, 양극화의 아픔을 나누고

공공예술작품은 제 스스로 뜻을 품을 수 있지만, 그 뜻을 나누는 것은 수용자인 시민의 체험과 사회적 담론장의 몫이다.‘한국은행 앞 분수대’는 산업화시대 압축성장의 근대성을 상징한다. 마포대교 남쪽 끝의 ‘바람의 길’은 양극화시대 고난한 삶을 끌어안고 있다. 역시 이들 작품에서 상징의 재생산, 고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주체는 시민이자 사회다.

이일영 작가의 ‘한국은행 앞 분수대’

■ 이일영의 ‘한국은행 앞 분수대’
한국 근대화의 메시지 발산


한국은행 앞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서울의 중심가였다. 조선은행과 경성우편국, 그리고 미쓰코시백화점은 각각 금융과 정보통신, 유통을 상징했다. 식민지 자본주의의 심장부였던 이곳은 오늘날 한국은행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서울중앙우체국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 시내의 몇 안되는 근대건축들이 남아 있는 이곳에 1978년 세워진 ‘한국은행 앞 분수대’는 식민지시대의 역사적 장소에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뜻을 담은 공공예술작품이다. 설계자는 이일영이다. 청와대 앞에 있는 봉황분수대를 비롯해 대전현충원 현충탑, 서울현충원 입구 분수대, 탑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등 유수의 기념비적인 공공예술작품을 만든 이다. 이 작품은 당시 최대의 조각분수대로 3억2800만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분수대의 화강암 탑신은 12m에 이른다. 주변에는 3개의 청동군상과 6개의 입상, 6점의 부조 등 15점의 조각이 있다. 8층 탑신은 팔문(숭례·흥인·숙정·돈의·혜화·광희·소의·창의문)과 팔악(관악·삼각·도봉·불암·북악·인왕·남산·낙산)을 상징한다.

탑신 주변으로 펼쳐진 3점의 대형 군상은 어머니와 아이,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여성,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인물, 망치를 들고 일하는 노동자 등으로 가족, 예술, 건설의 뜻을 담고 있다. 남녀 인물상이 교차하는 6점의 입상은 사색과 앙천의 자세로 애국·번영·충효·평화·총화·풍요를, 전통회화 모티프의 부조 6점은 봄·여름·가을·겨울과 밤·낮을 뜻한다.

서울은 옛것을 부수고 새것을 지으며 파괴와 건설을 반복하는 도시다. 한 외국인이 “이렇게 가다가는 궁전과 아파트밖에 남는 것이 없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다.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대한 존중이 드문 서울에서 그나마 이 분수대는 낡은 것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안겨준다. 이 작품에는 조국 근대화라는 1970년대의 계몽적인 서사가 담겨 있다. 건설, 전진, 역동, 사색 등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통해 그 시대 한국 사회가 지향했던 근대화의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분수대의 조각작품들은 한국 사회가 일군 압축성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럽의 고도에서 만나는 오래된 조각들은 청동의 낡은 빛을 통해 역사의 아우라를 내비친다. 하지만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한 서울은 산업화의 절정기에 만든 이 작품을 통해 근대를 추억한다. 고색창연한 녹슨 청동의 매력은 덜하지만, 나름대로 한국 근대화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피리를 부는 여인, 소고를 들고 있는 아이, 항아리를 안고 있거나 전통악기를 다루는 여인 등 한국과 서구의 전형성을 혼합한 리얼리즘 조각들은 이식과 증식의 식민문화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이다.

그런데 이 분수대는 한순간에 날아갈 뻔했다. 2005년 무렵, 명품관 새단장을 추진하던 신세계백화점이 고객들의 접근성 확보를 위해 분수대를 철거하려고 군불을 지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신세계가 시내 명물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행 앞 분수대를 노려보고 있다’며, 하마터면 기업의 이윤창출 욕망 때문에 분수대가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본의 논리는 역사를 기억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비록 백화점 앞과 분수대 주변이 마당으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이 분수대의 이름을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가 아니라 ‘한국은행 앞 분수대’로 불러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안규철 작가의 ‘바람의 길’

■ 안규철의 ‘바람의 길’
서민 삶 보듬는 꿈과 쉼의 터전


도시의 큰길에는 곧장 가는 차들과 꺾어 가는 차들을 배려하는 도로 구획으로 자투리땅이 생기곤 한다. 이른바 교통섬이다. 마포대교 남쪽 끝 여의도공원 10번 출구 앞에도 비교적 널찍한 교통섬이 있다. 그 공간에 자리잡은 안규철의 ‘바람의 길’(2010)은 빡빡한 가로 환경에 의외의 선물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유려하게 교차하는 선과 면들이 만나 미끈한 볼륨감과 공간감을 창출하는 수작이다. 여의도 한강변에서 남산 쪽을 향한 뱃머리가 날렵하다. 돛을 달고 항해하는 배를 형상화한 작품은 건조한 교차로 한편에서 담백한 휴식을 매개하는 쉼터조각이다.

사람들은 작품 위를 걸으면서 거대한 빌딩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오솔길을 떠올릴 수 있다. 비스듬한 경사면을 타고 걸어 올라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만나는 체험은 흥미롭고 뜻깊다. 몸을 움직이면서 작품을 만나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정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상학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이 내어주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한강과 남산의 풍경을 만나고, 이어 무언가 얻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는 바람(願)의 뜻을 새기며 잠시 몸과 마음을 쉬는 데에까지 다다른다. 몸으로 만나는 공공예술 ‘바람의 길’은 자투리땅 교통섬을 꿈과 쉼의 터전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기 좋고 들러보기 편한 쉼터조각이라는 평가 이상의 맥락에 둘러싸여 있다. ‘바람의 길’은 마포대교 길목에 자리한다. 이 점은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각별히 신중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마포대교는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예방 차원에서 이뤄진 공익광고 ‘생명의 다리’는 공공장소에서의 시각적 표현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공동기획하고, 제일기획이 제작한 이 프로젝트는 사람이 난간에 접근하면 불이 켜지면서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문구가 보이게 했다. 제일기획은 ‘쌍방향 스토리텔링 다리’를 기획한 것으로 칭찬받으며 국제적인 광고제 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이전에 비해 자살 시도가 6배나 증가했다. 2014년 한 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5.3명이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이 가운데 마포대교 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 해도 100건이 훌쩍 넘었다. ‘생명의 다리’가 유명세를 타면서 역설적이게도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자살 명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자살률의 불명예가 깊어지고 있는데, 자살예방 캠페인마저 역효과를 내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다. 시지각적 정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너비 11.7m, 길이 25.4m, 높이 6.4m의 대규모인 이 작품은 수직 상승의 권위적인 공공예술과는 차원이 다르게 수평과 곡선의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유형이다. 서울시가 추진한 도시갤러리사업 결과물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자 드라마 촬영지, 야경 명소로도 각광받는다. 관람 대상물인 시각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올라가서 한강을 조망하는 전망대이자, 잠시 머물러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의 기능을 겸한 일석삼조의 빼어난 공공예술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호사에 만족하기에는 운명이 다소 기구하다. 마포대교 입구라는 장소성 탓이다. ‘바람의 길’이 짊어진 무거운 짐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경제정책과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안규철에게 안겨준 감성학적(Aesthetic) 부담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제일기획이 이 작품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포대교의 장소성이 부여하는 아픔을 예술가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답은 시민들에게 있다. 경제정책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주체도 시민이고, 예술작품과 소통하며 그 뜻을 나누는 주체도 시민과 사회이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작품은 구체적인 유용성으로부터 결별함으로써 의미의 자유를 획득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예술 비평은 매우 절박하게 ‘공공예술의 쓸모’를 요청한다. 이 작품은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났으니, 그 쓸모를 짓는 일은 우리 시민, 사회의 몫이다. ‘바람의 길’이 마포대교에 깃든 불행의 씨앗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쓸모 있는 물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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