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5년 4월 13일 월요일

[한인섭 칼럼] 지겹다? 그만 잊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6469.html
4월16일. 재작년까지는 그냥 스쳐 지나갈, 향기 가득한 봄날의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세월호의 비극과 함께 이날은 완전히 다른 날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움과 슬픔, 간절한 염원이 노랗게 가슴을 찔렀습니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이 그토록 취약하게 방치되어 있음을 확인한 나날들이기도 하고요. 세월호는 우리가 일군 사회,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경악하고 분노하는 나날로 이어집니다.
그날 우리는 단 하나의 염원으로 모였는데, 1년 후 첨예한 대치전선으로 갈라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할 부모들이 유가족의 이름으로 단식하고 삭발하고 삼보일배의 짐까지 떠맡게 되는 기막한 일들로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진상조사특위를 출범시키는 데 몇 개월, 그러고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도록 노골적 방해책동을 정부의 공식시책으로 밀어붙일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젠 지겹다고 합니다. 세월호 언급을 그만하자고들 합니다. 왜 지겨울까요. 그토록 호소하고 간청하면 알아듣고 반성하고 고쳐가야지, 들은 척 만 척 하니 지겹도록 말하는 게 아닙니까. 선거가 눈앞이면 조금 들은 척하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시 불통 모드로 들어가는 그 행태야말로 지겹도록 가증스럽습니다. 구중심처와 해외순방 사이를 오가는 상전의 오만하고 무신경한 처신은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반면 진상조사를 방해하고 이간질하는 정치공작은 지겹도록 몰입합니다.
이제 그만 잊자고도 합니다. 세월호는 작년에 수장된 유물선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 우리의 생명, 우리의 인간존엄성에 관한 살아 있는 문제입니다. 304명의 인명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 모두의 자녀입니다. 무엇 하나 속시원히 해결된 것도 없는데 그저 잊자고 하면 잊어지던가요. 권력의 이름으로 망각을 강요할수록, 국민은 기억을 되살려 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 정확한 진상조사가 필수적입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제대로 알고 똑바로 기억해야 합니다.
세월호를 애도하면 했지, 왜 반정부적으로 변질시키느냐는 주장도 나옵니다. 비극적 재난은 사회적 위기지만, 이를 악화시키는가 승화시키는가는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국민적 단결로 돌파해낸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도 있습니다. 중국 쓰촨의 대지진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2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울지 마라, 정부가 책임진다”며 격려하고 공무원들의 재해구조를 독려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했던가요? 골든타임엔 감감무소식이다가, 책임을 회피하고, 아래를 탓하고, 그 주제로부터 빠져나가려 했을 따름입니다. 이 정권의 무한무책임과 야비한 정치술수야말로 반정부를 자초한 장본인입니다.
유족의 마음을 보살피고 치유해야 할 정권이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주역이 되어버리자 그에 힘입어 유족의 상처를 후벼파는 언행까지 난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현직 의원들조차 ‘세금도둑’이니 하는 언사를 수시로 뱉으면서 그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이런 인면수심의 엽기의 사례를 모으면 악마의 사전을 한 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짓거리도 정권 탓이냐고요? 그들이 누구로부터 힘을 얻는지만 봐도 뻔하지 않나요.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며칠 전 오드리 헵번의 가족들이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을 제안했군요. 팽목항에 가까운 곳에 은행나무를 심고, 세월호의 기억과 교훈을 키워가자고요. 선한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종다양할 것이며, 국적도 달리 없습니다. 세월호의 인양도 실종자를 찾아 가족 품으로 보낸다는 차원에 더하여,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앞으로 생명존중의 각성비로 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슬픔의 공유, 기억의 연대는 우리나라를 재탄생시킬 바탕입니다. 제2주년, 제10주년에는 우리의 삶의 질, 사회의 질이 제대로 성숙되고, 개인적 아픔을 사회적 아픔으로 공감하고, 함께 치유하는 길로 나아갔음을 확인하는 날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