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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9일 금요일

황현산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간경향 박상미 문화평론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5261843511&code=116


‘현명한 어른’으로 나이 먹으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가. 첫 만남에서 가장 여쭈어보고 싶었던 질문에 대해 황현산 선생은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 주셨다. “늘 책을 읽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연습을 하라. 결국은 삶의 태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나이라는 권력으로 쇠한 것을 메우려고 하면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듣는 연습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게 바로 노망든 것이다. 좀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기를 그치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게 책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금년에 칠십인데, 요즘은 책을 잡으면 그 책의 저자는 거의 나보다 젊은이들입니다. 고전작가라 하더라도 그가 나보다 젊었을 때 쓴 글이지요. 제가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번역했을 때, 육순 노인이 왜 20대 젊은 애의 글을 번역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브르통이 살아 있다면 지금 100살도 넘었죠. 어떤 아름다움, 어떤 진실이 늙건 젊건 한 지성을 통해 생성되고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보다 어린 애들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손에서 책을 놓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지식인 행세를 하지요. 지금 야권이 힘을 못 쓰는 원인의 하나도 거기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고전이나 인문학 책은 인기가 없고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문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 나온 책들이거든요, 고전은 생산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인생 전반에 관한, 세계 전반에 관한 문제를 고전은 다루고 있기 때문에 깊이 있고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창조적인 능력을 길러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그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사안들, 오직 눈앞에 있는 문제, 눈앞에 놓여 있는 욕망, 눈앞에 있는 사회의 요구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고전이라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읽는 것이고, 계발서는 대개의 경우 인생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권해 주십시오.
“제가 꼭 읽으라고 권하는 책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입니다. 살아 있는 자기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책 속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방랑 학자 패트릭 리 퍼머가 쓴 펠로폰네소스 남쪽 오지의 답사기 <그리스의 끝, 마니>도 추천합니다. 발칸반도의 역사, 문명, 문화를 정말 치밀하게 쓴 책입니다. 저도 서양학을 공부한 사람인데, 내가 서양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최근에 나온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도 좋습니다. 이 책들은 피상적인 지식에 머물지 않고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책들입니다.”

인문학 책은 안 팔리는데,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토크쇼, 콘서트에는 사람들이 몰립니다.
“모든 학문과 생각 체계는 자기들의 삶의 전통과 삶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식민지 경험 때문에 한국인들에겐 모든 게 강제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이게 실제로 우리에게 아주 큰 상처이지요. 가장 중요한 건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를 통해서 근대화된 게 아주 큰 비극입니다. 자주적으로 자기 삶을 개선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밖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어떤 충격만 받으면 옛날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어요. 민주화 운동 하는 사람이 족보 따지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연·지연 따지는 모습을 저는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자유·평등의 개념이 내 삶 속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니까 헛것으로 떠돌 뿐입니다. 인문학 열풍도 마찬가집니다. 지젝이 한마디 하면 다 그리로 쏠려가고…, 간단한 외부적 충격만 있어도 갈피를 못 잡고 휩쓸려 갑니다. 자기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지젝의 이론을 공부했으면 그 이론을 자기 경험 속에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넓혀 또 다른 자기 사고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자기 경험 속에서 이해하고 이해를 넓혀야만 나의 학문, 나의 생각이 되는 것이군요. 천천히 읽고 자주적으로 깊이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우리가 부품 같은 걸 맞출 때 딸그락 소리가 나면서 아귀가 맞지 않습니까? 시를 번역하고 해석할 때도 잘 번역하면 그런 소리가 납니다. 그렇지 못하면 뭔가 이상하고 불안하죠. 모든 학문이 그럴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읽는 게 맞느냐? 이해가 안 되면 마음에 걸려야 하는데, 자기합리화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버릇이 되면 안 되지요, 늘 민감해야 합니다. 마음에 걸리면 항상 다시 찾아서 공부하는 성실함,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위험한 자기합리화에 맞서려면 엄중한 자기검열을 해야 합니다. 자기검열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져야 하고, 이런 자질을 연마해야 합니다.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런 자세로 해야 합니다. 모든 분야가 다 똑같아요.”

아폴리네르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5년 동안 그의 전집을 읽고 논문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 개인의 자세가 가장 문제이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도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려워서 빨리 논문을 쓰고 졸업을 서둘러야 합니다. 학자들은 논문을 많이 써야만 하는 대학의 평가구조 때문에 좋은 논문을 쓰기 어렵습니다.
“제가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데 5년이 걸린 것은 그의 전집을 읽지 않고 논문을 쓴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5년 동안 그의 글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모자라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많이 읽으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연구자들을 보면 정열도 많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다만, 대학의 제도가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위에 대한 개념도 옛날과 달라졌고, 논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석사건 박사건 일정한 능력을 갖추고 논문을 합격하면 독립된 연구자로 인정했는데, 요즘은 학위 논문이 졸업장과 같고, 논문을 쓰는 것이 졸업절차가 돼버렸지요. 또한 한국의 연구실적 평가는 양적 평가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가 자기 학문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 예전보다 어렵습니다. 학문할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철학과, 독문과, 불문과에 이어서 국문과, 문예창작학과가 없어지거나 콘텐츠, 미디어 등의 이름을 조합해서 인문학 계열학과들을 통·폐합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고등학교의 직업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콘텐츠니 뭐니 영어로 이름을 붙이면 학생들이 지원을 많이 합니다. 대학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고 그러는데,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가 인문학과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왜 경영과나 경제과를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기업가나 정부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만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는 게 아니라, 대학총장마저도 대학의 인문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학은 취업학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모든 게 깊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대학에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교수도 학생도 그걸 피해온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고 현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내공을 쌓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깊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대학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중에도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한 학생이 40%가 넘는다고 합니다. 4·19 정신, 5·18 민주화 항쟁에 관한 내용을 수업에서 다루어도 예전과 같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일베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도 꽤 있습니다.
“사물의 현상 밑으로 내려가서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면 모든 게 다 지겨워집니다. 어떤 사태의 깊이를 파악하는 건 힘이 드는데 일베가 되면 그 힘이 면제됩니다. 일베는 젊은 날의 덫이 되기 쉽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보면, 사람들에게 싸움을 시킴으로써 정말로 지탄받아야 될 사람들이 피해가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이념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엉성한 이념일수록 더 매혹적입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을 겁내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를 붙들고 무슨 짓이든 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일베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비열하기 때문에, 여자와 같은 약자들을 학대하는 데서 가장 손쉬운 패악질을 발견합니다. 패거리 의식은 이 약자 괴롭히기를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옆에서 부추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급기야 애국질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패악질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남으면 자괴감에 빠집니다.”

왼쪽부터 황현산 선생과 딸 황은후씨, 아들 황일우씨.

우리가 일본을 대할 때에도 논리적인 대응을 못하고 ‘애국심’이라는 명분하에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며칠 전 아들과 삼청공원에 산보를 갔다 오다가 택시를 탔는데, 네팔 지진 얘기가 나오니까 기사님이 일본이 저렇게 망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일본이 망해서 우리에게 도움되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감정적인 문제가 너무 많이 결부되어 있어요. 이것은 일본인, 한국인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과거를 정확하게 기술해야 합니다. 일본인들 입장에 서서 한국문제뿐 아니라 2차대전 때 열강과 일본의 관계도 생각해 보아야죠. 미국, 러시아와 같은 열강과의 관계에 대해서 일본도 할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객관화를 안 시키니까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라는 게 무엇입니까. 과거에 대한 현재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에 대한 주체이기도 하고, 과거를 딛고 일어선 타자이기도 하죠.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자인 것이 과거입니다. 타자로서 객관화시켜 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그걸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잘못 말하면 친일파로 몰립니다. 양국이 과거를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와 동양인들 대부분이 과거를 객관화시키는 데 서툽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고능력의 부재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에 선입관과 감정이 앞서면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과거의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국가와 민족을 떠나, 순전하게 사람의 입장에서 그 죄를 객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죄악의 객관화에 한국보다도 오히려 일본 미래의 행·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말하기 방식을 두고 ‘유체이탈화법’이라고들 합니다. 지도자의 화법은 어떠해야 하고, 어떤 수련을 해야 합니까.
“지도자의 말하기 방식은 논리적으로 문법에 맞아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안 되면 유체이탈화법이 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문법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국민들은 알아듣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우물거리고는 못 알아듣는다고 타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남의 말, 남의 글을 듣지도 읽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권력자는 가장 저열한 한국어를 뱉어놓고 어디서 얻어들은 조각 지식으로 선생질을 하려 듭니다. 권력을 갖게 된 게 현명해서 가진 게 아닙니다. 대개 권력 가진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속는 경우 많습니다. 그러면 본인과 다른 사람들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논리적으로 문법에 맞게 말하고, 글을 잘 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먼저 상투어를 안 쓰면 글을 잘 쓰게 됩니다. 상투어를 안 써야만 상투적 문장형식, 상투적 표현방식을 피할 수 있지요. 번역도 글쓰기입니다. 단어나 문장을 보고 ‘이것은 상투적인 말’이라고 판별할 수 있으면 번역도 잘하고 글도 잘 쓰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달이 떴다’라는 문장에서 ‘달이 휘영청 떴다’ 이렇게 번역하는 번역자들이 있어요. 이것은 감각이 부족한 것이죠. 글을 많이 쓰지만 잘 쓰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글을 못 쓴다는 자각이 없습니다.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이지요. 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말을 성찰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잘 쓰면 번역을 하라고 말씀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번역을 하다 보면 상투적인 것에 대한 판별력이 늘어납니다. 자기한테 주어진 모국어, 언어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훈련이 됩니다. 번역은 외국어에 서툰 사람을 위해 대체 텍스트 만들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는 일이기 전에, 한국어 ‘안’에 셰익스피어가 있게 하는 일이지요.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기 전과 후의 한국어는 다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엄격하고 자유롭게 쓰라고 말합니다. ‘엄격하게’는 그 뜻과 용법에 맞게라는 뜻이고, ‘자유롭게’는 인습적 문맥을 벗어나 새로운 문맥, 새로운 문장 환경에서 그 뜻이 완벽하게 발휘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모국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글쓰기가 번역입니다.”

초현실주의가 전공이신데, 현대문학에 미친 초현실주의의 영향은 무엇일까요. 또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한국 작가는 누구인가요.
“초현실주의는 1950년대에 사망선고를 받은 문예사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현실적인 성질을 가진 것은 문학과 특히 미술에서 계속 살아남았죠. 문학에서는, 특히 시의 경우에 있어서는 초현실적이라는 말과 시적이라는 말이 거의 같은 말로 쓰이다시피 합니다. 이 초현실주의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 원칙은 문학·회화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있고,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시인들이 대개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남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주어진 이데올로기에 충실합니다. 여자들의 경우는 사회에 길들지 않고 그걸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여성 시인들 시에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를 번역하는 대작업을 끝내셨는데요, 신문 칼럼도 쓰셔야 하고, <잃어버린 장갑> 동화도 완성하셔야 하니 무척 바쁘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보들레르 <악의 꽃>, 랭보 전집과 로트레아몽 전집, 말라르메 전집 등을 번역하는 데 시간을 쓸 것입니다. 동화는 그 한 편만 완성할 것이고, 신문 연재도 올해로 끝낼 것입니다. 저만이 할 수 있고 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들을 번역하는 데 집중해야만 합니다.”

담도암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선생 곁에는 도예가 아내와 아버지를 무척 닮은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문학평론가 황정산)처럼 문학을 전공했으리라고 예상했으나 아들은 경제학자가, 딸은 연극배우가 되었다. 아들 황일우씨(미국 마이애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황현산 선생에 대해서 물었다.

“학자로서의 아버지는 ‘무리하지 않되, 꾸준히 공부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세요. 학교에서 늦게까지 회식이 있어도 집에 오셔서는 꼭 한두 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신 후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컸습니다. 현실세계를 명확하게 분석하면서, 동시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철학을 몸소 보여주셨죠. 저는 마음속에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있었어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제 글을 아버지의 글에 비교하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무서운 이과를 택하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는 항상 젊고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시고, 식구끼리는 항상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말이 잘 통하는 좋은 선배 같아요.(웃음) 최근엔 맥북에어 사용법을 익히시느라 열심이십니다. 충고보다는 직접 당신의 삶의 태도를 통해 가르치는 분이십니다.”

딸 황은후씨는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5월 말까지 공연하는 <그리스의 연인들> 3부작에서 마지막 작품인 ‘페드라’의 주연인 페드라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라신느 원작의 ‘페드라’를 재미있게 재창작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식구들은 은후씨의 공연을 다녀왔지만 선생은 오랜 시간 앉아서 공연을 관람할 자신이 없어서 가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쉬움과 미안함이 얼굴에 드리워졌다. 오늘 은후씨의 공연을 보고, 진솔하고 생생한 감상을 써서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황현산 선생을 만나고 깨달은 게 있다. 자기 검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세를 가져야 하고, 공부는 수도승이 수련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공부도 글쓰기도 수도승의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학자의 깊은 사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서 읽는 이의 다층적 사고를 유도하는 그의 문체는 수도승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도하는 마음으로 학문에 평생을 바친 사람은 정직하고 겸손했다. 녹음해 온 선생의 목소리를 글로 옮길 때 나도 모르게 의자 위에서 무릎을 꿇게 된 이유다.

<박상미 문화평론가>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2015 시민교육 심포지엄: 시민교육,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5 시민교육 심포지엄 수원평생학습관에서 열린다
-패러다임의 전환일상에서 만나는 시민교육-

국민교육헌장과 인성교육진흥법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저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가 되어 버렸고 개인의 주체성이나 특성 이전에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야 하는 미숙한 존재이기에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깨치기 위해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이렇게 보면 지금의 초딩에 비해 당시국딩은 얼마나 숭고하고 장엄한 존재인지요.

아마 3학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하루는 국어수업시간에 접속사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담임선생님은 접속사를 이용한 문장을 만들어서 발표를 해보라고 주문을 하셨습니다저는 과감하게 손을 들고 또박또박 문장을 읽어 나갔습니다. “학년이 바뀐 첫날 멀리서 멋진 선생님이 걸어 오셨다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호박이었다.” 친구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배꼽잡고 웃었고 그럴수록 선생님의 진노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역린을 건드린 저는 뒤지게 얻어맞았고 선생님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부모님 호출을 명하셨습니다그러나 저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조금 개구지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용례에 적합한 문장임이 분명한데 그게 그렇게 선생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날 이후 저는 학업과는 담을 쌓고 살게 되었습니다

산업화 시절에 비해 시대의 흐름도 바뀌었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과과정도 개편되어 세대별로 교육 받은 내용이 조금씩 달라 세대별 차이와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세대가 이 사회의 주류로 굳건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시민적 권리나 책임의식공공적 가치에 대한 생활적 체현 학습이 부족했던 세대가 주류적 감성과 의식을 과잉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사회에 큰 문제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늘 교육이 호출되곤 하지만 그 호출된 교육의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의 교육현실이 호출되었고 그와 연관되어 인성이 따라붙었습니다정의화 국회의장이 세월호 사건은 인성문제라고 언급한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사상한 채 오직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2014년 12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게 되어 자칫 관제 인성을 낳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5월 16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15일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인성관련 자격증 및 자격시험은 213종에 이른다지난해 4월 60여종에 불과했던 인성 관련 자격증이 1년여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우리는 이제 인성도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위 신문 네 인성은 몇 점 짜리니?’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사를 마감하고 있습니다.신동하 연구실장은 지금 시행되는 인성교육은 사실상 복종교육이라며인성교육이라는 말 대신 시민적 권리와 책임감 등을 의미하는 시민성 교육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교육공부모임 (1).JPG 시민교육공부모임 (2).JPG 
▲ 시민교육 공부모임 함께하는 사람들(좌)와 논의 모습(우)

2015 시민교육 심포지엄의 3가지 특징

국딩 3년 시절 이후 학업에 철벽산성을 쌓고 살았습니다만 언젠가부터 학습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그 욕망의 발화점은 시민교육이었습니다매년 발표되는 평생학습통계를 보면 시민참여교육은 늘상 1%대 내외를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할까요구체적 수치는 합의하기 어렵겠지만 다른 교육에 비해 발란스가 심하게 붕괴되었다는 점에는 쉽게 동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평생학습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과 기대 그리고 현장의 고민을 듣게 됩니다개별 기관이나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결코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거나 욕구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다만 그것을 개별적으로 풀어내기에는 한계와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국가나 광역 단위 진흥원에서 이런 문제를 적절히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이런 부분까지 손길이 미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먼저 시민교육에 관해 공부를 하자는 의견을 모으게 되었고 그 결과 한 달에 한 번씩 스터디를 하는 공부모임이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학습이 개인의 교양 함양이나 지식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타인과의 공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터디 멤버들의 확고한 원칙에 의거해 학습의 결과를 현장의 동료들과 공유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문제는 공유할 만큼의 충분한 콘텐츠가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그래서 멤버들은 문제의식을 벼리고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지난 4월 3박 4일의 내부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거대 담론이 아닌 구체적인 과제 중심
시민교육의 역사와 연원그 가치와 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담론을 배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그러나 지금 현장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그나마 시민교육이 한발 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함께 스터디를 한 멤버들은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시민교육에 관한 고민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고 게다가 다양한 방식의 시민교육을 시도한 현장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현장에 터를 잡고 활동했던 그 기반조건이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실사구시의 형태로 드러날 것입니다.

2)최초로 시도되는 평생학습 담당자 의식조사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지만 그 조사는 전통적인 시민단체 활동가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습니다혹 평생교육 학계에서 유사한 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알기로는 전적으로 시민교육만을그것도 평생학습 현장 중심의 조사는 지금까지 없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시민교육에 관한 평생학습 담당자의 의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담당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특히 그들의 현실적 고뇌가 무엇인지향후 활성화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생산적 대안을 위한 소중한 기본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3)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슈 제기
먼저 이번 스터디 모임에서 좌장 역할을 맡으신 한국평생교육학회 김민호 회장(제주대학교 교수)이 일상화’ 관점에서 시민교육을 풀어낼 것입니다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보다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듯 시민교육도 일상 속에서 풀어내야 합니다그래서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그러기 위한 조건과 과제는 무엇인지가 기조강연 형태로 발표될 것입니다.

학습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교실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그러나 마을은 지붕 없는 학교입니다지역에서 시민은 학습관 형태에서 변화 성장하는 것과는 다른 궤적을 보이게 마련이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역에서 어떻게 시민이 되어 가는가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또한 시민교육과 관련해서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활용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적절한 툴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접근도 매우 유용한 주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는 변화의 조건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우리는 일상적으로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변화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간단치 않은 과제인데 과연 어떤 조건에서 그나마 사람의 변화가 가능할지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논의될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시민교육” - 박현규(서울 생명의전화 교육실장)
박현규 실장.jpg평생교육과 시민교육’, 과연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그 둘의 관계에 대해 우리 평생교육 담당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그 관계그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 203명 평생교육 담당자의 소중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평생교육 담당자는 시민교육을 주로 일상생활에서 시민성과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교육’ 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이러한 시민교육은평생교육 영역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주제이며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평생교육 담당자가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교육에 대한 높은 수준의 필요성 인식과는 달리평생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기대만큼 그리 달콤하지는 못하다평생교육 기관들은 전반적으로 시민교육을 운영하고는 있으나전체 평생교육 프로그램들 중 시민교육이 차지하는 비중(5% 이하)은 매우 낮았다. 그리고 시민교육 내용은 주로 시민문화 또는 시민의식 함양의 수준에 국한되어 있으며교육방법도 대부분이 강사 중심의 단기 및 정기 프로그램 운영이었다이렇듯 평생교육 영역에서 시민교육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평생교육 담당자들은 기관의 시민교육에 대한 필요성 인식 부족’, ‘시민의 요구 부족’, ‘인력 및 예산 부족’ 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교육 담당자들은 향후 평생교육 영역에서 시민교육이 활성화될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있었으며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민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 ‘평생교육기관의 시민교육에 대한 철학 및 가치 재정립’, 그리고 국가 및 지역평생교육진흥원의 관심과 노력’ 등의 우선 과제가 고려되고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조사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평생교육 담당자들은 시민교육 관련 참여 경험은 있으나 경험의 측면에서는 주로 공공질서 준수 등과 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시민정신을 실천하는 수준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따라서 향후 평생교육과 시민교육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평생교육 담당자 스스로 시민교육에 대한 관점 전환시민교육 관련 역량 강화 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어떻게 시민이 되는가지역사회에서 시민-되기’”-김미윤(은평구평생학습관장)
김미윤관장.JPG시민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요평생교육 6진 분류에 있는 시민참여교육을 받으면 시민이 되는 걸까요몇 번의 교육만으로 좋은 시민이 된다면 우리가 이렇게 여전히 시민교육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시민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종합해보면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합니다자신과 자신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성찰하기사회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연대하기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간중심으로 성찰하기책임 있게 참여하고 행동하기이렇듯 시민은 공동체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시민교육 역시 그렇습니다.

이 발표에서는 시민교육을 지역’ 또는 마을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시민성에 대한 여러 이론보다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시민이 되어 가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탐구한다면 시민과 시민교육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그리고 (평생)학습이 마을에서 시민-되기의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고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엄마들과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책을 읽었어요활동을 하다보면 갈등이 생기잖아요그러면 저희는 교육을 받았었어요우리에게 필요한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서. (중략)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교육학습 때문인 거 같아요공부하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우리는 카페를 낼 때도 경제공부를 시작했고요즘엔 일요일날 책읽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확확 변하는 걸 봐요삶의 경험과 만나는 학습을 하니까.

전에는 여기서 사는 게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변두리니까. 00구에 산다 하면 좀 창피하달까그런데 교육을 받고 길찾기(활동)를 하니까 여기가 달리 보여요. (중략예를 들면 작년에 시니어 행복학교에서 6,70대 분들을 만났는데저희가 별거 안했는데도 이 분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셨어요그 때 아우리 50대가 이 분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구나이런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마을을 만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을에서 살아가며 필요에 의해 자발적인 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때로는 일상에서의 학습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한 개인이 지역의 일원임을 자각할 때 변화와 실천가능성은 배가됩니다사람들은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혹은 조금은 알고 있었으나 우리의 일과 긴밀히 연관시키지 못했던 점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평생학습은 이런 시민들의 변화를 얼마나 촉진하고 긍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을까요? ‘시민-되기의 과정에서 평생교육 활동가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역이라는 요소는 시민-되기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지역에서 시민교육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요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많은 질문들을 심포지엄에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시민교육어디까지 해봤니?: 시민교육의 다양한 스펙트럼” -김미란(광명시평생학습원장)
김미란원장.jpg한국에서의 시민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은 주로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사회과과목이나 선거 등의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방법론 중심으로 접근되었다최근 들어 광역단위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시민교육 관련 과와 팀이 신설되고민주시민교육지원조례도 만들어지면서 관련사업과 예산이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다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마을에서 시민되기지역에서 시민되기를 넘어 세계시민교육으로 확장되고 있다평생학습분야에서는 평생교육 6진 분류를 통해 프로그램 주제로 분류되기 시작했지만 통계조사결과 시민참여교육은 그 비중이 매우 낮다여전히 평생교육의 맥락에서 본 시민교육특히 지역에 기반한 시민교육 연구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시민교육어디까지 해봤니?”라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교육을 통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를 꿈꾸며 시민교육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20여년을 씨름해왔던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현장의 실무자들은 오죽 막연할까그나마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시민교육 과목을 수강했다면 고민의 단초는 얻었을 것이다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시민교육에 관한 공공분야 평생학습 실무자들의 인식조사 결과에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설문조사 결과처럼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면 과연 우리는 잘 할 수 있을까기관의 철학과 의지가 있으면 가능할까예산과 정책인력이 있으면 시민교육은 활성화될 수 있을까이번 심포지엄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시민교육의 기획과 운영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찾아보고 공유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다관점의 전환주체의 전환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교육담당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강의실강사교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전통적인 강좌기획에서부터 최근의 플랫폼 논의까지그 안에서 사람과 공간프로그램이 어떻게 바뀌고 연결되는 것인지를 찾아보는 노력이다.

시민교육의 기획과 운영은 A부터 Z까지 다양하다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교육이고 학습이다.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많은 시도들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수정하고최적화시키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이러한 지혜와 용기는 거대담론에서 벗어나기조급성에서 벗어나기의무감에서 벗어나기역량개발에서 벗어나기개인의 행복에서 벗어나기를 통해 얻어질 것이다.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깊어질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우리들의 사유방식즉 생각과 말글을 바꿔야한다는 것이다좀 더 쉽고 편안하고 간결하게 바꾸지 않으면서 ‘~해야 한다는 당위감과 뻔한 기획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시민교육 낯설고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면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어떻게 시민성을 드러내고발현시켜낼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보자시민교육의 상상력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를 함께 논의하고 찾아보자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현장으로 뛰어들자. ‘더 나은 시민교육은 가능하다는 믿음을 키워나가자.

시민교육변화의 조건을 구축하자” – 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정성원관장.jpg산을 오를 때나 넓은 고원 등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라고 합니다자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다면 종국에는 힘들고 지쳐 조난의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학습의 현장에서도 링반데룽 현상을 보게 됩니다현장 실무자들은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고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기대를 했는데 실제로는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장면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특히 시민교육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링반데룽 현상이 발생하면 당연히 방향성에 대해 충분한 되새김질을 해야만 하듯 시민교육도 마찬가지로 그 교육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 제대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민교육의 목표는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사람 특히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된 성인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그러나 사람의 변화가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과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그래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인 힉스(Hicks)는 모든 학습내용은 지식정보’ ‘가치관태도’ ‘기술역량이라는 3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물론 이 3가지 요소가 질과 양 측면에서 균등하게 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이중 시민교육 영역에서는 가치관태도가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것은 기술이나 지식에 비해 매우 복잡함과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학습 현장에 들어 온 사람들은 교수자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그대로 수용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거부나 유예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수용거부유예는 대단히 역동적인 길항관계를 나타낼 것입니다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지속성과 마주봄과 촉진자입니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시민교육의 목표를 변화에 두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위 3가지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은 아닙니다그래서 신선도가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주의 깊게 살피지 못한 지점을 새롭게 구성하여 시민교육에 대한 재구조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시민교육에 관해 스터디를 한 사람들의 고민과 주장이 펼쳐집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의 발표 내용이 정답은 아닙니다학습의 현장에서 정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고민과 실천 그리고 이어지는 비판적 성찰 속에서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내고우리는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그러기에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고개를 끄덕이는 동의보다는 라는 고민이 깊어지기를더 바란다면 이것을 계기로 시민교육의 논의가 활성화되고 현장에서의 대안모색이 시작되기를 바랄 뿐입니다심포지엄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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