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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3일 월요일

"책이 없어요" 학교 도서관이 비어갑니다/중앙일보 유재연 기자

http://jplus.joins.com/Article/Article.aspx?listid=13645857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에서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는 어린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맡았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사서가 됐죠. 당시 동명이인인 남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는 대출증에 자기의 이름(후엔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의 이름인 걸로 밝혀졌지만)을 쓰는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늘 조용하고 따뜻하고… 마치 봄을 품은 듯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요. 지금도 모교를 찾아가면 도서관을 창가 너머로 살필 때가 많은데, 장서 수도 늘고 낡은 책은 많이 사라졌지만 분위기 만큼은 그대로더군요. 

그런데 요즘 서울시내 학교들마다 도서관에 책이 없어 난리라 합니다. 올해 유난히 악재가 겹쳤다고 하네요. 간추려 말하자면 ①도서정가제는 시행됐는데 ②예산은 축소되고, ③동네서점에서만 사도록 의무화가 되다보니 책을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대표적인 수치로 다뤄보겠습니다. 

학교 도서관, 도서정가제 예외 적용 안돼
지난해 말, 일명 '단통법'과 더불어 논란이 컸던 정책이 바로 '도서정가제' 시행이었지요. 11월 말부터 시행이 됐는데, 그 직전까지 대형서점은 물론 출판사들도 발벗고 나서서 90% OFF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할인 행사를 벌였습니다. 건국 이래 가장 거대한 슈퍼 세일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만. 

내용은 정가의 10% 이상(간접할인 5%도 있습니다만) 할인을 해주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사회복지시설에 대해선 예외 규정을 뒀는데, 당초 학교 도서관도 포함될 걸로 알려졌지만 11월 21일 시행부턴 낼름 빠졌습니다. 어찌됐든 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 학교 도서관인데, 솔선수범해서 콘텐츠 비용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 학기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마을형 학교 등등 수많은 정책을 꾸린데다 누리과정 예산까지 떠맡게 되면서 각 학교별로 나가는 운영비가 대폭 축소된 것이죠. 지갑이 작아진 학교 입장에선 또 써야 할 돈이 많습니다. 시설 보수도 해야하고, 보안관 관리도 해야하고, 돌봄교실 운영과 방과후 학교 등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 가운데에는 도서관 예산도 들어가 있답니다. 

서울 강북지역의 A초등학교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이 학교는 2014학년도 도서관 예산이 10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이렇게 1000만원~2000만원 정도 예산을 배정해 왔습니다. 이 액수에는 도서 구입 뿐만 아니라 책 라벨링 작업, 책장 교체 등 비용도 들어갑니다. 당시엔 책 1046권을 사는 데 954만4580원을 썼다고 합니다. 

올해엔 600만원만 배정이 됐다고 합니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죠. 매년 학교에선 권장도서를 새로 추가합니다. 이 도서만 샀는데도 벌써 400만원 가까이 썼다고 하더군요. 400권 남짓 구입하는데 든 돈만 383만원이라고 합니다. 권당 평균으로 치면 약 500원 정도 더 비싸게 샀다고 하고요. 일 년에 두 번 정도 책을 샀는데, 다음 학기에 살 책 비용이 거의 없어 선생님들의 고민이 크다고 합니다. 

돈 두 배로 늘어도, 살 수 있는 책은 절반 이하 
개교한 지 3년 차인 서울 강남지역의 B학교는 오히려 도서관 예산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당초 기본 예산의 3%는 무조건 도서 구입에 써야한다는 정책이 있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설 보수 등에 돈을 들이느라 도서관에 투자를 많이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이 학교의 도서관 예산은 400만원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해 8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학급 수도 4개나 늘었고, 학생 수도 증가한데다 지난해 시설에 썼던 비용을 도서관 용으로 밀어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 학교가 살 수 있는 장서 수는 확 줄었습니다. 지난해엔 400만원을 가지고 2000권을 샀다고 합니다. 당시엔 공개입찰을 통해서 7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 도서관은 '기존 도서정가제'인 15% 안팎 할인 규제의 예외 대상이었거든요. 

업계에서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학교 입장에선 제값주고 도서관을 처음부터 만들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죠. 시장 구조에선 불공정한 것 같아 보이지만, 새 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의 교육 평등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론 인정해 줘야 한다고 다른 학교 교사들도 입을 모았습니다. 

올해는 그럼 4000권 정도 살 수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아니라고 합니다. 현재로선 800만원을 들 고 살 수 있는 게 768권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지난 해엔 공개 입찰을 했기 때문에 라벨링 작업(책 표지에 바코드를 부착하는 작업)을 모두 해줬지만, 올해는 권당 550씩 내서 따로 작업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올해 공개입찰을 못한 이유는 "1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동네서점에서 사라"는 서울 교육청의 '동네서점 구입 의무화' 정책 때문이지요. 지역 동네 서점도 살리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취진데, 문제는 이 학교 주변에 동네 서점이 없다는 겁니다. 10분 넘어 차를 끌고 가야 작은 참고서 판매점이 있을 정도니까요. 당연히 인터넷 서점도 이용을 못한다고 하네요. 선생님의 고민, 클 수 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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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는 책인데…' 교사들 발 동동
동화부터 역사, 과학 서적 등 학교에 들어가는 책들은 대다수가 학생들을 위한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작 정부는 '스마트 교육', '체험 교육'을 강조하며 '책'은 잊고 있지요. 배움의 장은 가장 가까운 책장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교사들은 하나같이 현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 합니다. 종잇장을 눈에 익혀야 할 아이들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속이 상한데 도서관에 애들 책 하나 제대로 못 사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합니다. 더구나 참고서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집에서도 일반 도서를 사는 게 부담스런 상황이라고도 합니다. 더더욱 학교 도서관의 역할은 커진 셈이지요. 

미국 실리콘밸리의 일부 학교에선 교내 스마트기기를 모두 치운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책을 놓고 있지요. 전세계적으로 IT열풍이 가장 거센 곳인데도 말입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기는 어릴 때부터 보지 않아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책은 습관을 들여놓지 않으면 쉽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화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에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 꽂힌 대출증 뒤 여주인공의 초상이 클로즈업 됩니다. 그 장면을 보고는 이 책 한 번 읽어보려고 도서관을 뒤지던 사춘기 시절 제 모습도 떠오르네요. 그럴 때 도서관에 해당 책이 없으면 얼마나 서운한 지, 혹시 공감하는 분 있으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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